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김병삼] 정직할 수 없는가 기사의 사진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라는 우리 속담이 있다. 프랑스에서는 ‘연기 나지 않는 불 없고, 불 없는 연기 없다’는 말이 있다. 흥미로운 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불’과 ‘연기’라는 소재를 사용해 그 인과관계의 위험성을 설명한 점이다. 그동안 우리는 엉뚱하다 못해 황당한 소문을 접할 때면 어디선가 “아닌 땐 굴뚝에 연기가 나겠나”라는 비아냥거리는 소리를 함께 듣곤 한다. 불행하게도 도저히 믿고 싶지 않았던 비아냥거림이 보란 듯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불’ 없이 나는 ‘연기’ 보고싶다

하지만 목회자의 아들로, 또 목회자로 살아가는 필자에게 이 속담은 상처로 남아 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는 일을 너무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누군가 무책임하게 내뱉었던 말 한마디에 속절없이 가슴만 태우고 기도했던 믿음의 선배들을 봐왔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아닌 땐 굴뚝에서도 연기가 나는구나’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누군가에 대한 ‘의혹’이 제기될 때면 그저 흘러가는 ‘연기’였음이 드러나기를 간절히 바랐던 것 같다.

지난 13일 오전 1시쯤 제주시 한 음식점에서 음란행위를 한 혐의로 지검장이 경찰에 붙잡혀 조사받았다는 기사가 났다. 당시 신고한 여고생은 “얼굴은 확실하지 않지만 옷차림이 맞는 것 같다”고 진술했다. 혐의를 받은 검사장은 완강하게 부인했다. 필자에게 강한 믿음을 심어준 것은 자청한 기자회견에서 “수사에 방해가 된다면 검사장직에서 물러나겠다”는 항변이었다. 이 장면에서 ‘불’ 없는 ‘연기’를 보고 싶다는 필자의 열망을 더욱 간절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모든 일이 ‘의혹’이라는 일로 시작됐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별장 성접대 의혹,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자 의혹. 이 의혹의 공통점은 당사자들이 끝까지 부인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 사람은 그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궁금한 것은 진심으로 그렇게 자신들을 믿는 것인지, 아니면 진실을 이야기하면 손해를 본다는 생각에 진실을 외면하는지 하는 점이다.

이제는 정직을 강조하면 더 의심이 간다. ‘참’기름만으로는 신뢰를 받지 못해 언제부터인가 ‘진짜’ 참기름이라고 하기 시작했다. 유명 음식점과 유사한 곳이 생기자 ‘원조’라는 말을 붙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해 ‘진짜’ 원조라는 말로 믿음을 주려 한다. 그런데 진짜라고 주장하면 할수록 ‘뭔가 구린 구석이 있나보다’라고 생각하게 된다. 아무리 정직을 주장해도 그 정직을 믿을 수 없는 세상이 참 불행하다.

결백 주장할수록 더 의심 가

이 사회가 점점 정직해지지 못하는 이유는 이 사회에서 정직한 자가 성공할 수 있다고 믿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언제부터인가 성공을 ‘옳은 길’이 아닌 ‘쉬운 길’로 가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인 듯하다. ‘쉬운 길’을 찾는 이유는 언제부터인가 편안하게 사는 것이 축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편안’을 축복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삶의 고난은 피해야 할 저주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 삶의 고난이 유익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왜냐하면 옳은 길을 가기 위해서는 고난의 길을 가야 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성공은 꿋꿋하게 그 길을 걷는 것이다.

성경은 정직한 자가 성공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단지 정직한 자의 형통함을 말한다. 쉬운 길을 찾아가는 것이 성공인지, 결국의 형통함이 성공인지 묻고 싶다. 성경은 인간을 완전한 존재로 생각하지 않는다. 성경의 위대한 인물들은 실수하지 않은 사람들이 아니다. 단지 ‘실수’가 ‘실패’로 끝나지 않은 사람들이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났다면 그 ‘연기’가 실수였다고 정직하게 말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아니, 아니 땐 굴뚝에도 연기가 날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되는 세상이었으면 더욱 좋겠다!

김병삼 만나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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