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이순신 장군 13대 종손도 항일무장투쟁 첫 확인 기사의 사진
민족문제연구소가 14일 공개한 1919년 6월 21일자 신한민보 기사.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13대 종손 백암 이종옥 선생이 독립군 결사대 활동을 하다 일본 경찰에 체포돼 옥고를 치른 내용이 담겼다. 김지훈 기자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13대 종손 백암(白巖) 이종옥(1887∼1941) 선생이 항일 무장투쟁을 벌인 사실이 처음 확인됐다. 독립군 양성 학교인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한 이 선생이 독립군 결사대 활동을 하다 일본 경찰에 체포돼 옥고를 치른 사실을 기록한 당시 신문이 발견된 것이다.

민족문제연구소는 14일 이 선생의 행적을 다룬 신한민보(新韓民報)를 공개했다. 신한민보는 일제 강점기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발간된 교민단체 ‘대한인국민회’의 기관지다. 신흥무관학교는 일제 강점 초기 최대의 독립군 기지였다. 우당 이회영 선생 등이 1911년 중국 지린성 유하현에 설립했다.

신한민보는 1919년 6월 21일자 3면에 ‘만주에서 하와이에 도착한 암호로 전달된 통신에 의지하건대 길림성에 있는 우리 독립군 50여명의 결사대를 조직하고 한국 경성에 들어가 부자들로부터 수십만원을 구해 군비를 조달하다가 왜놈에게 빼앗기고 11명의 독립군이 체포됐다’고 보도했다. 이어 ‘이들은 안경식, 차병제, 손창준, 리기원, 리해삼, 리종옥, 주국영, 리우영, 박기제, 송동호, 조규수 선생이다. 리종옥씨는 수군통제사 충무공의 종손이고 조규수씨는 십수년간 조국과 원동(연해주) 각처에서 교육과 정치 방면으로 국가 민족에 희생적으로 노력해온 열렬한 애국지사’라고 보도했다. 당시는 국내 언론은 일제의 탄압에 극도로 위축된 상황이어서 독립운동 소식을 다루지 못했다.

덕수이씨 충무공파 종친회 측은 “족보 확인 결과 이 선생이 충무공의 13대 종손이 맞으며 신흥무관학교에서 2년 동안 재학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 선생은 3·1운동 직후 만주 독립군의 국내 활동이 활발했던 시기에 자금조달 등을 위해 국내에 들어왔다 체포된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신흥무관학교 출신들이 세운 독립군 기지인 백서농장에 대한 필사본 기록인 ‘백서농장사’도 이 선생이 이곳에서 간부로 활동했다고 적고 있다. 연구소는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의 위탁을 받아 ‘신흥무관학교인명록’ 편찬 작업 중 위와 같은 사실을 발견했다.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에 따르면 이 선생의 장남인 이응렬(1914∼1993) 선생도 1942년 4월 14일 반일 언동을 한 혐의로 서울 용산경찰서에서 심문을 받으며 “나의 부친은 중국 군관학교를 졸업하고 만주로 도망쳐 조선독립운동을 위해 활약했다”고 말했다. 그는 “아버지는 조선인 전체가 일치단결하여 조선인이라는 각오를 가지고 있다면 언젠가는 조선도 독립할 것이라고 들려주었다”고 전했다. 여기서 중국 군관학교는 신흥무관학교를 일컫는다.

연구소 조세열 사무총장은 “그동안 이 선생의 구체적인 독립운동 활동이 드러나지 않았다”며 “충무공의 종손이 독립군 결사대로 최일선에 나섰다는 구체적인 사료가 발굴되면서 우리 사회 지도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대한 귀감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동우 전수민 기자 lov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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