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속의 샘] 명절증후군 없는 명절을 위하여 기사의 사진
9월에 접어들면서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밤이면 벌써 이불이 그립고, 하늘은 눈이 시리도록 푸르고 높다. 날짜로는 늦더위가 두어 번 더 기승을 부릴 법한데, 유난히 이른 추석 탓인지 여름은 맥없이 꺾여 떠났다. 하늘의 운행도 잠시 양보하나보다.

추석은 ‘삼국사기’ 신라 유리왕 때에 이미 관련 기록이 보이니 짧게 잡아도 이천 년이 훌쩍 넘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이 오랜 명절은 한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속담이 생길 정도로 가장 손꼽아 기다리던 축제요 잔치였다. 더구나 올해는 첫 대체휴일까지 시행되니 속담에 담긴 의미가 한층 잘 느껴진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고, 변하는 시대를 따라 사람 사는 풍경도 변하였다. 고대하던 추석이 이제는 바뀌어 어떤 이들에게는 가장 무서운 이름이 되었다. 근년 들어 거론되는 명절증후군이란 말이 그러한 현실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벌써부터 인터넷과 신문지상에는 명절 증후군 예방법이니 극복법이니 하는 말들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이러한 추세라면 명절증후군이란 단어가 국어사전에 등재될 날도 머지않아 보인다.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로 찬사 받던 날이 어쩌다가 이러한 신세가 되었을까?

추석이 즐거운 명절이 아니라 스트레스 가득한 날로 변한 데에는 몇 가지 근본 원인이 있다. 우선 가정 내에 비상식적으로 고착화된 서열의식을 먼저 꼽을 수 있다. 아울러 그로 인해 파생된 심각한 노동 불균형 때문이라고 짐작된다. 뿐만이 아니라 공들여 만든 음식 역시 변해버린 입맛 때문에 사람들에게 외면 받고 있다. 차례상의 음식은 그저 번듯한 치레로서 역할을 할 뿐, 그것이 잔치 음식이 되지 못하고 있다. 삶에서 유리된 축제는 더 이상 축제가 아니다. 명절이 더 이상 명절이 되지 못하고 천덕꾸러기가 된 것은 이 때문이다.

가정은 일차집단이요 비이익집단으로, 국가와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가장 기본 단위이다. 이 때문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족공동체와 가정을 중시하지 않은 예는 없다. 특히 동양에서는 일찍부터 가정의 중요성에 주목하여 ‘대학’의 첫머리에 ‘수신제가(修身齊家)’를 내세웠다. 오랜 세월 많은 사람들은 ‘제가(齊家)’를 ‘가정을 가지런히 한다’고 해석해왔다. 그러한 해석의 맨 밑바닥에는 ‘한 가정의 가장 어른이 그 집안 구성원의 인격적 사회적 모델이 되는 한편, 반듯한 질서를 세워 분란 없는 가정을 이룬다’는 인식이 깔려있다. 이른바 가부장적 인식이다.

‘가지런히 한다’는 말 속에 전제된 가부장적 권위의식은 가정 내 권력의 서열화를 당연시 여기고 있다. 여기에 남녀 성불평등까지 개입되면 작은 일차집단 안에 불합리한 불평등구조가 다층적으로 중첩된다. 이 불합리한 모순이 불거져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많은 사람들은 ‘예(禮)’라는 밧줄로 묶어 억압해왔다. 명절증후군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고 본다.

한 가정의 화목이 특정한 누군가의 고단한 희생과 극심한 스트레스를 밑거름으로 삼아야 한다면, 그것이 예라는 이름으로 강요된다면, 그것은 애초에 ‘제가’가 지향하는 화목 정신과 거리가 멀 뿐만 아니라 예의 본질과도 어긋난다. 동양 문화권에서 자랑처럼 내세워 왔던 화(和)와 예(禮)가 겨우 그런 것이라면 고쳐지거나 버려져야 마땅하다.

이미 조선시대에 이와 관련한 인식의 전환을 시도한 인물이 있다. 주인공은 강력한 개혁을 외치던 방외의 비판적 지식인이 아니라 보수적이기 짝이 없는 안동 김씨 집안의 정통 유학자 김매순이다. 그는 잘못된 ‘제가’의 해석으로 인한 권력 서열화의 불합리성을 간파하고, 가족 구성원 모두가 가정의 주체가 되어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역할을 해 주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그리고 종전까지 ‘가지런히 한다’로 해석하던 ‘제’ 자의 의미를 ‘고르게 분배한다’는 의미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 구체적인 방법을 위해 그는 ‘대학’이 주장해온 혈구지도(?矩之道)의 정신을 새삼 부각시켰다. 혈구지도란 직역을 하자면 내 마음으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준다는 정도로 풀 수 있는데, 역지사지(易之思之)와 비슷한 개념이다. 요컨대 가정 내에서 상대의 고충을 헤아리고 역할을 잘 분담하여, 스트레스를 줄이고 진정한 화목을 찾자는 뜻이다. 완고한 시대의 한복판에서 이미 김매순은 ‘참된 제가’의 구현을 위해 권력의 균등 분배와 역할의 고른 분담을 외쳤던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많은 경우 자신을 보수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진정으로 보수적인 사람은 성가신 예법이나 낡은 관습을 미련스레 고집하는 사람이 아니다. 시대에 맞추어 재해석하면서도 본래의 의미가 훼손되지 않고 잘 계승되도록 하는 사람이다. 보수적인 선비 김매순의 말처럼 나의 마음으로 상대의 마음을 헤아려 역할을 고루 분담해보자. 추석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꼭 이만큼이라고 할 행복을 다시 우리에게 선사할 것이다.

이규필 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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