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人터뷰] ‘선플 평화운동가’로 변신한 국민영어강사 민병철 건국대 교수 기사의 사진
민병철 교수는 영어와 선플은 결코 무관한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 14일 인터뷰에서 영어를 통해 세상과 대화하는 한편 선플로써 소통의 품격을 높여 나가는 일에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곽경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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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영어 선구자에서 선플 평화운동가로의 변신’.

40대 이후 세대들에게 민병철 건국대 국제학부 교수는 ‘국민 생활영어 선생님’이었다. 1981년 10월 ‘Good morning everyone. How are you?’라는 인사로 시작된 문화방송의 아침방송 ‘mbc 생활영어’는 단박 국민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문법과 독해 위주의 영어에 익숙했던 사람들에게 혀를 말아 올리고 굴리는 미국식 발음을 하는 한국인과 젊은 외국인이 TV 스튜디오에 나와 진행하는 영어 강좌는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이 프로그램은 그를 ‘영어 스타’로 만들었고, 한국 영어교육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데도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30여년 영어와 함께 살아온 민 교수는 지금 ‘선플달기운동’이라는 또 다른 일에 몰두하고 있다. 2007년부터 본인이 주도해 사람을 모으고 조직을 만들었다. ㈔선플달기국민운동본부(www.sunfull.or.kr) 이사장을 맡아 이 운동을 확산시키고 있다. 지난 6월 말에는 중국 인민일보의 온라인 뉴스인 인민망에서 선플 강연을 마쳤고 오는 9월 중국 칭화대, 인민대 초청으로 다시 중국에서 대학생들에게 선플운동의 취지를 알릴 계획이다. 그는 “선플 달기는 왕따 추방을 넘어 평화운동”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14일 서울 역삼동 유창빌딩의 민병철교육그룹 회장실에서 그를 만났다. 강남의 요지인 테헤란로에 있는 지하 3층, 지상 15층 이 건물은 민 교수 소유다. 테헤란로가 내려다보이는 회장실은 작고 소박했다. 책장의 영어책들, 사진과 감사패 등이 전부였다. 대학 다닐 때 그의 방송에 꽂히기도 했던 터라 당시 얘기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나도 열렬 시청자였다. ‘민병철 생활영어’ 책도 보면서 회화 공부를 했다. 반응이 어땠나.

“(좀 쑥스러워하며) 가히 폭발적이었다. 학생은 물론 직장인, 영어가 당장 필요 없는 주부들까지 TV 앞에 몰렸다. 심지어 그때 영어학원들도 타격을 받았다고 하더라. 반향이 워낙 큰 만큼 엉뚱한 항의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기억나는 게 있다. ‘I want to go’를 ‘I wanna go’로 발음했더니 엉터리라는 것이었다. 한 영어교사가 수준 낮은 미군부대 영어를 당장 때려치우라며 항의전화를 했다는 얘기를 나중에 PD에게 들었다. 지금은 웃지만 당시 우리 영어 환경이 그랬다.”

-자부심, 보람도 많았겠다.

“1981∼84년, 88∼91년에 걸쳐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매일 아침 6시30분부터 하루 30분씩 진행했다. 나도 이렇게 오래 하리라 생각하지 못했다. 미국 있을 때 그곳에 취재 온 기자가 행사 영어 사회를 본 나를 보고 방송을 권했다. 처음엔 겁이 나서 1주일에 두 번 하루 15분씩만 하자고 부탁했으나 먹히지 않았다. 작가도 없이 직접 대본을 써서 방송 전에 무조건 달달 외웠다. 문법 위주에서 실용영어 중심으로 영어학습 패턴을 바꾸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책으로 나온 ‘민병철 생활영어’도 인기가 많았는데.

“그동안 쓴 책이 70∼80권 된다. 그중에서도 5권으로 된 ‘민병철 생활영어’는 대략 100만권 이상 팔렸다. 실용영어 책으로는 가장 많이 팔렸다는 말을 들었다.”

다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당시 수입에 대해 “압구정동 아파트 한 채 살 정도였다”고 밝혔다.

-영어를 언제 처음 접했고 어떻게 공부했나.

“초등학교 때 호주 선교사가 있는 서울 연희동의 교회를 다녔다. 예배 후 선교사 부인이 해주는 스파게티를 먹기 위해 교회를 계속 다녔고 그때 또래의 선교사 자녀들과 지내면서 영어를 처음 경험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레 생활영어도 늘었고, 이어 대학(중앙대 경제학과)생이던 73년 처음으로 20분짜리 KBS 라디오 영어회화 방송을 했는데 이것이 영어 교육자의 길로 들어선 계기가 됐다. 극장에서 ‘벤허’를 전부 녹음해 교재로 활용하는 등 영화로 영어를 가르친 적도 있다.”

