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김용희] “아이고, 의미 없다∼” 기사의 사진
TV 코미디 프로 ‘개그콘서트’에 나오는 말이다. ‘개콘’에서 수지가 아무리 애교를 떨어도 앙탈을 부려도 선배는 기타나 튕긴다. “아이고 의미 없다∼”를 중얼거리면서. 선배의 말은 혼자서 중얼거리는 독백 같다.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 달라는 수지에게 “좀 꺼져줄래?”라고 눈치를 주는 말 같기도 하다.

며칠 전 시댁에 명절을 쇠러 내려갔다. 시어머님이 뭔가 작심한 얼굴 표정을 짓고 계셨다. 며느리 셋은 무슨 일인가, 어머님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어머님은 뜻밖의 말씀을 하셨다. 어머님은 며느리와 그 손자 손녀들까지 다 있는 자리에서 맏며느리인 내가 신혼 초에 한 실수로 인해 얼마나 민망스러웠는지, 내가 당신에게 한 말로 인해 어떻게 상처받았는지 등을 늘어놓으셨다. 어머님의 얼굴에는 분기가 가득했고 나는 당황했다.

내가 했다는 실수는 내가 들어도 민망스러운 일이라 그 자리에 함께 있는 다른 식구들에게까지 내가 민망스러워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우선 어머님의 마음을 달래드려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내가 했다는 말도 기억나지 않는 말이었지만 어쩌면 내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진 그 말을 어머님은 수십 년을 가슴에 묻고 계셨단 생각이 들었다. 나도 어머님의 전근대적 사고방식을 견딜 수 없었지만 어머님 또한 근대를 넘어 ‘탈근대’를 사는 나를 도저히 견딜 수 없었을 것이리라.

어쩌면 모든 관계란 서로를 ‘견디는 관계’인지 모른다. 문제는 그 견딤을 견디지 못할 때 서로와의 대화를 포기하게 된다는 것이다. 명절 때 무슨, 무슨 증후군 운운하는 것도 결국 전근대, 근대, 탈근대가 함께 한 자리에서 만나기 때문에 일어나는 증상이다. 한국은 압축적 성장을 거듭해 왔고 이는 세 종류의 세계관이 동시대에 놓이게 만들어 버렸다.

명절이란 탈근대를 구가하며 극개인주의의 삶을 사는 일인(一人)이 타임머신을 타고 전근대에 당도한 느낌을 준다. 그것은 소통부재가 아닌 소통불능이다. 원룸에서 살고 게임을 즐기며 전화보다는 페이스북과 카카오톡이 편한 20, 30대에게 집단적 공동체 윤리 속에서 가족 사이의 서열과 남존여비, 체면과 도리를 목숨처럼 중시하는 70, 80대는 소통불능 그 자체다.

한국에서의 갈등 중에 첫 번째로 뽑히는 것은 지역갈등이다. 하지만 노무현정부 이후 갈등의 성격이 달라진 듯하다. 지역갈등보다 더 심각하게 대두된 것이 세대갈등이다. 특히 저번 대선 때 세대갈등이 첨예화되었다. 베이비부머와 그 위의 산업화 1세대들의 인구는 지금 20, 30대의 인구보다 훨씬 더 많다. 그 많은 인구들이 그들에게 필요한 연금과 일자리를 20, 30대에게서 빼앗아가고 있다는 생각, 20, 30대의 값싼 노동력을 통해 젊은 세대를 그들 자신의 경제적 발판으로 삼으려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젊은이들 사이에 요즘 유행하는 취중진담 하나. “왜 늙은이들이 싸놓은 똥을 우리가 치워야 하느냐.” 그런 적대감 속에서 지난 대선이 끝났을 때 20, 30대들은 인터넷상에서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지하철에서 노인들이 타도 절대로 자리 양보하지 않기, 노인들의 대중교통 무료이용 특권 없애기운동 등이다.

문제는 이 같은 세대갈등이 대화단절, 소통불능으로 나아가면서 사회를 분열과 균열로 몰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아이고 의미 없다∼”는 이와 같은 소통불능, 젊은 세대의 허무주의적 세계관을 반영하고 있다. 허무주의가 냉소주의보다 무서운 것은 현실에 대한 개입 여부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소통’이 문제다. 소통을 내세우고 있지만 막말이 먼저 나오고 막말마저 되지 않으니 폭력이 난무한다.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 역지사지의 마음, 지금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김용희(소설가·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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