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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이승한] 프란치스코 교황과 한국교회

[삶의 향기-이승한] 프란치스코 교황과 한국교회 기사의 사진
이탈리아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1182∼1226)는 2000년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예수의 삶을 실천한 인물로 추앙받는다. 그는 23세에 고향 아시시 근처의 다미아노 교회에서 헌신하고 있는 노신부를 만나 회심한 뒤 “나는 가난이라는 부인과 결혼했다”며 평생 가난한 자의 친구로, 병자들의 위로자로 살았다. 길거리에서 만난 한센병 환자에게 입맞춤을 하는 등 ‘평화의 사도’ ‘빈자의 성자’로 예수의 삶을 실천했다. 그런 그에게는 창에 찔린 예수님처럼 옆구리에 창에 찔린 형상이 생겼고 그의 삶에 감동받은 사람들에 의해 작은 형제회가 만들어졌다.

지난 14일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도 ‘가난한 자의 친구’ ‘길거리 사도’로 세계인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 그의 이름은 원래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골리오였다. 2013년 교황에 선출된 뒤 이름을 프란치스코로 했다. 그만큼 그는 예수의 삶을 따랐던 성 프란치스코를 닮고자 했다. 1936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이탈리아 이민 가정의 철도회사 회계원 아들로 태어난 그는 17세에 한 젊은 사제를 만나 영적 감명을 받고 사제의 길로 들어섰다. 22세에 수도원 공동체인 예수회에 입회한 뒤 지금껏 가난한 자를 섬기는 길을 걸어 왔다.

교황 방한을 두려워해서야

한국교회는 교황 방한을 계기로 개신교인 50만명 정도가 천주교로 개종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교황의 대중적 인기로 인해 많은 성도들이 천주교로 갈 것으로 보는 것이다. 사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난한 자들에게 다가가는 인간적인 면모, 탈권위적인 성품,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에 대한 솔직한 사죄, 마피아의 자금세탁소가 된 바티칸은행을 바로잡는 개혁 이미지로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러나 한국교회가 그것으로 인해 염려할 일이 아니다.

가난한 자를 돌보는 삶은 예수를 믿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따라야 하는 삶이다. 손양원 주기철 목사 등 한국교회에도 교황보다 높은 차원의 사랑을 실천한 지도자들이 많다. 지금 교회 지도자들이 위대한 신앙선배들처럼 겸손하게 가난한 자의 친구로 대중에게 다가가지 못하기 때문에 염려하는 것이다.

가톨릭은 교황의 무오설을 따르고 교황을 하나님의 대리자로 여긴다. 이는 성경에 없는 것이며 개신교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교리이다. 중세 가톨릭교회가 이런 교리를 따르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을 처형하고, 면죄부를 파는 행위를 함으로써 종교개혁이 일어났다. 개신교회는 종교개혁의 바탕에서 탄생했고 그 개신교회가 지금 한국의 교회이다. 개신교와 가톨릭은 베드로의 고백대로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앙에서 출발했지만 종교개혁 이후 다른 신앙의 길을 걸어 왔다.

교회 변해야 신도들 돌아온다

하지만 가난한 자를 돌보고 정의를 행하며 하나님의 공의를 이 땅에 실천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따르는 데에는 다름이 있을 수 없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500년 전 가톨릭이 받았던 그 비판을 받고 있다. 가톨릭을 개혁하고자 했던 정신을 지키지 못하고, 세속주의와 인본주의가 교회에 가득하기 때문이다. 개신교회는 항상 스스로 개혁하는 교회이다. 세상의 비판을 이기는 것은 사람의 영광을 추구하는 인본주의에서 벗어나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으로 가면 되는 것이다. 한국교회가 달라지면 떠났던 사람들이 돌아온다.

이승한 종교국장 s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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