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시사 > 전체기사

[삶의 향기-이지현] 숨겨진 사랑의 DNA, 공감

[삶의 향기-이지현] 숨겨진 사랑의 DNA, 공감 기사의 사진
온몸은 마비되지만 지적 기능이나 시각과 청각은 남아 있어 자신의 죽음을 지켜봐야 하는 잔인한 질병이 있다. 엄지손가락부터 마비가 시작돼 나중엔 눈을 깜빡이는 것조차 힘들어진다. 결국 호흡근까지 마비돼 서서히 죽음의 단계로 들어가게 되는 루게릭병. 최근 이 환자들의 고통을 함께하는 캠페인이 지구촌에서 벌어지고 있다. ‘ALS 아이스버킷 챌린지’. 얼음물을 뒤집어쓰거나 기부한 후에 다음 참가자 3명을 지명하는 방식이다. 차가운 얼음물을 갑자기 뒤집어썼을 때 느끼는 고통이 루게릭 환자들이 평소에 느끼는 고통과 비슷하다고 한다. ‘당신의 고통을 함께한다’는 공감의 의미다.

공감은 충분히 머물러 있는 것

우린 간혹 일상에서 어려움을 당할 때 ‘내가 고통의 시간을 보낼 때 주님은 어디에 계셨나요?’ ‘그 시간 교회는 무엇을 했나요?’ ‘그리스도인 당신은 어디에 있었나요?’라고 묻곤 한다. 공감이란 아파하는 사람들과 함께 머물러 있는 마음이다. 연민이나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존재를 바라보는 것’이다. 자신의 경험으로 해법을 설명하거나 논리적으로 판단하지 말고 상대의 아픈 감정에 머물러 있는 것이 공감이다. “감정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함께 내담자의 마음 밑바닥으로 내려가세요. 그리고 그 순간에 함께 머무세요.” 상담학 교수들이 강조하는 말이다. 상대의 감정을 함께 느끼는 공감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더욱 가깝게 만들어준다. 공감능력이 부족할 때 우리의 인간다움도 약화된다. 그래서 공감능력이 부재한 사람들이 장악한 사회는 삭막하고 비정할 수밖에 없다.

현대인들은 주어진 책임을 다하기 위해 딱딱한 갑옷으로 자기감정을 포장한다.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알 수 없다. 더욱이 우리는 누군가의 말과 행동 이면에 숨은 심리를 알아내고자 할 때를 제외하고는 다른 누군가를 주의 깊게 관찰하지 않는다. 타인의 아픔을 헤아릴 줄 모르는 공동체에 속해 있다면 심리적 외딴섬에 사는 것 같다. 주변을 한번 돌아보자. 학업 스트레스로 힘겨워하는 자녀에게 “너 힘들구나. 이만큼 하는 것도 대견하게 생각해”라고 말해주자. 승진에서 누락돼 가슴앓이를 하는 동료에게 비타민음료와 함께 응원의 메시지가 적힌 메모라도 전해주자.

그런 의미에서 이런 기부는 어떨까. 지금 3명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다. 위로의 메시지를 받은 3명이 각기 3인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다시 전한다면 어느새 세상은 좀 따뜻해지지 않을까. 고 장영희 교수는 저서 ‘문학의 숲을 거닐다’에서 “인간이 아름다운 이유는 슬퍼도 상처받아도 서로를 위로하며 어떻게 사랑하며 살아가는가를 추구할 줄 알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다른 이의 입장에서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은 리더가 되고, 자기 분야에서 성공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라고 말했다.

공감능력의 뿌리는 가정

사랑하는 부모로부터 억울했던 감정을 위로받았던 일, 자기 말에 고개를 끄덕여주던 부모의 얼굴, 따뜻하게 안아준 부모의 품을 기억하는 사람은 분명 공감능력이 높을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공감능력이 높은 아이는 스스로 자신의 감정을 조절할 수 있게 되면서 학습에 집중할 수 있는 침착한 심리상태가 된다고 말한다. 근래 학생들의 공감지수가 낮아진 이유는 가족 간에 정서적 교류가 줄었기 때문이란 것이다. 리더의 덕목인 공감능력의 뿌리는 가정에서 비롯된다.

이지현 종교기획부장 jeehl@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