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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감스포츠] 축구와 야구가 처음 전해진 인천

[즐감스포츠] 축구와  야구가  처음  전해진  인천 기사의 사진
개회식에서 아시아인을 모두 태운 디지털배. 연합뉴스
임오군란 직후인 1882년 영국 군함 ‘플라잉 피시호’가 일본을 지원하기 위해 제물포항에 입항했다. 함선의 수병들은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배에서 내려 공을 찼다. 제물포 사람들은 그들과 어울려 담배도 나눠 피우면서 공차기를 배웠다. 한국에 처음 근대축구가 전파된 것이다. 이듬해 개항 이후 서구문물 도입의 창구였던 제물포에는 1920년대엔 자생적 축구 클럽도 생겼다. 1930년대엔 국내 최초의 축구 클럽이라 할 수 있는 ‘인천 조양’ 축구단도 생겨났다. 축구뿐 아니라 야구도 인천이 맨 먼저였다. 1905년 질레트 선교사가 국내에 야구를 들여왔다는 설이 유력했지만, 1899년에 인천에서 이미 야구 경기가 있었다는 사실이 당시 인천에서 공부하던 일본인 학생의 일기장에서 밝혀졌다.

그로부터 100여년이 흐른 뒤 아시안게임이 한국 근대 스포츠의 요람 인천에서 개최된다는 사실은 각별한 의미가 있다. 비록 외세에 의해 개항이 이뤄졌다고는 하나 개항은 근대화와 더불어 개방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번 대회가 운동선수의 힘겨루기뿐 아니라 인천이 가진 개방성을 통해 아시아 문화 교류의 장으로 삼아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번 대회 개폐회식이 기존 대회의 그것과 달리 문화인들이 대거 참여한 것도 그런 이유로 해석되기도 한다. 어차피 스포츠는 대중문화의 영역에 포함돼 있다.

서완석 국장기자 wssu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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