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이흥우] 대체복무 공론화할 때 기사의 사진
‘양심의 자유’와 ‘국방의 의무’가 충돌할 때 우리나라는 후자를 우선한다. 양심의 자유는 헌법이 보장한 불가침의 기본권이 분명하나 병역을 거부하는 양심의 자유까지 인정하지 않는다. 대법원은 지난달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입영을 거부한 20대 청년에 대해 징역 1년6월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헌법재판소가 2004년 양심적 병역거부를 처벌하는 병역법 88조를 합헌으로 결정한 이래 ‘양심적 병역거부=징역 1년6월’은 공식으로 굳어졌다.

해마다 600명 안팎의 청년들이 종교적 신념 등을 이유로 입영을 거부하고 있다. 이들은 집총(執銃) 아닌 다른 방법으로 국방의 의무를 대신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대체복무다. 대체복무제는 징병제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에서 양심적 병역 거부자가 일정 기간 사회복지요원 또는 사회공익요원 등으로 사회봉사활동을 하면 군 복무를 대체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아직은 남의 나라 얘기다.

세계적으로 징병제를 실시하고 있는 국가는 80여개에 이른다. 이 가운데 40여개 국이 대체복무를 허용하고 있다. 특히 나치의 부끄러운 전쟁을 경험한 독일은 헌법상 권리로 병역거부권을 보장하고 있다. 여성에게도 병역의무를 지우는 이스라엘도 대체복무제를 실시하고 있다. 유사시 세계 최대 규모의 230만 중국 인민해방군과 대치해야하는 대만에서조차 대체복무제가 실시되고 있는 건 의외이다. 우리보다 국방환경이 취약함에도 대만은 종교적 이유뿐 아니라 심신장애나 질병이 있는 가족을 부양할 경우에도 대체복무를 폭 넓게 허용하고 있다. 주목되는 건 이들 40여개 국가의 대체복무 기간이 대부분 군 복무 기간보다 길다는 점이다.

유엔은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차별 금지와 대체복무제를 권고하고 있다. 유엔 인권위원회는 1997년 정치적·종교적 이유 또는 신념의 이유로 양심적 병역 거부자가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고 결의했다. 우리나라도 노무현정부 시절 유엔 권고에 따라 대체복무제 실시를 추진한 적이 있다. 국방부는 2007년 종교적 병역 거부자의 대체복무를 허용하는 ‘병역이행 관련 소수자의 사회복무제 편입 추진방안’을 발표했다. 이를 토대로 국방부는 2008년 말까지 관련 병역법 개정을 마치고 2009년 초 시행한다는 구체적인 시간표까지 내놓았다.

그러나 이 방침은 이명박정부 출범으로 백지화됐다. 당시 여론조사에서 대체복무 도입에 찬성하는 의견이 다수였음에도 이명박정부는 국민적 합의 미비를 이유로 유보시켰다. 지난해 11월 한국갤럽이 121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양심적 병역 거부자의 대체복무 허용에 대해 ‘찬성한다(68%)’ 의견이 반대(26%) 보다 월등히 많았다. 대체복무기간은 군 복무 기간보다 길어야 한다(62%)는 게 대체적인 의견이다.

대체복무를 허용할 경우 국민개병주의 원칙에 어긋나고 병역기피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적잖다. 분단 현실을 도외시한 채 병역의무의 예외를 확대할 경우 심각한 병력 부족 현상에 직면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현 병력 규모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매년 30만 명이 현역으로 입대해야 한다. 이 가운데 신념 등을 이유로 병역을 거부하는 젊은이는 0.2%에 불과하다. 우리 사회가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다. 형평성 문제는 대체복무기간을 군 복무 기간보다 길게 하면 해소할 수 있다. 노무현정부 시절 정한 대체복무 기간은 군 복무 기간의 2배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로 처벌받은 사람은 1만7000명이 넘는다. 세계적으로 병역거부 수감자의 90% 이상이 한국인이라고 한다. 양심적 병역 거부자를 감옥으로 보내는 것은 개인은 물론이고 국가에도 어떠한 실익이 없다. 전과자로 만들기보다 다른 방법으로 국가에 헌신할 수 있는 길을 터주는 게 훨씬 효과적이고 국제사회 기준에도 부합한다. 잇따른 군 사고를 막기 위한 병영제도 개선책을 마련할 때 이 문제도 함께 논의돼야 한다.

이흥우 논설위원 hw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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