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김기석] 길들여진다는 것 기사의 사진
“어쩌면 그는 이제는 죄의식에 호소하길 그만두고 매력을 행사해야 함을 이해한 최초의 흑인이 아닐까? 아메리카에 대한 비난 대신 아메리카에 대한 희망이고자 한 최초의 흑인이 아닐까? 투쟁하는 흑인에서 안심시키고 결집시키는 흑인으로의 변화를 구현하고 있는 인물? 미래의 혼혈 대통령? 언젠가 힐러리와 함께 티켓을 거머쥐지는 않을까?”

프랑스 신철학파의 기수로 각광받았던 베르나르 앙리 레비가 2006년에 발간한 ‘아메리칸 버티고’의 한 대목이다. 그는 버락 오바마라는 이름이 대중들에게 아직 낯설었던 시기에 그의 연설을 한 번 듣고는 이런 과감한 예측을 내놓았던 것이다. 그의 예언은 적중했다. 오바마의 연설은 그만큼 흡인력이 강하다. 애리조나 총기 난사 사건으로 희생된 이들을 추모하는 자리에서 그가 한 연설은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진심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의 연설 속에서 죽어간 이들은 추상적인 숫자로 환원되지 않았다. 그들은 살과 피를 가진 이들로 소환되고 있었다. 그의 언어는 슬픔을 당한 가족들뿐만 아니라 평화 없는 세상에 살면서 지친 모든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비루한 현실에 무뎌지는 이상

그러나 앙리 레비의 기대 섞인 예측은 실현되기 어려워 보인다. 모든 사람이 존중받는 세상에 대한 그의 꿈은 기득권을 지키려는 이들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 조금씩 조금씩 무뎌지기 시작했다. 요즘 화면에 비친 그의 모습은 승산 없는 긴 싸움에 지친 사람의 모습이다. 난감한 상황 속에서도 그가 보여주곤 했던 낙관적 표정과 생기는 어느 결에 사라지고 권태로움만 남은 듯하다.

지난 10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슬람국가(IS)’라는 단체에 대한 공습 확대를 선언했다. 시리아도 예외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수니파의 지원을 받아 세력을 키워 왔고,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을 포괄하는 레반트 지역에 이슬람국가를 세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 그 단체는 미국인 기자 두 명을 참수함으로써 자기들의 존재를 세계인들의 가슴에 각인시키려 했다. 그들을 응징함으로 미국의 위엄을 보여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고 오바마는 그 여론에 편승하여 공습 확대를 선언한 것이다.

사실 그들이 지키려는 것은 미국의 이익이다. 오바마의 인문학적 상상력, 인간에 대한 연민은 자국의 이익이라는 대의 앞에서 작동되지 않는다. 전쟁이 유일한 해결책인가. 사실 이 전쟁은 수니파와 시아파가 대립하고 있는 중동의 상황을 더 큰 혼란 속으로 몰아갈 가능성이 크다. 오바마는 왜 광기와 메마름과 폐허로 귀착될 수밖에 없는 응징의 길을 선택한 것일까.

이상은 장엄하지만 그 이상이 실현되어야 할 장으로서의 현실은 비루하기 이를 데 없기 때문이다. 실패의 경험이 거듭될 때 그 장하던 이상은 현실 논리에 자리를 내주고 만다. 길들여지는 것이다. 세상에서 자기가 누릴 수 있는 것을 다 누리며 사는 이들은 이상주의자들을 길들여 현실에 순응하도록 만드는 데 능숙하다. 길들여지는 것이 비단 오바마뿐이겠는가.

정의로운 세상 점점 멀어져

예언자적 음성을 거세당한 채 무기력하게 현실을 묵종하는 종교, 힘 있는 이들로부터 등 돌림을 당하지 않으려고 메시지를 왜곡하거나 자체 검열하는 종교인들,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적법하게 그리고 엄정하게 집행하기보다는 인사권자의 눈치만 보는 관료들, 정의의 수호자가 되기보다는 힘 있는 이들의 수호자가 됨으로써 자기 이익을 도모하려는 법관들, 특권 의식에 젖어 국민의 충고를 ‘나한테 감히’ 하는 태도로 퉁겨내는 부라퀴 정치인들. 이들로 인해 평화 세상, 정의로운 세상은 자꾸만 멀어지고 있다. “무릎 꿇고 사느니 서서 죽겠다”고 말했던 멕시코 혁명가 에밀리아노 사파타의 결기가 필요한 시대이다.

김기석 청파감리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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