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이장원] 섬김의 리더십과 창조적 노동 기사의 사진
교황이 우리를 떠나 다시 로마로 간 지 열흘이 지났지만 그분의 메시지가 여전히 강한 울림으로 이 땅에 남아 있다. 약간 표현의 차이는 있지만 적어도 군림이 아닌 섬김의 리더십, 특히 약자를 의례가 아닌 사랑으로 섬기는 낮은 리더십에서 우린 신선한 감동을 얻었다.

섬긴다는 것은 영어로는 서비스(service)라고 한다. 기독교에서는 예배 드리는 것도 서비스라 표현하기도 하니 섬기는 것은 사실 매우 종교적인 자세다. 신 앞에 모두 미천한 존재들이고 서로에게는 평등한 존재들인 것이다. 그러니 투쟁이 아닌 용서, 독백이 아닌 대화가 중시된다. 이는 비단 종교인에게만 적용되지는 않는다. 일반 국민 모두가 교황을 보면서 얻은 기쁨이 그것을 웅변해준다.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덕목이다.

상식적으로 섬기는 리더십과 가장 거리가 먼 영역은 시장일 것이다. 비정규직이나 중소기업 근로자가 일하는 외부 노동시장은 차가운 계약정신이 지배하고, 대기업 내부의 노동시장은 권위적인 지시와 통제가 횡행한다. 한창 창조적 인재의 중요성과 헌신적인 근로자상을 강조하고는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이는 우리 시장의 리더들이 아직 섬김의 리더십이 가지는 무한의 가치를 경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때 미국에서 청소·경비 용역을 맡아서 잘나가던 기업으로 서비스마스터(Service Master)란 기업이 있다. 서비스 용역으로 세계적 기업을 이룬 회사로 전문적인 주택 및 건물 관리도 하지만 청소·경비·관리 용역이 중요한 사업 분야이었고, 이 기업을 세계적 기업으로 키우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은 지금은 은퇴했지만 사장이던 빌 폴라드의 직원을 섬기는 리더십이었다. 그는 자칫 하찮은 일을 하는 사람으로 치부될 수 있는 청소와 경비직 직원들을 아꼈다. 회사 입구에 사장이 직원들의 발을 씻겨주는 조형물을 세울 정도였다. 직원이 회사에 감동하면 이들로부터 서비스를 받는 고객이 만족한다는 신념을 실천한 경륜가였다.

우리나라 시장경제의 일부 리더들은 회사의 목표를 이루는 도구로 직원들을 대하거나, 돌발적인 업무 지시로 회사 안에서 야근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만든다. 나아가 도구적 관점에서 종업원을 보니 경영상 비용을 줄이기 위한 목적으로 비정규직이나 용역직원을 선호하게 되고, 권위적이고 즉흥적으로 직원들을 활용하다 보니 하청직원에 대한 원청의 부당한 지휘·감독이 이뤄진다.

권위적이고 도구적인 관점의 반대편에 섬김과 배려의 리더십이 있다. 시장가치는 종교가치와 다른 것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가지고는 교황이 지적했듯 돈이 지배하는 고삐 풀린 시장경제의 폐해를 초래하게 된다. 시장과 종교 그리고 다른 모든 사회 제도들의 근간을 이루는 것은 공통적으로 사람에 대한 존중심이다.

인간에 대한 존중 그리고 종업원을 배려하는 직장의 간부와 경영진이 되는 훈련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직원들의 가정생활을 배려하기 위해서는 업무수행 계획을 한 달 전에 잡고, 유연근무제를 보편적 수준에서 기본적으로 활용토록 해야 한다. 즉 여성에 대한 배려와 보호 차원이 아니라 모든 남성까지도 가정생활의 책임을 공유하기 위해 유연근무제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또 궁극적으로 야근과 특근은 사라져야 한다. 머릿속에 온통 회사일만 들어차서는 뇌가 지쳐서 새로운 업무상 아이디어나 의욕이 솟아나지 않는다.

섬김의 리더십은 또한 사치스러운 미덕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제조업 강국 이후 서비스산업의 부흥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를 설명해주는 핵심 개념이다. 사람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자세를 훈련받지 않는 한 아무리 자본을 투입해도 서비스업의 본질적 가치를 실현할 수 없다. 무형의 가치를 팔아 부를 창출하는 것이 서비스업이라면 무형자산의 꽃인 종업원을 비용이 아닌 중요한 자산으로 존중해야 한다.

이장원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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