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항 칼럼] 잊혀져 가는 세월호 교훈 기사의 사진
세월호 유가족들이 독립적인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하자고 요구하고 있다. 참사 당시는 물론 이후 수습 과정을 보더라도 정부와 검찰을 도저히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정부·여당은 피해자가 참여하는 위원회가 수사·기소권을 갖는 것은 현 사법체계를 뒤흔드는 것이라는 반론을 편다. 전국의 법학자 230명이 “헌법정신에 배치되지 않는 한 국회가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하는 특별법을 만들 수 있다”면서 이런 반론을 반박하고 나섰다.

어느 편이 더 합당한지에 대한 판단은 잠시 제쳐두기로 하자. 기소권을 누가 갖느냐는 문제의 실익이 그다지 크지 않다는 생각이다. 세월호 참사에서 승객을 버리고 먼저 구조된 선장과 승무원을 제외하고는 미필적 고의로라도 승객을 죽게 만든 관련자는 없다. 현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은 ‘죄’를 입증하는 것도 해경의 몇몇 현장 책임자에 대해서는 가능할지 몰라도 전반적으로 무리다. 더 큰 관심은 세월호 침몰의 근본적 원인을 제공한 규제 당국, 업계와 유착한 관피아를 어떻게 하냐는 것인데 누가 이들을 기소하더라도 법정에서 실형을 받아내기는 극히 어려울 것이다.

문제는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침몰 직후 공언한 철저한 진상조사와 ‘국가 대혁신’ 의지가 정부·여당 전반에 걸쳐 눈에 띄게 약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박 대통령은 최근 경제 살리기 행보를 강화하면서 세월호 후속 대책은 외면하고 있다. 단원고 유가족들이 정부를 불신할 만한 이유가 있다고 보면 대립하는 양측이 청와대를 포함한 성역 없는 진상조사 원칙에 합의하는 대신 기소권을 특검에게 맡기는 여야 합의안을 유가족이 수용토록 하는 방안이 합리적일 것이다.

더 중요한 과제는 진상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관피아 척결을 포함한 정부 개혁의 프로그램을 어떻게, 누가 마련하느냐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진상조사위원회 구성이 중요하다는 박영선 원내대표의 말은 일련의 과제에서 첫 단추의 중요성을 잘 지적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헌법은 국가를 견제·감시하는 기능을 갖는다. 그것은 국가에 시민의 권리를 존중하라는 명령이다. 헌법에는 국민의 행복추구권과 평등권, 신체의 자유, 양심·종교·언론과 출판·집회와 결사의 자유, 환경권, 노동3권, 국회에 청원할 권리 등 의무보다 훨씬 더 많은 권리가 명시돼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현실에서 국가와 개인의 행복 가운데 국가가 늘 먼저였다. 국가안보가 언론·출판의 자유에, 국방의 의무가 개인의 양심의 자유에 우선했고, 또한 대다수 국민들은 이것을 당연시해 왔다. 더 나아가 기업의 이해관계나 이윤이 소비자 권익이나 안전, 노동자의 건강, 환경권, 사생활의 비밀보다 우선하는 것을 숱하게 경험하고 있다. 최근 군부대 내 잇따른 가혹행위와 자살 등에 따른 군 사법체계 개혁과 옴부즈맨 제도 도입 등에 국방부가 저항하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세월호 참사의 교훈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가 성장 물신주의에 빠져 있다는 것, 그리고 우리 국민들이 그런 낡은 이데올로기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한 안전도, 행복도 없다는 준엄한 경고다. 그런 경고로부터 국민들의 귀를 가리려는 기득권층은 늘 경제 성장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기에 바쁘다. 대기업이 수출을 많이 해서 돈을 벌면 대다수 국민들에게도 파이가 돌아오지 않겠느냐는 막연한, 그러나 허망한 기대 말이다.

진정 진보적인 세력이라면 경제 성장만을 우선시하는 논리에 대한 효과적인 반론을 제시하고 민주주의의 가치를 옹호하는 일에 매진해야 한다. 대표적 과제 중 하나는 헌법, 즉 국민의 기본권에 대한 교육일 것이다. 현 시점에서 논란의 소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9시 등교, 학생인권조례의 준수 등은 의미 있는 방향 설정이라고 본다.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국가가 나의 행복추구권을 보장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그는 군대에서 가혹행위를 저지르지도, 용인하지도 않을 것이다.

임항 논설위원 hngl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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