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종 칼럼] 옐로페이퍼 산케이가 부른 단상들 기사의 사진
“중국 한(漢)나라 성제(成帝) 때 공광(孔光)이라는 명신(名臣)이 있었다. 그는 궁궐 안의 온실전에 어떤 나무들이 있느냐는 지인들의 물음에 ‘오늘 날씨가 좋다’고 딴전을 피우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이 얼마 전 청와대 직원 조회에서 인용했다는 고사의 요지다. 밖에 나가서 청와대에 관해서는 입도 뻥긋하지 말라는 당부인 것이다. 보도를 통해 접한 얘기다.

황제가 자신을 가리켜 짐(朕)이라고 칭한 것은 진시황이 처음이라고 한다. 그에게 조짐(兆朕)이라는 의미도 지니고 있는 짐으로 자칭(自稱)하도록 건의한 것은 환관 조고(趙高)로 전해진다. 조고는 “천자는 그 음성만 들을 수 있고 얼굴은 보지 못해야 하므로 짐이라고 칭해야 합니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즉 황제는 실재(實在)하지만 실체를 내보이지 않는, 그래서 신비한 존재로 군림해야 한다는 게 그의 건의 요지였다. 조고는 진의 2대 황제 호해(胡亥)에게 사슴을 바치면서 말이라고 함으로써 임금을 농락하고 반대파를 겁박한다는 뜻의 지록위마(指鹿爲馬)라는 고사성어의 장본인이기도 하다.

청와대 윤두현 홍보수석이 지난 7일 “입에 담기도 부끄러운 내용”이라며 민·형사상 책임을 끝까지 묻겠다고 한 일본 극우 반한(反韓)신문 산케이의 기사 때문에 떠오른 단상들이다. 이 신문은 지난 3일 ‘박근혜 대통령 여객선 침몰 당시 행방불명, 누구와 만났나’라는 제목의 서울발 기사를 통해 증권가 관계자 말이라며 박 대통령이 모처에서 전 보좌관이었던 정윤회씨를 만나느라 세월호 사건에 관해 늦게 대면 보고를 받은 것처럼 몰아갔다. 삼류 옐로페이퍼들이 하는 수법으로 정씨가 최근 이혼했다며 박 대통령에게 남녀 간의 스캔들이나 있는 것처럼 교묘하게 독자들을 오도해나가고 있다.

이 신문이 박 대통령에 대해 악의적 기사를 양산하고 있을 뿐 아니라 위안부 강제 동원, 독도 문제 등에 대해 턱도 없는 반한 주장을 해대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일본 내 반한파들이 이 기사를 가지고 우리 국가 원수를 가십거리로 삼을 것을 생각하면 열이 받친다. 우리 신문이 만일 일본 국왕에 대해 이런 유의 소설을 쓴다면 일본 신민(臣民)의 반응이 어떨지 산케이는 역지사지할 일이다. 청와대의 입장대로 끝까지 사과 요구는 물론 민·형사상 책임을 묻고, 이 신문 서울 특파원의 추방도 가능한지 검토해야 한다.

산케이 문제와는 별도로 청와대의 지나친 보안 의식이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오는 측면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김기춘 실장은 철통보안을 지시한 사람답게 지난 7월 7일 국회 운영위에서 박 대통령이 세월호 사고가 처음 서면 보고된 오전 10시부터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방문한 오후 5시까지 어디에 있었느냐는 야당 의원들의 질문에 “모른다”로 일관했다. 비서실장이 모르면 누가 아느냐는 추궁에도 “비서실장이라고 대통령의 움직임을 하나하나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고 응수했다.

그러다가 산케이 보도가 문제되자 청와대는 8일 “당시 박 대통령은 청와대 경내에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김 실장 등의 답변을 종합하면 박 대통령이 청와대 경내에 있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김 실장이 “청와대 어디에 계셨다”고 했으면 될 걸 왜 굳이 “모른다”고 함으로써 억측과 야당에게 공격의 빌미를 제공했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물론 대통령의 움직임 중에는 경호상, 일의 성격상 공개하지 못할 것도 많다. 또 너무 노출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청와대의 해명이 사실이라면 세월호 사고 당시 대통령의 동정은 ‘유추해서’ 알 수 있게 할 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

지금은 황제가 자신을 ‘짐’이라고 칭하면서 베일에 싸여 있는 왕정시대가 아니고, 그래서 궁궐에 있는 나무도 말해서는 안 되는 시대도 아니다. 청와대가 구중궁궐도 아니다. 그렇지 않아도 장관이나 수석비서관까지도 대통령 뵙기가 황제 알현하기보다 어려울 정도로 청와대 내에서까지 대통령과의 소통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백화종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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