-단도직입으로 묻겠다. 영어를 잘하려면 어떻게 공부해야 하나.

“영어는 구구단과 마찬가지다. 우선 기본적인 것은 외워야 된다. 특히 생활영어는 학문이 아니라 기술이다. 김연아와 최경주 선수가 얼마나 많은 연습을 했을까. 수영을 처음 배우는 사람이 물에 뜨기 위해 몇 번의 팔놀림, 어깨놀림, 발차기를 해야 할까. 같은 원리다. 우리가 매일 걷듯 열심히 반복하면 된다. 또 있다. 자신감이다. 우리 학생들은 부끄러움이 너무 많은데 당당하게 하면 된다.”

-당연한 이야기 아닌가.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단어와 문장을 무작정 외우라는 것이 아니다. 상호 연관성이 있는 단어와 문장을 외워야 된다. 즉 클러스터 영어를 만들어 반복적으로 연습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그냥 듣기만 해서는 안 된다. 눈으로 수영을 보기만 한다고 수영을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반드시 말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말하는 만큼 들리지만 듣는 만큼 말할 수는 없다.”

-클러스터 영어를 어떻게 활용하나.

“말하고 싶은 표현을 질문과 답변 형태로 10개 정도 문장을 만든다. 이 문장은 자신에게 가장 필요하고 실용적인 내용이어야 한다. 이를 가능하면 원어민에게 녹음하게 한 후 반복적으로 공부하면 된다. 점차 문장들을 늘려 수백개쯤이 되면 자기도 모르게 실력이 부쩍 는다. 재차 강조하지만 영어 공부는 ‘자신과 상관있는’ 것을 해야 한다. 본인과 무관한 것은 공부하기도 어렵거니와 별 의미가 없다.”

-조기 영어교육은 필요한가.

“당연하다. 초등학교 이전에 시작해야 된다고 본다. 10대 초반이면 영어 공부 환갑 나이다. 중요한 것은 이때 공부를 시켜야 된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방송 등을 통해 영어 프로그램을 보게 하거나 동화책을 읽어주는 등 영어에 관심을 갖게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발음도 그렇다. 발음이 좋으면 물론 좋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정확한 발음과 콘텐츠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좋은 사례다. 그는 영어를 통해 세계를 품지 않나. 박지성 선수 영어도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조기 유학 또는 어학연수를 어떻게 생각하나.

“필요 없다. 초등생 나이면 영어는 물론 우리말의 어휘와 문장력 공부에도 가장 중요한 때다. 영어 공부만을 위해 해외 나갈 경우 모국어를 잃을 우려가 있다. 결국 모국어를 잘하는 사람이 외국어도 능통하다. 국내에서도 충분히 공부할 수 있다.”

-앞으로 주안점을 두는 영어교육은.

“민병철교육그룹이 7월 중순 출시한 클라우드 방식인 ‘민병철유폰2.0’에 주력하고 있다. 전화로 듣기와 말하기, 쓰기를 함께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외국인과 실제로 대화할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관심이 몰리고 있다.”

선플로 말머리를 돌렸다. 요즘 민 교수가 가장 관심을 두는 사안이다. 그는 선플을 영어로 ‘sunfull’로 표현했다. 본인은 별 의미가 없다고 했지만 번역하자면 햇살이 가득하다는 뜻이다. 밝고 희망찬 의미를 제대로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플달기운동은 언제, 왜 하게 됐나.

“모체는 2005년부터 시작한 추임새운동이었다. 남을 칭찬하고 배려해서 잘되게 하자는 뜻에서 2006년 추임새운동본부를 만들어 이사장을 맡아 활동했다. 그러다가 2007년 초 가수 유니가 악플에 시달리다 자살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충격을 받았다. 당장 그해 1학기부터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각각 유명인 10명의 개인 홈페이지나 블로그 등을 방문해 선플을 달도록 과제를 냈다. 당시 온라인 수강생들이 570명이었는데 1주일 새 인터넷에 선플이 5700개 달렸다. 작지만 큰 변화 아닌가. 이때부터 조직적으로 선플운동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시작했다.”

-영어 교육자와 선플 달기가 잘 연관이 되지 않는데.

“영어를 통해 세계무대에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는 것과 선플로 사람들과 긍정적 관계를 맺는 것은 소통이란 측면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영어와 선플 에티켓은 습관처럼 몸에 익혀야 자기 것이 되고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점에서도 맥락이 비슷하다.”

-선플달기운동이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력을 미치나.

