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이명희] 老慾을 넘어 老醜다 기사의 사진
공자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군자가 경계해야 할 세 가지로 청년 시절의 여색, 장년기의 다툼과 함께 노년기의 탐욕을 들었다. 노년기엔 몸은 예전 같지 않고 회한만 남다 보니 명예와 의리는 사라지고 눈앞의 이익에 연연하게 된다는 것이다. 노욕(老慾)이 때로 지나치면 노추(老醜·노년의 추함)가 된다.

요즘 각계에서 ‘신386’(1930년대에 태어나 60년대에 사회활동을 시작하고 나이 80을 바라보는 사람들)이나 ‘올드보이들’의 등장이 잦다 보니 시간이 거꾸로 흘러가는 느낌이다. 연륜 있고 사회 경험이 풍부한 이들을 국정에 합류시킴으로써 장점이 없진 않을 터다. 산전수전 겪으면서 혈기는 시들해졌고 조직에 순응하는 법을 터득했으니 조직 내 갈등이나 잡음이 나올 리 없다. ‘한물 간 노인네’를 잊지 않고 찾아준 리더의 성은에 감복해 충성심은 하늘을 찌른다. 경험도 많으니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는 이점도 있다. 당사자들은 대통령의 구애를 끝내 뿌리치지 못하고 여생을 국가를 위해, 박근혜정부의 성공을 위해 바치겠노라 장엄한 결심을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범인들의 눈에는 구국의 충정보다 노욕으로 비치는 것을 어쩌랴.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나이 80이면 천하를 품을 듯한 젊을 때의 기상과 포부는 사라지고 다양성을 인정하기보다 자신이 갖고 있는 생각을 바꾸기 쉽지 않은 나이다. 여기에 80세 가까운 고령에 중책을 맡겠다고 나선 인사들의 면면이 전문성과 거리가 멀다 보니 과욕으로 여겨지는 측면이 더 큰 것이리라.

KBS 이사장을 맡게 될 사학계 원로학자 이인호(78) 서울대 명예교수와 유흥수(77) 신임 주일 대사, 자니 윤(78) 한국관광공사 상임감사를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오랫동안 서울대 교수를 했고, 김영삼정부에서 최초 여성 대사로 주핀란드 대사를, 김대중정부에서 주러시아 대사까지 지낸 사람이 뭐가 아쉬워 진흙탕 싸움에 발을 디디는가. 가뜩이나 전임 이사장이 갑작스럽게 사의를 밝히면서 청와대의 공영방송 길들이기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조직원들이 결사반대하는데 말이다. 보수에 편향된 역사관을 갖고 있어 공영방송 이사장에 적합하지 않다는 논란은 제쳐두고라도 방송 전문가인지 자문해 보면 알 일이다.

코미디언 출신인 자니 윤씨가 1000억원대 적자를 내고 있는 관광공사 경영을 감시하는 자리를 맡은 것도 난센스다. 2012년 대선 때 재외선거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으로 박근혜 대통령 선거 캠프에 몸담았다는 것을 빼면 상임감사 자리를 맡을 이유를 찾을 수 없으니 민망한 일이다.

대통령이야 인연을 모른 척할 수 없어 손을 내밀었다고 치자. 그렇다고 50, 60대 팔팔하고 능력 있는 후배들과 취업 경쟁을 하면서 대통령에게 누가 되리란 걸 알고도 손을 잡아야 했을까. 따지고 보면 대통령이 반쪽 여론에 귀 막고 있는 것은 그를 보필하는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을 비롯해 ‘신386군단’이 로열티만 높고 쓴소리를 못하는 탓도 있을 것이다.

나이 들면서 근사하고 의미 있게 사는 방법은 다른 곳에 있지 않을까 싶다. 30여년의 공직생활을 뒤로하고 한 달여 전 홀연히 떠난 한 공직자는 “오래전부터 감사할 줄 알고 물러날 때를 아는 공직자가 되고 싶다는 소망을 간직해 왔다”며 “이제 그 소망을 이뤘다는 기쁜 마음으로 제 나름대로의 ‘귀거래사’를 읊으며 떠난다”는 편지를 보내왔다.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공직을 떠나면 어려운 학생들을 돕고 봉사하면서 살고 싶다는 평소의 바람을 실천에 옮길지 또 다른 제2의 길을 걸을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세상의 탐욕을 좇아가지는 않을 것 같다.

당나라 시인 백거이는 풍유시 ‘불치사(不致仕)’에서 눈이 어두워져 공문서를 읽지 못하고 허리가 굽어도 명예와 이익을 탐하며 관직에서 물러나지 않는 것을 꾸짖었다. 인생 2막은 끝없이 움켜쥐기보다 경험이든 지식이든 살면서 얻은 은총을 조금이나마 세상에 베푸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이명희 논설위원 mhe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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