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철 칼럼] 정부조직 개편, 하긴 할 건가 기사의 사진
우리나라 법률 제1호는 정부조직법이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1948년 8월 15일)을 앞둔 7월 17일, 국회는 본회의를 열어 헌법을 확정한 뒤 곧바로 정부조직법 제정안을 통과시켰다. 정부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중앙행정기관 설치와 그 조직 및 직무의 범위를 정한 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첫 중앙행정 조직은 11부 4처였다. 내무부 외무부 국방부 재무부 법무부 문교부 농림부 상공부 사회부 교통부 체신부와 총무처 공보처 법제처 기획처. 17부 3처인 지금과 별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전체 규모는 천양지차다. 짧지 않은 헌정사를 반영하듯 정부 출범 당시 이름을 그대로 간직한 부처는 국방부 법무부 법제처 등 3곳뿐이다.

정부조직법은 그동안 58번이나 개정됐다. 장기 집권을 했던 이승만정부와 박정희정부에선 개정이 잦지 않았지만 그 이후에는 매년 한 번꼴로 손질됐다. 개편이 거의 없는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에선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개정이 잦다고 해서 꼭 나쁜 것은 아니다. 새 정부의 의욕적인 국정목표와 변화하는 행정수요를 반영하다 보면 바꿀 수밖에 없는 경우가 생기기 마련이다. 박정희정부의 경제기획원, 전두환정부의 체육부, 김영삼정부의 정보통신부, 김대중정부의 행정자치부 신설과 이명박정부의 대폭적인 부처 통폐합 등이 대표적인 예다. 현 정부의 미래창조과학부 신설도 마찬가지다.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수습 대책으로 정부조직 개편 계획을 공표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된다. 지금과 같은 정부조직으로는 국민안전 보장과 국가 혁신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했다고 본다. 국가안전처 신설, 해양경찰청 기능 분산, 인사혁신처 신설이 핵심이며 뒤이어 교육·사회·문화 총괄 부총리 신설 구상까지 내놨다. 조직이나 기구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과 운용의 문제라는 이유로 코웃음을 치는 사람도 적지 않지만 행정부 수반이 새로운 시도를 해보겠다는데 굳이 반대할 이유는 없다.

문제는 정부조직 개편에 추진 동력이 전혀 붙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박 대통령이 이런 계획을 발표한 것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한 달쯤 지난 5월 19일로, 3개월이 다 돼간다. 안전행정부를 통해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것도 두 달이 지났다. 지난달 초엔 새정치민주연합이 상당히 다른 내용의 별도 조직개편안을 발표했다. 청와대와 야당의 생각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양측 안이 나왔으면 곧바로 협상을 해서 결론을 내는 것이 순리 아닌가. 여야 지도부가 이 문제를 놓고 한번이라도 협상했다는 소릴 들어본 적이 없으니 참 답답하다.

청와대와 여야의 집단 직무유기다. 우선 대통령부터 의지가 있는지 의문스럽다. 대국민 담화를 통해 조직 개편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법 개정안까지 국회에 보냈으면 당연히 새누리당에 대야 협상을 독려해야 하는 것 아닌가. 박 대통령은 11일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면서 경제활성화법의 조속한 처리 당부와 함께 정부조직법을 거론했지만 전혀 무게가 실리지 않았다. 정무수석을 매일 여의도에 보내서라도 여야에 협조를 구해야 할 텐데 남의 일 보듯 한다는 느낌이다. 새누리당마저 청와대 눈치만 볼 뿐 적극 나서지 않으니 협상이 이뤄질 리 만무하다. 새정치연합은 이 문제에 아예 관심이 없는 듯하다.

정부조직 개편 지연으로 해당 부처 공무원들이 일손을 놓고 있는 것은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해체 수준의 개편이 예고된 안전행정부와 해양경찰청은 말할 것도 없고 해양수산부, 소방방재청 등도 몇 달째 뒤숭숭한 분위기다. 공직사회 특성상 자기 자리 걱정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해양경찰청 직원들은 사기가 땅에 떨어져 있다. 이런 상황을 방치할 경우 국민안전 보장은커녕 더 큰 사고를 부를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온다. 박 대통령과 청와대 비서실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늑장을 부리는지 모르겠다.

성기철 논설위원 kcs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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