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말걸기-서윤경] T.P.O 패션 공식을 홍보에 입히다 기사의 사진
패션업계에 ‘T. P. O’라는 말이 있다. 시간(Time), 장소(Place), 상황(Occasion)에 맞게 옷을 입으라는 뜻이다. 생뚱맞아 보이지만 T. P. O란 말을 ‘홍보’에 적용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난 14일부터 18일까지 4박5일간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을 취재하는 과정에서였다. 시간과 장소, 상황에 따라야 홍보가 극대화된다는 것을 알려준 건 교황이 아닌 가수 보아와 삼성이었다.

보아는 교황이 방한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긴 행사 중 하나인 아시아청년대회 홍보대사를 맡았다. 15일 교황이 아시아 각국 대표 17명의 청년들과 점심식사를 할 때도 보아는 홍보대사 자격으로 함께했다. 삼성은 멀티비전을 협찬했다. 16일 서울 광화문 시복식 현장에서 카메라에 유독 많이 찍힌 게 있었다. 파란색 천으로 포장된 대형 멀티비전이었는데, 바로 삼성이 협찬한 것이다. 그렇다면 교황 방한 기간 중 T. P. O에 맞는 홍보를 한 것은 보아와 삼성 중 누구였을까. 아쉽게도 둘 다 아니었던 것 같다.

우선 보아는 홍보대사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홍보대사란 말 그대로 행사를 알리는 것인데 보아는 그날 저녁, 오찬에 참석한 청년들이 가진 기자회견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 시간 보아는 서울에서 열리는 SM 콘서트에 참석 중이었다. 물론 가수로서 팬들과 약속을 지키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다만 보아는 교황과의 점심이라는 혜택을 너무 쉽게 생각했다. 보아와 함께 오찬에 참석했던 박찬혜(23·여)씨와는 너무 달랐다. 그녀는 교황과의 만남 전 거식증을 앓으면서 조금씩 말라 죽어갔던 자신의 아픈 이야기를 솔직하게 기자들에게 알렸다. 기자회견에도 참석해 교황과 나눈 이야기를 공유했다. 시민들은 교황을 만난 사람들에게 교황이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궁금해했다.

기획사 측은 “보아의 홍보대사 역할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이 많아 말을 아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보아는 세상의 시선을 신경 쓰는 연예인 특권의식만 가졌을 뿐이었다. 권보아라는 본명으로 참석한 만큼 특권의식은 버리고 홍보대사라는 역할을 충실히 해야 했다. 보아는 교황과 나눈 이야기를 콘서트에서 만난 팬들 앞에서만 했다.

삼성도 마찬가지다. 협찬한 걸 대놓고 드러냈다. 멀티비전을 포장한 파란색 천은 삼성을 상징하는 색이었다. 그 위로 영문 로고도 큼직하게 박았다. 혹여 헬기나 인근 건물 옥상에서 촬영하는 카메라에 잡히지 않을까 멀티비전 상단에도 로고를 새겼다. 시복식에선 더 과감했다. 굳이 멀티비전이 없어도 교황이 잘 보이는 제단 앞쪽 양 옆에 3개씩 10m 간격으로 촘촘히 세웠다. 교황이 보이지 않는 뒤쪽의 멀티비전 설치 간격은 50m였다. 이 멀티비전은 삼성이 만든 디스플레이도 아니었다.

보아와 삼성 모두 T. P. O에 맞지 않는 홍보를 했다. 누구보다 홍보를 잘 아는 둘이었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은 더 컸다. 보아는 사람들의 입과 콘서트라는 핑계를 대기 전에 홍보대사로서 교황의 메시지를 전달할 방법을 고민했어야 했다. 실제 교황방한준비위원회 등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한 사람이 많았다. 삼성도 종교행사였던 만큼 투자한 대로 수익을 내야 한다는 기업적 마인드를 버렸어야 했다.

교황 방한 기간 T. P. O를 잘 지킨 홍보는 누가 했을까. 대한민국 국민이다. 시복식 현장에 모인 80만명의 시민들의 질서정연한 행동은 전 세계에 전파를 탔다. 여러 행사에서 때로는 비를 맞고 때로는 햇빛 아래서 오랜 시간 기다렸지만 행복한 얼굴로 교황을 맞았다.

서윤경 문화부 차장 y27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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