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철 칼럼] 손학규를 총리로 지명했으면… 기사의 사진
손학규는 참 많은 것을 갖췄다. 신언서판(身言書判)이 나무랄 데 없이 좋다고들 하지만 그 정도로는 제대로 설명이 안 된다. 서울대 재학 시절 조영래 김근태 등과 함께 한일협정 반대투쟁을 했고, 졸업 후 노동운동과 빈민운동을 한 데 이어 1970년대 중후반에는 유신반대 투쟁의 선봉에 섰다. 일흔을 바라보는 고령임에도 참신한 이미지를 유지하는 것은 이런 다양한 사회참여 이력 때문일 것이다.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해 인하대와 서강대에서 정치학을 가르치며 진보 지식인의 명성을 쌓은 것도 큰 자산이다.

1993년 정치개혁을 밀어붙이던 김영삼 대통령의 권유로 정계에 입문해 4선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보건복지부 장관과 경기지사를 맡아 탄탄한 행정경험을 쌓았다. 경기지사 시절에는 해외기업 투자유치에 상당한 성과를 거둬 ‘글로벌 경제 리더’란 평을 들었다. 거대 정당의 대표를 두 번이나 대과 없이 수행해 정치 리더십도 검증받았다.

거기까지였다. 대통령선거에 두 번 연속 도전했으나 당내 경선의 벽을 넘지 못했다. 8개월간의 독일 연수를 거쳐 정치적 재기를 위해 지난 7·30재보선에서 여당 텃밭인 경기도 수원병(팔달)에 몸을 던졌으나 쓴잔을 마셨다. 곧바로 정계은퇴를 선언한 그는 부인과 함께 전남 강진으로 내려가 다산초당 인근 백련사 뒷산 토굴에 둥지를 틀었다. 21년 정치인생을 정리하는 저술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은둔거사의 이력과 근황을 길게 늘어놓는 것은 그의 빈자리가 너무 크게 느껴져서다. 파산 직전의 새정치민주연합이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 혁신을 부르짖고 있지만 앞날이 밝아 보이지 않는다. 대선이 3년 앞으로 다가왔음에도 ‘바로 그 사람’이라고 꼽을 만한 이가 퍼뜩 떠오르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손학규는 한때 정치부 기자를 포함한 언론인들로부터 ‘대통령감 0순위’에 랭크됐다. 그러나 경기도 시흥 출신인 그가 영호남 지역주의의 견고한 벽을 넘기에는 힘이 달렸다.

지금 그에게 대선을 거론하는 것은 무례다. 유권자의 선택을 받지 못한 것을 겸허하게 받아들인다며 활짝 웃는 얼굴로 여의도를 떠난 사람에게 두 달도 안돼 정치와 선거를 얘기하는 것 자체가 짜증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산골 칩거에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걸 어쩌랴. 제대로 공부한 합리적 민주주의자로서 정치력과 행정능력을 갖춘 그가 국민을 위해 좀 더 일할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자신 이제 대통령의 꿈은 완전히 접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떠올린 것이 국무총리다. 헌법 규정에 따라 내각 통할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하는 ‘힘 있는 총리’의 출현을 염두에 두고서다.

‘손학규 총리’가 탄생하려면 당연히 박근혜 대통령의 결단과 삼고초려가 전제돼야 한다. 어쩌면 두 사람 모두 이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전혀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괜찮은 카드라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든다면 박 대통령이 적극 검토해 보면 좋겠다. 정치적으로 반대편에 섰던 거물 정객을 과감하게 포용하는 큰 정치는 우리 국민 모두의 바람이다. 책임총리를 맡아 권력을 일정부분 분점이라도 할 경우 고질적인 여야 갈등이 어느 정도 해소될 수도 있을 것이다. 박근혜정부의 성공 지름길이기도 하다.

두 말할 것 없이 손학규에게도 일생일대의 결단이 필요한 문제다. 한나라당에서 대통합민주신당으로 당적을 옮길 때 못지않을 만큼 중요한 선택이 될 것이다. 하지만 오로지 국가와 국민에게 마지막으로 봉사한다는 맘을 먹는다면 전혀 결심 못할 일도 아니다. 대통령이 되어 만들고자 했던 ‘떳떳하게 일하고 당당하게 누리는 세상, 저녁이 있는 삶’을 총리 주도로 이뤄내면 된다. 대통령이 토굴을 직접 찾아가고, 그곳에서 두 사람이 환하게 웃으며 “부강하고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함께 일하기로 했다”고 발표하는 모습,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뛰지 않는가.

성기철 논설위원 kcs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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