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한상진] 문희상 위원장에게 드리는 고언 기사의 사진
백척간두의 위급한 상황에서 문희상 비대위원장은 새정치연합이 겪는 위기의 심연을 응시하기 바란다. 박영선 원내대표는 흔히 말하는 강경파와 온건파의 대립보다 훨씬 더 깊은 수준의 충격과 혼란을 지지자들에게 주었다. 계파의 경계를 넘어, 집권을 지향하는 정당이라면, 누구나 의문의 여지 없이 불문율로 공유하고 있던 기본 가치, 상식, 뿌리가 완전히 뽑힌 셈이다. 그리고도 아무런 사과가 없다. 책임윤리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다. 이것이 제1야당의 체질이자 현주소다.

때문에 지금은 정당의 윤리적 토대를 깊게 생각할 때다. 모든 패권주의 유산을 결연히 물리쳐야 한다. 기회의 평등 원칙에 부합하는 혁신을 해야 한다. 말썽 많은 공직선거 후보 공천제를 개방형 국민경선제로 바꾸는 것은 쌍수로 환영할 일이다. 정당의 지방 조직을 강화하고 국민봉사 활동을 위해 온·오프라인 결합체를 도모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이것을 과거처럼 당권 장악의 수단으로 전락시켜서는 안 된다. 정당의 의사결정은 누구나 자유롭게 지위를 획득할 수 있는 당원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아울러 공정한 여론조사로 유권자의 선호를 반영하는 것은 시대 흐름에 맞고 불공정 시비로부터 자유롭다.

그러나 오늘날 제1야당의 순항을 위협하는 것은 이 배를 띄우는 바다의 풍랑과 파도, 즉 민심이 사납다는 데 있다. 특단의 지혜와 용기가 필요하다. 민주당의 만성질환은 바로 책임윤리 실종에 있다. 이 점을 나는 민주당의 18대 대선평가위원장 일을 하면서 뼈저리게 느꼈다. 그래서 작년 3월 20일 당시 박기춘 원내대표에게 의원총회가 열리면 대선평가의 주요 관점과 결과를 브리핑하고 토론의 기회를 갖고 싶다고 했다. 뜻밖에 좋다는 연락이 왔다. 그러나 최종 결정권을 가진 문희상 비대위원장은 이를 거부했다. 또한 대선평가 결과를 담은 백서가 인쇄소 윤전기에 걸려 있을 때 그는 합의된 백서 출간을 갑자기 중지시켰다. 계파 갈등의 관리가 최우선 과제였다. 만약 그때 논쟁을 했더라면 최근 드러난 당 지도부의 극단적인 무책임, 신뢰 상실, 파국적인 윤리 파탄은 막을 수 있지 않았겠느냐는 자괴의 심정이 든다. 그러나 이제 상황이 몹시도 악화되어 판도라의 상자를 열 수밖에 없는 상황이 아닌가 한다.

세 가지 과제를 제시하고 싶다. 첫째, 박영선 원내대표 파동으로 인한 당의 위기를 정밀하게 조사하는 특위를 만들어야 한다. 이 점에서 당이 냉정하고 결연해야 한다.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당의 존립에 관한 문제다. 당의 잘못된 체질을 적당히 눈감고 넘어간다면 더 큰 파국이 닥칠 것이다.

둘째, 전남 순천·곡성의 투표 결과를 정밀하게 조사하고 이에 담긴 민심의 뜻을 겸허히 수용하는 특위를 만들어야 한다. 당이 무엇을 잘못했는가만이 아니라 민심이 당을 버리는 이유를 적극 평가하는 열린 눈이 있어야 한다.

셋째, ‘기울어진 운동장’의 구조를 변화시키는 획기적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노인층의 구성도 변화하고 있다. 두뇌가 있고 예산이 있으면 노령화사회에 맞는 당의 정책을 얼마든지 마련할 수 있다. 대북 정책도, 정당의 지역 기반도 탈바꿈의 길은 열려 있다. 이런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이 잘못이지 선거 패배를 환경 탓으로 돌리는 것은 비겁한 일이다.

결론적으로, 갈등을 봉합하려는 관리형 비대위로는 당의 전망이 없다. 조선시대 비유로 말하면 수성(守成)보다는 창업(創業)이 요구되는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이다.

‘파국은 변화를 요구하고 변화는 소통을 열며 소통이 되면 체제가 유지된다(窮則變 變則通 通則久).’ 주역 계사편 2장의 진단이다. 이제 덮었던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야 한다. 그래야만 새로운 질서가 창출된다. 문희상 비대위원장은 자신의 선택에 따른 결과에 책임질 준비를 해야 한다.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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