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이광형] 비엔날레와 광주정신 기사의 사진
출발은 거창했다. “광주의 민주적 시민정신과 예술적 전통을 바탕으로 한다. 건강한 민족정신을 존중하며 지구촌시대 세계화의 일원으로 문화생산의 중심축을 자임한다. 동서양의 평등한 역사창조와 21세기 아시아 문화의 능동적 발아를 위하여, 태평양시대 문화공동체를 위하여 다양한 민족문화의 고유한 생산방식을 존중한다.”

광주비엔날레 창설문의 일부이다. 광주비엔날레는 예향 광주의 뿌리 아래 광주의 민주정신을 새로운 문화적 가치로 승화시키고자 1995년 태동했다. 2년마다 열리는 행사로 올해 20주년, 10회째를 맞았다. 9월 5일부터 11월 9일까지 개최되는 올해 행사의 주제는 ‘터전을 불태우라’. 관습을 모두 불태우고 실험적이고 혁신적인 전시를 보이겠다는 취지다.

행사에 앞서 비엔날레 측은 20주년 기념 특별프로젝트 ‘달콤한 이슬-1980 그 후’를 지난 8일 개막했다. 하지만 출발부터 삐걱거렸다. 대통령을 풍자해 논란이 된 홍성담 작가의 걸개그림 ‘세월오월’ 전시가 유보되면서 파행을 겪고 있는 것이다. 가로 10.5m, 세로 2.5m 크기의 ‘세월오월’은 80년 5월 광주정신이 세월호 참사의 아픔을 보듬는다는 내용이다. 5·18 당시 시민군과 주먹밥을 나눠주던 오월 어머니가 세월호를 들어 올려 아이들이 전원 구조되는 장면을 표현했다. 작품 속에 박근혜 대통령을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기춘 비서실장의 허수아비로 묘사한 부분이 문제가 됐다. 주최 측에서 수정을 요구했고, 작가는 박 대통령의 얼굴 위에 닭 그림을 붙인 수정본을 제출했다.

광주비엔날레재단은 개막식 당일 윤범모 책임큐레이터 등 관계자들의 회의를 통해 걸개그림의 전시를 유보하기로 결정했다. 예술인들의 반발이 확산되고 참여 작가들이 작품을 철회하겠다고 밝히자 윤 책임큐레이터는 “전시 파행에 따른 도덕적 책임을 간과할 수 없어 사퇴한다”고 밝혔다. 사태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국내외 작가 37명이 참여한 이번 특별전의 한국 작가 17명 중 11명이 ‘세월오월’을 걸지 않으면 작품을 철수하겠다고 밝혔다. 나치 저항 독일 작가 케테 콜비츠의 판화 41점을 빌려준 일본 오키나와 사키마미술관도 이에 동조했다. 콜비츠 작품은 특별전의 하이라이트여서 작품이 철수될 경우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

그러자 주최 측은 부랴부랴 수습책을 발표했다. 9월 16일 홍 작가의 작품 전시 여부 등을 결정하는 대토론회를 열겠다는 것이다. 예술인들은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데 한 달 동안 팔짱만 낀 채 지켜보고 있겠다는 거냐”는 반응이다. 미술계는 이번 파행이 광주비엔날레의 고질적인 문제를 고스란히 드러낸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광주정신’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면서도 정작 기획방향은 갈피를 잡지 못해 정체성의 혼란을 부채질했다는 지적이다. 홍 작가는 2011년 당시 박근혜 대통령 후보가 박정희 전 대통령을 닮은 아이를 출산하는 그림으로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작품이 너무 직설적이어서 풍자와 해학을 예술적으로 승화하는 데는 미흡했다는 비판도 없지 않았다.

그런데도 굳이 홍 작가를 참여시킨 것은 ‘광주정신’에만 집착한 결과이고, 문제가 불거지자 우왕좌왕하는 꼴이다. 이번 사태는 예술을 정치의 잣대로 검열할 수 있느냐, 지나치게 정치적인 작품을 예술로 볼 수 있느냐는 논란도 낳았다. 더불어 광주비엔날레의 행정력과 기획력 부족도 도마에 올랐다. 5·18 민주정신이 세계의 보편적인 민주정신으로 승화하지 못하고 지역정신으로만 남아 있어 ‘그들만의 잔치’가 돼 버렸다.

이광형 문화부 선임기자 g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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