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박종성]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기사의 사진
조상들의 오랜 거주 내력을 근거로 영토를 차지하는 발상은 일찍이 신화적 전승에서 나타난다. 고구려의 건국 시조인 추모대왕이 비류국왕 송양과 누가 더 오래전에 나라를 세웠는가 하는 것으로 대결을 벌였다. 물론 송양의 비류국이 오래되었지만 추모대왕은 비류국의 고각(鼓角)을 훔쳐와 이것을 빌미로 자신이 오래전에 이 땅에 나라를 세운 연원이 있음을 주장하며 비류국을 굴복시킨 설화적 역사가 전해진다.

신화론 관점에서 보면 고대신화의 성격이 윤리적 준거를 뛰어넘어 대결의 승패가 중요시되는 특징을 갖는다고 할 수 있기에 추모대왕의 일종의 속임수는 당시로서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신라의 석탈해 역시 경주 땅에 들어와서 신라 호족인 호공의 집을 속임수를 써서 빼앗은 후 왕으로 등극한 사례도 있다.

2005년 이란의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메카 연설에서 유럽 국가들이 이스라엘의 국가 수립을 지원하는 것은 홀로코스트에 대한 죄의식 때문이라고 비판한 적이 있었다. 이에 대해 당시 이스라엘 정부의 대변인 라난 가신은 자신들의 조상이 다른 어떤 민족들보다 예루살렘 지역에 오래 살고 있었고, 따라서 자기네 조상들의 땅인 예루살렘 지역에 영원히 머물러 살아갈 수 있는 생존의 권리가 있다고 응수했다.

이렇게 보면 이스라엘의 대응 논리에는 고대신화 혹은 설화적 발상과 그 맥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최근 들어 이스라엘의 가자지구에 대한 무차별적 공격 행태가 국제사회의 비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정책이 유대인에 대한 나치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하는 강경한 해석과 비판이 세계 각국에서 등장하기도 한다.

유대 민족의 오랜 방랑생활과 고통이 지금은 ‘디아스포라’라는 이름으로 널리 통용된다. 이웃 민족들로부터 받은 부당한 고통과 민족의 시련 등이 인류 역사에서 새겨들어야 할 교훈들을 들려주지만, 기실 이 디아스포라 담론을 대외적으로 말할 수 있는 전제 조건은 이른바 세계적으로 정치 권력이나 경제 권력의 소유에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디아스포라 담론을 통해 보편적 인류의 가치를 구현하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전 인류가 눈길을 주고 같이 아파해야 할 슬픈 민족들이 지금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은지 곱씹어볼 필요가 있는 것은, 정작 그 슬픈 민족들은 디아스포라를 한마디도 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유대 민족의 오랜 유랑 생활과 홀로코스트 경험이 이스라엘이 행하는 모든 행위에 면죄부를 주지는 못한다. 지난달 16일 이스라엘의 아일렛 새이크라는 한 여성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팔레스타인인들은 실질적으로 모두 다 테러리스트들이고 그들을 낳고 기르는 부모들은 테러리스트를 공급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에 모든 팔레스타인 엄마들을 죽여야 한다는 섬뜩한 발언을 게시했다.

이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정책의 이면에 ‘∼일 것 같은 주체들’로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규정하는 일종의 강박증이 잠재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우월한 권력을 가진 쪽에서 열등한 쪽을 향하여 잠재적인 위험성 운운하면서 일종의 인종청소와 연계될 수 있는 인류 최악의 범죄행위를 정당화하는 것은 가당치 않은 일이다.

2003년 요르단 신문 ‘아드-두스투르’에 아우슈비츠의 수용소로 가는 철도에 나치 깃발 대신 이스라엘 국기가 등장했던 만평이 더 이상 떠올라서는 안 될 일이다. 비열하고 잔인한 테러는 인류의 역사에서 사라져야 할 흉물이요, 응징의 대상임에 틀림없다. 그렇지만 테러를 쓸어버리겠다는 자기네들만의 정염적 확신에 찬 명분을 근거로 어린아이의 목숨까지 죄의식 없이 걷어가는 식의 무차별적 폭력을 자행하는 것은 테러리즘으로의 회귀일 뿐이다.

박종성 교수(방송통신대·국어국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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