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人터뷰]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에게 ‘세월호 정국’ 해법을 듣다 기사의 사진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가 현 정국에 대한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그는 정치권이 세월호 유가족과의 진정한 소통에 나서야 하며, 유가족은 여야의 진흙탕 싸움에 개입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또 새정치민주연합이 여야의 세월호 특별법 합의안을 두 차례나 파기하고, 대여 강경 투쟁을 선언하고 나선 것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이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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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4개월이 훌쩍 지났으나, ‘세월호 정국’은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채 오히려 꼬여만 가고 있다. 국회가 해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는데 올 스톱 상태다. 유가족들은 여야 원내대표가 합의한 세월호 특별법을 두 차례 거부한 채 박근혜 대통령에게 책임지라면서 농성 중이다. 새정치연합은 급기야 대여 강경투쟁의 길로 접어들었다. 거리와 국회를 오가며 정부·여당을 압박할 예정이다. 새누리당은 정국 해법 마련에 적극적이지 않다. 유가족과의 만남을 재개했지만 아직 여야가 재합의한 특별법안 이행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청와대는 사태 추이를 주시하고 있을 뿐이다. 어떻게 풀어야 할까.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에 관해 뛰어난 통찰력을 보여 온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로부터 세월호 정국의 해법과 7·30재보선 패배 이후 재기를 모색 중인 야당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현 정국을 어떻게 보고 있나.

"파국이다. 파국은 유동적이다. 희망의 방향으로 갈 수도 있지만 절망적으로 악화될 수도 있다. 지금은 혼란이 가중되는 국면이다. 표면에 세월호 유가족이 있다. 세월호 참사는 국가적 재앙이다. 유가족들이 일어선 것은 당연하다. 그들에게는 도덕적 권위가 있다. 그들과 잘 소통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 정치권은 소통 부재다. 전략과 전술만 있다."



-'잘 소통해야 한다'는 의미를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친구 사이의 소통은 쉽다. 그러나 생각이 매우 다른 사람과의 소통은 어렵다. 소통하기 위해선 첫째 충분히 들어야 한다. 큰 소리로 자기주장만 하면 실패한다. 상대의 말을 열린 마음으로 들어야 한다. 두 번째는 상대 발언을 상대 관점에서 해석해야 한다. 그러면 '차이'를 알게 된다. 드러난 '차이' 안에서 공유할 수 있는 접점을 찾을 수 있다. 그 접점을 붙잡고 대화해 한 발 한 발 나아가야 한다. 그래야 참여자들이 책임의식을 가질 수 있다. 내 행위에 대해 책임을 지겠다는 '적극적 신뢰'가 이뤄지면 해결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 이것이 소통의 본질이다. 그 과정은 매우 지난(至難)할 것이다. 시간도 필요하고 인내심도 요구된다. 경험과 학습도 필요하다. 권력 행사나 경제적 유인, 심리적 압박으로는 소통이 안 된다. 지금은 소통의 복원이 절실하다. 여당도 깨닫지 못하고, 야당도 실수의 연발이다. 우리 정치권에는 진정한 소통의 문화가 없기 때문이다."



-'안전한 대한민국'으로 나아가기 위해 해야 할 일은 뭐라고 생각하나.

"항간에는 유가족이 터무니없는 주장을 편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진실 규명'만을 요구하고 있다. 그들은 한국정치를 불신하고 있다. 따라서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아르헨티나에 '오월광장의 어머니회'라는 단체가 있다. 이들은 군부독재 정권에 의해 자녀가 실종된 경위를 파악하기 위해 1977년 모이기 시작했다. (당시 실종자는 총 3만여명에 이른다. 군부독재 정권은 수많은 학생, 청년, 운동가들을 납치·고문 살해했다.) 처음에는 탄압받았지만 결국에는 군부독재 정권을 무너뜨리는 역할을 했다. 이처럼 자식 잃은 부모는 특별한 존재다. 그들이 요구하는 '진실 규명'은 상당한 호소력과 공명이 있다. 세월호 참사로 터진 국민 요구를 사회 발전의 동력으로 활용해야 한다. '생명을 지켜야 할 기관들이 이렇게 무책임할 수 있나'라는 아우성 안에 사회 발전의 에너지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우리나라 정치권은 이렇게 분출된 에너지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여러 번 기회가 왔으나 유실했다. 이번만은 달라져야 한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과도한 욕심을 자제하면서 다같이 승리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우선 자녀를 잃은 부모의 소망이 성취되는 길을 열어야 한다. 이들은 당장 진실 규명을 요구하지만 궁극에는 자녀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시민의 안전을 보장하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원한다. 그 길을 정치권이 열어야 한다. 한 보기로, '안전사회 건설 시민검증단'을 공적 기구로 만들 수 있다. 그 안에 '세월호 진상규명 시민감시위원회'를 두어 진상조사, 특검 활동을 청취하고 시민사회의 압력과 기대를 제도권에 투입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이 기구가 유가족, 전문가, 시민과 함께 생활 현장에서 위험들을 파헤치고 보고하며 정부가 제대로 개선하고 있는지 모니터링(검증)을 할 수 있다. 그러면 세월호 희생자들이 사회 발전의 귀중한 씨앗으로 살아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공적 기구라고 말했는데.

