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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커스-오승은] 유고 전범들 폭력성의 이면

[글로벌 포커스-오승은] 유고 전범들 폭력성의 이면 기사의 사진
윤 일병 사망 사건 그리고 그 이전의 군대 폭력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필자는 20년 전 구(舊) 유고슬라비아의 전범들을 떠올리게 된다. 이들은 집단학살과 집단강간 등 소위 ‘인류에 반하는 범죄’를 저지른 죄로 헤이그에서 전범 재판을 받았다.

한국의 군대 폭력 문제나 구 유고의 전범 문제 사이에는 두 나라 사이의 물리적 거리만큼이나 많은 차이가 존재함에도, 군대라는 특수집단에 속한 개인의 폭력성이라는 근본적 속성을 공유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끔찍한 폭력 행위를 저지른 것은 개인이 갖고 있는 폭력성 때문인가. 아니면 다른 구조적 요인 때문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크로아티아의 작가 드라쿨리치는 2000년 전범 재판이 열리는 헤이그로 건너갔다, 5개월간 그곳에 체류하면서 재판정에 나온 전범들을 관찰하였다. 그리고 183페이지에 달하는 재판참관기 ‘그들은 파리 한 마리도 못 죽인다(They would never hurt a fly·2004)’를 세상에 내놓았다.

제한된 지면상 드라쿨리치가 맨 처음에 다룬 고란 옐리시치라는 청년의 얘기만 해보도록 하겠다. 옐리시치는 전쟁 발발 전 고향 강가에서 평온하게 낚시를 즐기던 낚시광으로 특별히 폭력적 성향을 보인 적은 없었다고 한다. 유고슬라비아 내전에 참전하게 되면서 평온했던 성격의 옐리시치는 보스니아의 한 집단 수용소에서 무슬림 13명을 처형한 죄로 40년을 선고받은 전범이 되었다.

옐리시치는 저자가 누누이 강조한 대로 유고슬라비아 역사의 황금기인 티토 시절 빠른 근대화와 고도 경제 성장의 모든 혜택을 받고 자라난 젊은이였다. 그의 세대는 전쟁을 겪어야 했던 할아버지 세대나, 가난과 싸워야 했던 부모 세대와는 달리 처음으로 풍요의 혜택을 누리며 자란 세대였다. 록그룹 U2와 마돈나를 듣고, 미국 영화를 즐겨보며 청바지를 즐겨 입던, 그냥 보통의 유고슬라비아 청년이었다. 증인으로 나온 낚시클럽 회장이 증언한 바대로 ‘사람은커녕 파리 한 마리도 죽이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왜 그 평범한 젊은이가 하루아침에 잔인무도한 전범으로 돌변한 것일까. 저자는 옐리시치 한 개인의 폭력성에 문제가 있다고 보지 않는다. 군대라는 특수집단 속에서 폭력에 동조하지 않으면 자신의 목숨이 위협받는 가운데 양심을 발휘하기는 불가항력이었을 것임을 강조한다.

대신 유고슬라비아 사회의 뿌리 깊은 집단주의에서 원인을 찾는다. 유고 사회의 담론은 가족, 민족, 농민, 인텔리겐치아, 프롤레타리아 등 항상 집단 차원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이렇게 집단주의가 번성하는 조건 속에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능 중의 하나인 폭력 본능을 억제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성찰한다. 역설적이게도 티토가 추구했던 ‘형제애와 단결’이라는 남슬라브 민족 단합정책의 역습이었던 셈이다. 사회주의 유고슬라비아의 국가 통치 이념 ‘형제애와 단결’은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강조되었다. 그러나 그렇게 민족이라는 집단에 우선순위가 주어지는 사이 개개인들이 갖고 있는 개인성 존중의 문화는 상대적으로 약화되는 결과를 초래한 셈이다.

유고 전범의 교훈은 한국 사회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하겠다. 대학의 신입생 환영회, 기업의 집단 접대문화, 엄격한 상급자 권위주의 등 한국 사회도 구 유고슬라비아 사회만큼이나 경직된 집단 사회문화가 만연해 있다. 궁극적으로 집단이 가진 의미와 문화를 바꾸지 않는 한, 그래서 개개인이 인권과 비폭력을 내면화하는 방향으로 사회 전체를 바꿔 나가지 않는 한 집단 폭력의 비극은 더 광폭하게 재생산될 수 있음을 ‘원래부터 악마는 아니었던’ 유고슬라비아 전범들의 경험이 비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오승은 호모미그란스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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