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자원 빈국이다. 국내 에너지 소비의 96%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이 때문에 자원 부국들이 에너지 자원을 무기화해 값을 무작정 올리거나 제공하지 않으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최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가스 공급을 전면 중단했다. 에너지가 안보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한국의 원자력 사용은 에너지 안보를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다. 우리나라는 국내에서 소비되는 에너지의 약 3분의 1을 원자력으로 충당한다. 원자력은 다른 에너지원에 비해 경제적이고 지속가능하며 환경친화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서는 안전성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한다.

그렇다면 원전을 전면 폐지하면 안전해질까. 그렇지 않을 것 같다. 원자력 운영은 에너지 수급 측면에서의 안보는 차치하고라도 정치·외교·안보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중국은 현재 보유하고 있는 20기의 원전을 2020년까지 83개로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원전 보유 1위인 미국의 100기에 근접한 규모다. 일본도 2011년 후쿠시마 사고 이후 탈원전을 선언했지만 최근 새 안전 기준을 마련하고 원전 재가동에 다시 속도를 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원전을 전면 폐지할 경우 원전 안전관리 기술은 누가 제공할 것인가. 원자력 전문가도 없이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입장을 어떻게 대변하고 권리를 주장할 것인가.

다행히 한국은 원자력 세계 5대 강국 위상에 걸맞은 기술과 노하우를 확보하고 있다. 원전을 폐지하는 것이 안전한 게 아니라 원전을 잘 쓰는 것이 결국 안전을 지킬 수 있고 국가의 자주권도 확보할 수 있는 길이다.

오는 11월 외교부와 원자력안전위원회 주최로 한국 중국 일본 등 동북아 3국과 미국 러시아, 그리고 국제기구가 참여하는 원자력안전 심포지엄(제2차 TRM+)이 열린다. 5개국은 전 세계 원전의 51% 이상이 밀집돼 있는 지역으로 이들 국가 간 협력은 매우 중요하다. 회의에서는 원자력시설 방호를 위한 공조와 원자력안전 분야 인력 양성 등 실용적인 논의가 진행된다.

한국이 이런 행사를 유치하고 원자력 안전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은 원자력 강국이기 때문이다.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태(百戰百殆)라고 했다. 원자력에 대해 잘 알면 알수록 통제권도 커진다.

오성환(외교부 국제에너지안보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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