"여야가 합의해 '시민검증' 활동을 제도화한다는 얘기다. 이것은 단순한 대의민주주의, 거리투쟁을 넘어 '시민검증 민주주의'를 제도화시키는 획기적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박 대통령이 내건 국가 개조와도 관련된다. 이를 위해 우리 사회 도처의 위험과 안전 문제를 청취, 점검하는 이런 기구에 공적 권위를 부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실현 가능성은 있다고 보나.

"정치권이 대승적 안목을 갖는다면 합의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시민사회 에너지를 제도화하는 데 우리가 실패해온 점을 차제에 깊이 반성해야 한다. 기술적 조건은 충분하다. 정부의 안전사회 약속을 주로 모바일 전화기로 추적 검증하는 활동이 성공한 사례는 해외에 많다. 우리나라는 이보다 훨씬 수준 높은 온라인 소통망을 가지고 있다."



-여야의 세월호 특별법 합의안을 유족이 거부했는데.

"여야의 진흙탕 싸움에 유족이 개입하면 흙탕물을 뒤집어 쓸 수 있다. 이념 갈등이 개입하면 상황은 더 복잡해진다. 이를 막아야 한다. 유가족을 코너로 몰면 정말 비극이 생길 가능성도 있다. 그러면 사회는 걷잡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유가족은 '가치에 충실한 원칙주의자'다. 그것이 사회 발전의 귀중한 힘이 될 수 있다. 타협하지 않는다고 비난할 일은 아니다. 오히려 온 몸을 바쳐 해야 할 일과 지혜롭게 피해야 할 일을 구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원칙적으로 유가족들이 직접 정치를 해서는 안 된다. 형사소추권을 행사할 수도 없다. 나라의 발전을 위해 신뢰가 부족하더라도 이 분야 전문가들이 일을 하도록 해야 한다. 대신 유가족과 깨어 있는 시민은 이들의 활동을 감시하고 평가하며 자신의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힐 수 있는 확실한 제도적 기반과 공적 권위를 가져야 한다. 정부는 이런 활동을 지원해야 한다. 이를 통해 여야, 정부, 시민이 서로 다른 역할로 협력하여 공익과 공공선을 추구하는 것이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길이다."



-세월호 참사 당일, '박 대통령의 7시간 행적'이 진상 규명의 핵심이라는 주장에 동의하나.

"그 부분이 진상의 핵심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이것은 피할 수 없을 듯하다. 청와대는 반대할 것이다. 그러나 점점 그 과녁을 향해 나갈 가능성이 크다. 다만 진상 규명의 목표가 정치적 목적에 좌우되는 건 생산적이지 못하다. 밝혀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세월호 비극을 총체적으로 해부할 수 있어야 한다. 더 나아가 진상 규명 차원에서 곳곳에 만연된 조직화된 무책임성의 실체를 투명하게 보여줘야 한다. 이 중대한 책임을 소홀히 한 채 모든 것을 특정인의 책임으로 몰아가면 격돌이 불가피하다. 지혜가 요구된다. 유가족은 이로부터 한 발 떨어져 있는 게 좋을 것 같다. 정치공방에 휩쓸리는 것보다 사회 발전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면 빛이 더 발할 것이다."



-새정치연합 박영선 원내대표를 평가한다면.

"유가족과의 소통 실패로 당을 곤경에 빠트린 책임이 크다. 성취욕구는 매우 강하지만 책임윤리는 빈약하다. 애당초 박 대표가 비대위원장이 되는 것에 나는 공개적으로 의문을 표시했다. 소통실패로 인한 후유증을 대여 강경 투쟁 노선으로 만회 또는 해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국민은 훤히 보고 있다. 현 상황은 너무 위중하고 이런 시도는 부작용이 크다. 차라리 물러나는 것이 당을 위하는 길이 아닌가 한다."



