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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이재만 (12) 늦둥이 아들 자극 주려 필리핀 단기 봉사

현지 아이들 힘든 삶 불구 밝은 모습 봉사하러 갔다가 더 큰 은혜 받아

[역경의 열매] 이재만 (12) 늦둥이 아들 자극 주려 필리핀 단기 봉사 기사의 사진
필리핀 빈민지역 봉사를 갔을 때의 이재만 변호사 가족. 이 변호사는 크리스천에게 이웃사랑과 나눔의 실천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내가 신앙인이 되고 변화된 게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인생에 대한 가치관이 예전과 달라져 있었다.

교회생활을 통해 신앙 성장도 이뤄졌지만 집의 ‘기도방’에서 기도를 하고 성경을 읽으면서 인생의 목적이 성공과 부에만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사실 남보다 인생이 늦은 만큼 더 빠르게 따라가 많은 것을 쌓아야 한다고 조바심을 냈었다.

사법시험 합격자들은 대부분 수재 소리를 들으며 성장한 이들이다. 그런데 나는 학창시절 1등을 한 번도 해보지 못했고 삼수를 했고 8년 만에 사시에 합격했다. 외모도 좀 특이하게 생겨 대학시절 별명은 ‘페르난도 산초’였다. 그런데 하나님은 내게 더 많은 것으로 채워 주셨다.

늦둥이였던 나는 부모님이 야단을 치시거나 때리지 않으셨다. 아버지는 약주를 한잔 하시고 늦게 들어오신 날엔 나를 쓰다듬으시며 ‘아들아’ 하고 나직이 부르셨다. 나는 아무리 부족해도 있는 것만으로도 아버지에게 꼭 필요한 귀한 존재였던 것이다. 이런 아버지에게 내가 결혼하는 것도 보여드리지 못하고 손자를 안겨드리지 못한 것은 지금도 너무나 죄송스럽게 여겨지는 부분이다.

그런데 내가 신앙인이 되어 삶을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하면서 이 ‘아버지의 마음’이 오버랩되어 ‘하나님의 마음’도 내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내가 아무리 못나고 신앙인으로 부족하고, 주일을 지키지 못해도 하나님의 아들인 나는 인생을 살아 숨쉬고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귀하다는, ‘영적 자존감’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아버지는 40세에 나를 낳으셨는데 나도 42세에 늦둥이 아들을 낳았다. 늦둥이 아들이다 보니 마치 할머니가 내게 대해 준 것처럼 나는 아들을 손주처럼 키우게 되었다. 내게 혼난 적이 없는 아들이 사춘기에 접어드니 외모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안경알에 보랏빛을 넣었고, 긴 머리는 한눈을 가릴 지경이었다.

내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어서 따끔하게 혼내기도 했지만 나를 할아버지로 여기는 아들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난 아들을 위해 많은 기도를 하면서 그해 여름휴가에 필리핀 단기봉사를 계획했다.

춘천중앙교회 사공정 목사님의 아들인 사공세현 선교사 부부가 사역하는 필리핀 빈민지인 나보타스시 아프간 마을을 찾았다. 이곳은 만조 시에 수상가옥이 되는 바닷가 마을이었다. 차에서 내리니 골목길은 온통 무릎까지 바닷물이 들어차 있고 각종 쓰레기가 둥둥 떠 다녔다. 아이들은 아랑곳없이 수영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끼니를 거르고 있었던 어린이 80여명에게 배식을 하고 예배를 드렸다. 이곳은 범법자들이 있어 예배를 드린 후 서둘러 시내로 나와야 한다고 했다. 해는 떨어져 가고 있어도 우리 가족은 천진난만한 아이들과 함께 찬송하고 기도하며 동심 속에서 하나가 되어 가고 있었다. 가난하고 힘든 삶을 살지만 바로 이곳에 주님이 더 뜨겁게 살아 역사하심을 느끼고 큰 은혜를 받았다.

필리핀 어린이들의 크고 맑은 눈망울, 우리 가족이 가져간 필통 등 작은 선물을 받고 너무나 행복해 하던 천진난만한 미소, 손잡고 울면서 진심으로 하나님에게 기도하던 모습이 내 마음을 계속 뭉클하게 했다.

자기 식사 일부를 덜어서 집에 있는 가족에게 주겠다고 비닐에 담는 착한 모습을 보며 우리 가족은 봉사하러 왔지만 그곳에서 어린아이들로 인해 더 큰 신앙의 도전을 받았다. 아들도 현장에서 많은 것을 느끼는 것 같았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웃을 위해 기도와 사랑, 나눔을 실천할 것을 요구하신다. 이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가 넘친다고 믿는다. 그리고 내가 나눈 것은 반드시 더 큰 은혜와 사랑, 복으로 되돌아온다. 이것은 내가 신앙생활을 하며 얻은 또 하나의 진리다.

정리=김무정 선임기자 k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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