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人터뷰] “북핵은 6者에 맡기고 남북관계는 우리 스스로 풀어야” 기사의 사진
김성재 원장이 김대중도서관 1층 로비에서 김 전 대통령의 업적을 설명하고 있다. 대학시절 김 전 대통령을 처음 만난 김 원장은 40여년째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이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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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8일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지 꼭 5년이 되는 날이다. ‘김대중 대통령 서거 5주기 추모위원회’는 8월 한 달을 추모기간으로 정하고 각종 행사를 진행 중이다. 장맛비가 내리던 지난 6일 서울 마포구 동교동 삼거리 인근에 있는 ‘김대중도서관’을 찾았다. 김 전 대통령에 대한 기념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김성재 ‘김대중아카데미’ 원장과 인터뷰를 하기 위해서였다. 김대중도서관은 과거 야당 지도자 시절과 대통령 퇴임 후 기거했던 ‘동교동 사저’ 바로 옆에 세워져 있다.

사저 앞에 도착하자 전경 한 명이 누군지 물었다. 미처 대답도 하기 전에 눈에 들어온 건 ‘김대중·이희호’가 나란히 새겨진 문패. 김 전 대통령 생전 때와 똑같은 모양이었으며, 부부가 여전히 함께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김 원장 사무실은 도서관 4층에 있었다. 인사를 나눈 뒤 이희호 여사 안부부터 물어봤다.

-올해 92세로 연로하신데 요즘도 자주 국립서울현충원 묘소를 참배하시나요?

“다행히 아주 건강하십니다.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참배하십니다. 화요일엔 동교동계 출신 정치인들, 금요일엔 가족과 함께 가시죠. 묘소에 도착하면 기도를 하신 뒤 대통령을 되새기는 말씀을 하십니다. 살아 계신 것처럼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지요. 부부의 정이 어쩌면 저렇게 깊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세 아들은 어떻게 지내나요?

“큰아들인 김홍일 전 의원은 알려진 것처럼 파킨슨병으로 휠체어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둘째 홍업씨는 아버지 기념사업회 부이사장 일을 하고 있고요, 셋째 홍걸씨는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조그마한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김 원장은 대학시절부터 김 전 대통령의 민주화운동을 돕기 시작해 정당과 통일연구 활동도 도왔다. 김대중정부에선 청와대 민정수석과 정책기획수석 및 문화관광부 장관을 역임했다. 20대 초반부터 60대 후반인 지금까지 인연을 계속 이어온 셈이다.

-서거 5주년을 맞는 소회 한 말씀 해 주시죠.

“여기 계신 것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벌써 5년이 지났습니다. 많이 그립지요. 특히 오늘날 사회 상황이 어렵고 남북관계가 경색돼 더더욱 그렇습니다.”

-살아계신다면 지금 상황에 대해 어떤 입장 표명을 하실 것 같습니까?

“사실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 1년은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남북 갈등이 심화될 때였습니다. 대통령께선 매일 주무시기 전 이 여사와 손을 잡고 나라 발전을 위해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돌아가시기 2개월 전인 2009년 6월, 건강이 좋지 않아 의사들이 만류했음에도 불구하고 남북 정상회담 9주년 기념 행사에 참석했습니다.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대통령께선 ‘민주주의 회복과 남북관계 개선 및 평화통일 노력’을 강력히 주문했습니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고 역설했던 기억이 납니다. 담벼락에 대고라도 소리를 치라고도 했습니다.”

-지금의 남북관계 상황도 5년 전과 별다른 차이가 없는데요.