-새정치연합이 환골탈태하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은.

"정면으로 문제를 응시해야 한다. 미봉책으로는 안 된다. '박영선 비대위원장 체제' 역시 미봉책이었다고 생각한다. 당 최대 계파 수장인 문재인 의원은 단식 농성에 합류했다. 당을 추스르기는커녕 혼란에 빠트리고 있다. 문 의원이 잘못된 계산을 했다고 본다. 현 체제로는 전망이 안 보이지만 대안이 없다. 계파 갈등을 우려하는 시각도 많다.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당 사람들도 잘 알고 있다. 7·30재보선을 통해 안철수·손학규·김두관씨가 일선에서 물러났다. 리더십층이 단순 혹은 취약해진 것이다. 국민 신뢰는 더 떨어질 것이다. 존립 자체가 어려울 정도가 될지도 모른다. 세월호 정국 와중에 방탄 국회를 소집해서 더욱 그렇다. 그러나 민주당 의원들 중에는 능력 있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들이 제 능력을 발휘하려면 당 체질이 탈바꿈되어야 한다. 탈바꿈을 이끄는 하나의 동력은 환멸과 실망, 욕구불만이다. 도저히 이대로는 안 된다는 위기감이 사람들을 밀어낸다. 둘째는 사람을 끄는 힘이다. 이는 새로운 미래에 대한 갈망, 청사진, 즉 희망에서 나온다. 현재의 야당 사정을 보면 밀어내는 힘은 매우 강한 반면 끌고 가는 힘이 매우 약하다. 리더십의 빈곤, 신뢰 고갈, 청사진 부재 탓이다. 상당한 고통과 위험을 감수하고, 새 출구를 찾기 위해 파격적 행동을 해야 한다.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야 한다. 혼란을 감수해야 탈바꿈의 미래가 열리지 않겠는가."



-'판도라의 상자를 열자'는 건 구체적으로 뭘 뜻하는지.

"당이 왜 이 모양 이 꼴이냐에 대한 통절한 반성이 출발점이어야 한다. 모범을 보이는 지도자가 없다. 공허한 청사진을 제시하거나 '이렇게 바꾸겠습니다'라는 약속은 씨알도 안 먹힐 거다. 그래도 야당에 기대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변화의 그림이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천정배 전 의원이 언급한 '당권재민(黨權在民)' 주장이 일리가 있다. 새정치연합은 모든 특권을 내려놓고 모든 걸 당원이 결정하는 민주주의 정당으로 나가야 한다. 그러면 점점 지지층도 넓어질 것이다."



-그게 전부인가.

"새정치연합의 뿌리는 민주당이다. 민주당의 대들보는 김대중(DJ) 전 대통령이다. 사상 초유의 여야 정권교체와 대통령 재임 시 많은 업적을 남겼다. DJ라는 거울을 갖고, 야당이 처한 오늘의 상황을 정밀하게 분석해야 한다. 당원이 공유하는 민주당 안의 잣대로 언제, 어떤 실수를 해서 이렇게 쪼그라들었는지 정확하게 봐야 한다. 그러면 정체성 확립도 가능하다. 나아가 DJ를 넘어 새로운 미래로 나아갈 수도 있다. 그러나 야당 내 주류들이 싫어한다. 당이 요동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주류에게 유리한 게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안 하면 당을 살리기 힘들 것이다. 야당이 혁신한다고 하는데 혁신의 핵심은 이념적 구호에 있지 않다. 지리멸렬한 당 체질을 어떻게 바꾸겠다는 큰 그림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 다시 말하건대 DJ는 유연했다. 포용성과 실용성을 갖췄다. 소통과 화해에도 능했다. 하지만 지금의 야당은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실생활에서도 멀어지고 있다."

한상진 교수는

전북 임실 출신으로, 진보성향의 사회학자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인연이 각별해 김대중정부 시절 대통령자문 정책위원장과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을 역임했다. 노무현 정부에서도 정책자문을 했다. 지난 대선이 끝난 뒤에는 민주통합당 대선평가위원회 위원장에 위촉돼 패인 규명작업을 벌였다. 1970년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빌레펠트대 연구교수를 거쳐 81년부터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2010년 정년퇴임했다. 현재는 서울대 명예교수이자, 중민사회이론연구재단 이사장으로 활동 중이다.

김진홍 수석논설위원 j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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