“윤 일병, 임 병장 사건에서도 보듯 언어폭력은 모든 폭력의 시작이다. 사이버 폭력도 마찬가지다. 선플은 폭력화되는 과정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온라인에서의 활동이지만 결실은 오프라인에서 맺는다. 국가 간의 다툼이 있더라도 해당 국민들끼리는 선플로 화해할 수 있다.”

-또 다른 장점은 뭔가.

“선플을 달면 가장 먼저 스스로 변화된다. 이처럼 개인이 바뀌면 사회가 변한다. 악플은 소리 없는 총과 같다. 악플의 상처가 그만큼 깊고 크다는 말이다. 선플은 악플을 치유하는 유일한 수단이다.”

-그동안 성과는 어땠나.

“학생들의 선플달기운동이 CNN, LA타임스 등에 알려지면서 큰 반향이 일었다. 현재 전국 6000여곳의 학교와 단체에서 참가하고 있다. 운동본부에는 40만명의 청소년이 등록돼 있으며 19대 국회의원 중 294명이 참가하겠다는 서명을 했다. 본부 홈페이지에 남겨진 선플은 550만개가 넘는다. 앞으로 한국에서 1000만개, 아시아 전역에서 1억개의 선플이 달렸으면 좋겠다.”

-선플달기운동과 관련해 구체적 계획이 있다면.

“지난 3월 말 63세 딸이 구순의 노모를 인력거에 태우고 중국 전역을 구경시킨 쓰에슈화 모녀 이야기가 전 세계를 감동시킨 적이 있다. 다음 달 23일 이 노모를 한국에 초청하기로 했다. 이들의 사연을 알리고 이를 선플달기운동을 통해 퍼뜨릴 생각이다. 효심을 알린다는 것 자체가 스토리가 있는 선플 아니겠나. 특히 인구가 많은 중국에서의 선플달기운동이 활발해지기를 바란다. 앞으로 천안문광장에서 선플달기운동을 펼친다는 방안도 생각 중이다.”

-본인은 선플운동을 어떻게 실천하고 있나.

“아나운서인 며느리에게도 방송에서 볼 때마다 수시로 격려의 문자를 보내고 학생들 개인 블로거를 찾아 선플 답글을 자주 올린다.”

-정치권 진출 얘기도 있었는데.

“요즘 얘기가 아니다. 한때 여야 모두 제의를 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나와는 맞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관심이 전혀 없다.”

-앞으로 계획은 무엇인가.

“내게는 두 가지 삶의 궤적이 있다. 하나는 영어교육이고 또 하나는 인터넷을 통한 평화운동이다. 세계 통용어인 영어를 보다 더 잘 활용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동시에 인터넷에 기반을 둔 선플달기운동에 주력하고자 한다. 영어와 선플, 이 두 가지는 내 필생의 관심이다.”

민병철 교수는 누구

민병철 교수의 직함은 많다. 실용영어 교육자, ㈔선플달기국민운동본부 이사장, 공공외교 대사, 작가, 방송인 등 여럿이다. 지인도 많고 활동 범위가 넓다. 정치인, 기업인, 학자, 예술인, 교육자, 언론인 등 그의 휴대전화에는 분야를 망라한 많은 사람들의 연락처가 있다.

광폭의 교유를 가능케 하는 동력은 뭘까. 그는 누구보다 열정적인 사람이다. 중국 인민망에서 강연하게 된 계기가 대표적인 사례다. 수년 전 서울 중구의 프레스센터에서 볼일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우연히 중국의 인민일보 서울지사 사무실이 그곳에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무작정 들어가서 지사장 면담을 요청했다. 신분을 밝히고 선플운동의 취지를 설명했다. 이후 인민일보 서울지사장과는 가까운 사이가 됐다. 지명도가 있는 사람으로서는 하기 힘든 행동이었다.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그는 밀어붙인다.

한편으로 그는 철저하게 자신을 관리한다. 동안(童顔)의 비결과 젊은이 같은 날렵한 몸매 역시 부단한 자기 절제에서 비롯됐다. 그는 인터뷰에 앞서 정확한 나이를 밝히지 말 것을 요청했다. 민병철어학원 사업자들이 자신의 나이가 공개되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진을 보고 실제 나이를 알게 되면 깜짝 놀랄 것이다.

△중앙대 △미 노던 일리노이대 교육학 석·박사 △한일월드컵조직위원회 자문위원 △미 뉴욕대(NYU) 초빙학자 △중앙대 부교수 △민병철교육그룹 회장 △건국대 국제학부 교수, ㈔선플달기국민운동본부 이사장, 외교부 사이버공공외교대사

정진영 논설위원 jy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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