“대통령께선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기대가 컸지요. 남북관계 정상화와 통일 기반을 다지고 동서 화합을 이룰 적임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박 대통령은 후보 시절은 말할 것도 없고 당선 후에도 6·15선언을 계승하겠다는 발언을 했습니다. 박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7·4남북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 6·15선언, 10·4선언을 계승한 측면이 있습니다. 다만 북핵 불용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남북관계 교착이 계속되고 있는 겁니다. 사실 북핵은 북·미 간의 문제라는 측면이 강하기 때문에 6자회담에 해결을 맡기고 남북은 우리 스스로 발전시켜 나가야 합니다. 선 북핵 해결-후 남북관계 개선이 아니라 두 가지를 병행해야 발전을 기대할 수 있지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한 단계 발전시켰다고 볼 수 있는 드레스덴 선언에 대해 북한은 흡수통일 기도라고 비난하고 있는데 앞으로 남북관계가 개선되겠습니까?

“북이 오해할 소지가 있는데 그걸 풀어줘야 합니다. 북은 1989년 헬무트 콜 서독 총리의 드레스덴 선언을 생각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당시 동서독의 경우 동독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통합을 원하니까 서독이 흡수한 것입니다. 우리 보수층에서 말하는 그런 흡수통일이 아니지요. 북한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 국민들에게도 그런 오해를 불식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김정은정권이 박근혜정부에 기대할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까요?

“2002년 박 대통령이 방북해 김정일을 만나 싸우지 말고 잘 지내자고 합의한 것은 역사적으로 굉장한 의미가 있습니다. 북한 정권은 유훈통치를 하기 때문에 김정은도 박 대통령에게 많은 기대를 했다가 실망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거기다 남한의 보수세력이 자기를 맹공격하니까 과민 반응하는 측면도 있고요. 이런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 회복입니다.”

-신뢰 회복이 중요하다지만 그것도 서로 만나야 가능할 것 아닙니까?

“맞습니다. 특사 교환이든, 고위급 회담이든 하루빨리 대화의 물꼬를 터야지요, 만나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와 드레스덴 선언이 나온 배경을 솔직하게 설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박 대통령이 대통령 직속으로 통일준비위원회를 구성했는데 잘될까요?

“저도 통일준비위 위원으로 참여했습니다만 기대가 큽니다. 왜냐하면 보수와 진보, 여와 야, 정부와 민간이 함께하는 통일 준비 모임을 만든 것은 처음 있는 일이거든요. 역사적인 일이라고 봅니다. 진보 인사가 적으니 어쩌니 하는데 그런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고 함께 참여했다는 것이 의미가 크다고 봅니다. 내편 네편을 떠나 대결국면에서 벗어나 마음을 열고 국민 모두가 공감하는 통일 준비를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통일 방안은 어떤 방향이어야 한다고 봅니까?

“통일의 목표는 평화와 공동번영이어야 합니다. 그걸 위해서는 우선 우리 국민이 합의해야 하고, 남북이 합의해야 하며, 주변국의 합의가 있어야 가능합니다. 독일도 주변국의 합의가 있었기에 통일이 가능했습니다. 독일과 달리 우리는 전쟁까지 했기 때문에 물리적 결합만으로 안 됩니다. 반드시 화학적, 생물학적 사회 통합을 해야 합니다. 북한 주민 2300만명 중 2000만여명이 우리로 치면 기초생활대상자거나 차상위계층인데 서둘러 물리적 통합을 하는 것은 한마디로 재앙이지요. 박 대통령이 통일대박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 북이 흡수통일 기도라고 주장하는 데 대해서도 오해를 풀어줘야 합니다. 통일이 우리한테는 대박이고 북한한테는 쪽박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시켜 줄 필요가 있습니다.”

-국내 정치에 대해 좀 여쭙겠습니다. 김 전 대통령이 지역감정 해소에는 실패했다고 봐야겠지요. 지금도 해결이 안 되고 있지 않습니까?

“지역갈등은 국민 의사와 상관없이 정치인들이 이용하는 게 문제지요. 정치인들이 극복할 생각은 하지 않고 재생산하는 꼴 아닙니까. 안타깝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한테 더 큰 문제는 영호남 갈등보다 수도권과 지방 간 갈등, 세대 간 갈등이라고 봅니다.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봅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큰 선거에서 잇따라 패배해 초상집 분위기인데 김 전 대통령이 살아 있다면 어떤 조언을 할 것 같습니까?

