[시론-김윤정] 군폭력, 인성교육으로 풀자 기사의 사진
윤모 일병과 김해 여고생 사망 소식은 또다시 대한민국을 슬픔에 빠뜨렸다. 꽃 같은 젊음이 사그라지는 것도 애처로운데 죽음보다 더한 고통의 순간들, 엽기적이리만큼 잔혹한 행태를 생각하면 슬픔은 금세 분노로 바뀐다. 분노와 공격성은 생존을 위한 본능적 감정이다. 우리 사회의 이 공분은 내 자식도 예외가 아니라는 생존 위협의 경고등이 켜진 것이다.

그런데 가해자들도 그랬을 수 있다. 상황이야 제각각 달랐을 것이나 자존감 없는 무의미한 일상 속 억눌린 감정과 쌓이는 욕구불만은 작은 거슬림조차 불씨가 되어 분노의 폭발을 일으켰으리라. 문제는 안타깝게도 이 본능을 제어할 자기조절 능력이 제대로 키워지지 않았다는 데 있다. 게다가 부정의 정서는 긍정의 정서보다 그 전이 속도가 15배는 빨라 분노가 폭력으로 분출하는 순간 분노 바이러스는 집단의 공격성을 증폭시켜 기어이 하나의 희생양을 만들고야 만다. 물론 늘 그런 것은 아니다. 파충류의 뇌, 변연계에서 일어난 분노의 감정은 몇 번의 심호흡만으로도 차분히 가라앉힐 수 있다. 노르에피네프린이 도발한 즉자적인 감정을 30초간만 눌러 놓고, 진화한 인간의 뇌 전전두엽을 잘 활용한다면, 자극은 발전적 동기가 되어 상황을 직시하고 합리적인 판단과 때론 창의적 해결책까지도 모색할 수 있다. 그러나 쉬워 보이는 이 전환은 교육과 수련을 전제로 한다.

이참에 심호흡을 하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군폭력과 학교폭력의 발생 배경에는 꽤나 많은 공통점이 떠오른다. 우선 ‘의무’로 강제하는 기간을 마지못해 채워가는 과정 중 발생한다. 둘째, 인정과 대우를 받는 하나의 절대기준이 존재한다. 군대는 계급이요, 학교는 성적이다. 이는 다수의 욕구불만과 늘 편치 않은 긴장감을 조성한다. 셋째, 한 명의 희생양(고문관, 왕따)을 만듦으로써 그 나머지는 안도감과 소속감 속에 안주하는 비겁함이 존재한다. 넷째, 조직화하고 흉포해진다. 자극의 역치는 자극이 강해질수록 올라갈 터, 집단폭력은 그 흉포함을 더하게 되지 않겠는가. 다섯째, 기피와 은폐가 극단적 사태를 일으킨다.

사실 군폭력이나 학교폭력은 잠잠해질 만하면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고질적 병폐다. 대책도 웬만한 것들은 이미 여러 차례 종합선물세트처럼 나왔다. 따라서 이제는 작지만 실효성 있는 대책과 폭력성을 해소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은폐를 구조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 군내 휴대폰 소지든 전문교사 확충이든 작은 폭력이라도 조기에 발견, 조치되게 해야 한다. 나아가 억눌린 욕구를 해소하고 스스로를 조절할 수 있도록 군의 경우엔 24시간 내내 개인생활 없는 긴장과 불편한 삶 속에서 잠시나마 병사의 마음을 달래주고 풀어줄 공간이나 사람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학교의 경우엔 성적이 아니어도 자긍심을 느끼며 마음을 다스리고 적응력을 키울 수 있는 다양한 활동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 학교의 마음 교육은 이후 군이나 직장생활을 잘 영위케 할 수 있는 인성 형성의 밑거름이 되는 바 보다 근본적인 해법이 될 수 있다. 예술체육과 롤 플레이 활동으로 다양한 상황을 몸으로 익히는 덴마크의 애프터스쿨, 유·초·중학생들이 영아들을 돌보며 공감 능력을 키우게 하는 캐나다 메리 고든의 ‘공감의 뿌리’ 프로그램, 석 달 동안 1800㎞를 걸으며 낯선 곳 낯선 이들을 만나 자신을 성찰케 하는 프랑스 청소년 교화 단체 쇠이유(프랑스 85% 청소년 재범률 대비 15%의 놀라운 성과를 거뒀다) 등 부정적 감정을 긍정과 창조적 에너지로 바꾼 사례들은 얼마든지 있다.

문제는 제대로 된 실천이다. 주입식 인성교육이 얼마나 큰 감성의 변화를 일으키겠는가. 온 몸으로 체험하고 마음으로 느끼며 스스로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 때 자신과 타인에 대한 소중함에 더해 모든 발전적 변화들이 이루어지지 않겠는가.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에서 어떻게 배우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이유다.

김윤정 한국과학창의재단 미래창의인재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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