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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커스-오승은] 동유럽의 ‘긴 2차대전’ 기념일

[글로벌 포커스-오승은] 동유럽의 ‘긴 2차대전’ 기념일 기사의 사진
올해는 2차 대전 발발 75주년이 되는 해이다. 동유럽 사람들은 그 2차 대전을 ‘긴 2차 대전’이라고 부른다. 서유럽의 2차 대전은 1945년 나치 독일의 패망과 함께 6년 만에 종식되었지만 독일뿐만 아니라 소련의 침략까지 받은 동유럽의 2차 대전은 1945년으로 끝나지 않았다. 2차 대전의 종식과 함께 ‘나치 침공의 공포’는 끝났지만 ‘소련 통치’라는 새로운 고통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우방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던 서유럽의 적극적인 동조 하에 소련 진영으로 편성되었다. 소위 ‘얄타 유럽’이 형성된 것이다.

이런 아픔은 1939년 9월 나치와 소련의 동시 침공을 받은 폴란드의 역사에 잘 드러난다. 폴란드 영화 ‘카틴’에서 보면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1940년 소련에 의한 폴란드 장교와 지식인 학살을 자세하게 묘사한 후반부보다 1939년 2차 대전 발발과 함께 시작되는 도입부이다.

영화는 폴란드 서쪽 지역에 살던 사람들이 독일 나치의 침공을 피해 동쪽으로 피난 가는 장면을 클로즈업하며 시작한다. 그러던 중 다리 중간에서, 역으로 동쪽에서 살다 소련의 침공을 피해 서쪽으로 피난을 오는 피난민과 맞닥뜨린다. 서로 상대 지역이 안전하다고 생각하며 피난을 떠나 왔지만 양쪽 모두 침공을 당했음을 알게 된 피난민들은 망연자실, 우왕좌왕할 뿐이다. 독일이나 소련, 두 강대국 중 하나의 침공만 받아도 끔찍한 것이 전쟁인 터인데, 두 강대국의 동시 침공을 받은 폴란드인들의 곤경이 실제 어떠했을지 쉽게 상상하게 해주는 인상 깊은 장면이었다.

1989년 동유럽 소비에트 체제가 무너지며 ‘긴 2차 대전’이 비로소 끝나고 나자 동유럽 사람들은 그동안 침묵 당했던 자신들의 아픈 기억을 유럽 주류 역사로 다시 인정받고자 나섰다. 통합 유럽의 일원으로 복귀함에 따라 서유럽 중심의 유럽사가 아니라 동유럽의 역사적 경험도 포함되는 통합 유럽사를 정초하자고 나선 것이다. 그러나 서유럽의 자기중심적인 역사 서술을 바꾸며, 동유럽의 역사 경험, 역사인식, 역사 문화를 유럽 주류 역사의 일부로 인정받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통합 유럽 기념일(Europe Day) 제정을 놓고 동유럽이 서유럽과 벌인 논쟁만 봐도 유럽 주류 역사로 자신들의 경험을 인정받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작업인지 쉽게 가늠해볼 수 있다. 서유럽 국가들은 자신들의 경험에 근거해 1945년 연합국이 나치 독일에 승리를 거둔 5월 8일을 유럽통합 기념일로 제정하자고 했다. 그러나 동유럽 사람들은 소련의 점령이 시작된 치욕의 날을 기념할 수는 없다며 반대했다.

그러자 대안으로 1939년 독·소 불가침조약을 체결한 8월 23일이 중재안으로 제시됐다. 이번에는 러시아가 반대하고 나섰다. 2차 대전은 2000만명이라는 인명피해를 감수하며 유럽 대륙을 나치 침공으로부터 지켜낸 ‘위대한 애국 전쟁’이라고 믿는 러시아인들의 자부심에 상처를 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동유럽 사람들의 관점에서 보면 독·소 불가침조약을 체결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동유럽을 공격한 소련과 얽힌 2차 대전과 그 이후의 역사는 엄연한 침략과 점령의 역사이다. 강대국 러시아의 민족적 자존심을 위해 동유럽이 경험한 실제의 역사가 침묵당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2008년 유럽 의회는 동유럽의 주장을 받아들여 8월 23일을 ‘스탈린 나치 희생자를 위한 유럽 영령 기념일’이라는 긴 이름의 유럽 공식 기념일로 제정하기에 이르렀다. 50년간 배제당하고 소외당했던 동유럽의 ‘긴 2차 대전’이 비로소 유럽사의 일부분으로 인정받는 순간이었다. 한편으로는 유럽연합에, 다른 한편으로는 러시아에 대항해 자신들의 ‘소수자 기억’을 되찾아야 하는 동유럽 사람들의 긴 여정의 첫 단추를 끼운 셈이다.

오승은 호모미그란스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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