“새정치연합이 말하는 진보는 이미 지구상에서 사라진 지 오래되었습니다. 현실정치를 해야 하는데 이미 사라지고 없는 진보의 허상을 붙잡고 있으니 국민의 선택을 받을 수 없지요. 김 전 대통령은 생전에 ‘국민보다 반보만 앞서가는 정치를 하고 그런 정책을 펴라’고 했습니다. 국민 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과거에 빠져 있으니 국민들이 외면하는 거지요.”

김 원장은 이 부분과 관련해 야권의 ‘김대중 극복론’을 언급했다. 작심한 듯 강한 어조로 유감을 표명했다.

“새정치연합에서 김대중·노무현 극복 어쩌고 하는데 어불성설입니다. 그분들은 지금까지 김대중·노무현의 정신과 자세를 계승하거나 따르지는 않고 이름만 이용했을 뿐입니다. 제대로 따르지도 않았으면서 지금 와서 극복하자는 것은 도대체 무슨 얘기인지 모르겠습니다.”

청와대 수석비서관과 장관 시절 얘기도 좀 들어봤다. 김 원장은 대통령과 수석·장관과의 관계에 대한 질문에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수석은 대통령을 자유롭게 만날 수 있어야 합니다. 비서실장을 경유하지 않고 직접 대면보고를 할 수 있어야 제대로 된 보좌가 가능합니다. 수석은 내각의 국정과제 수행을 지원하고 점검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수시로 대통령을 만나 조율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비서실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수석이나 장관 중에서는 자신의 업무를 원활히 수행하기 위해 대통령을 자주 만나려고도 하지만 만남을 피하려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업무에 자신이 없기 때문이지요. 지금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대통령은 수석이나 장관들을 예고 없이 수시로 불러 현안을 챙겨야 합니다. 그래야 긴장하게 되고, 그것은 대통령이 비서실과 내각을 장악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기도 합니다.”

김 전 대통령 기념 및 추모사업에 대해 물어봤다.

-김대중기념사업회, 김대중평화센터, 김대중아카데미, 김대중도서관의 역할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헷갈리기도 하고요.

“김대중평화센터가 주축입니다. 김 대통령이 정계 은퇴해 있을 때인 1994년 아태민주지도자회의를 만들어 김 대통령이 이사장을 맡았습니다. 청와대로 옮겨가신 뒤 제가 이사장을 맡았다가 2005년 평화센터로 재편하면서 김 대통령이 이사장을 지냈으며, 서거 후에는 이희호 여사가 이사장직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기념사업회는 서거 후 만들어진 조직이고요. 김대중아카데미는 평화센터에서 김 대통령에 대한 연구 및 교육사업 등을 총괄하기 위해 만들었으며 제가 원장입니다. 그리고 2013년 목포에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을 건립했는데 전윤철 전 감사원장이 이사장을 맡고 있습니다. 김대중도서관은 94년에 만든 아태평화재단이 대통령 재임 중이던 2002년 연세대에 기증해 건립한 것으로 도서관과 박물관 기능을 함께 수행하고 있습니다.”

노벨 평화상 상금의 사용처에 대해 물었더니 김 원장은 “3억원은 김대중도서관에 기증됐으며, 8억원은 그 이자가 김대중평화센터의 각종 사업자금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답했다.

-5주기 추모 행사는 어떻게 진행됩니까?

“추모위원회가 구성돼 위원장을 새누리당 출신인 정의화 국회의장이 맡고 있습니다. 18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추도식을 하게 되며 도서관 내 대통령 집무실 개방, 김대중평화캠프, 추모 토크쇼 등 전국적으로 다채로운 행사가 진행 중입니다.”

만난 사람=성기철 논설위원 kcs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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