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이훈삼] 국군의 날에 생각한 군축 기사의 사진
제66주년 국군의 날 행사가 1일 오전 육·해·공군본부가 위치한 충남 계룡대 연병장에서 거행됐다. ‘군대’는 뜨거운 동료애나 힘겨운 훈련을 극복한 강인한 남성 등을 먼저 떠올리게 한다. 용맹하고 절도 있고 충성스러운 군은 국민을 안심하게 한다.

그러나 최근 우리 군에서는 국민의 불안을 가중시키는 사건이 연이어 벌어지고 있다. 사회 전체가 폭력적이었던 독재 시대에나 발생하는 집단 따돌림과 비인격적 폭력이 끊이지 않으며, 어이없는 총기 사고가 줄지 않고 있다. 더욱이 근래에는 장교나 병사 가릴 것 없이 지위를 이용한 성 추행·폭력 사건이 더욱 심각한 문제로 확산됨으로써 국민의 신뢰가 생명인 군의 이미지를 먹칠하고 있다. 군의 추락은 곧 자식을 군에 보낸 부모와 가족의 불안 상승으로 이어진다. 왜 이런 일이 근절되지 않는 것일까. 우리는 언제까지나 입대한 자식이 돌아올 때까지 가슴 졸이며 살아야 하나.

군대에선 명령과 복종의 질서가 최우선

군대는 한마디로 전쟁이라는 특수하고 잔혹한 상황을 전제한 조직이다. 그래서 힘들고 지루하지만 쉬지 않고 훈련을 반복한다. 전쟁이 일어났을 것이라 가상하고 움직이는 조직은 본질적으로 안쓰럽다. 전쟁은 컴퓨터 게임이 아니다. 일단 해보다가 중단하기에는 그 폐해가 너무 참혹한 것이 전쟁의 실재다. 우리는 이미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이라는 아픈 상처를 지니고 있다. 전쟁은 개인뿐 아니라 한 집단 전체의 생사가 걸려 있는 중대한 계기를 다수 포함하고 있다. 그러기에 전쟁에서는 민주적 절차에 따른 합의보다 지휘관의 정확·신속한 판단과 이에 대한 전폭적인 신뢰와 복종이 생존의 조건이다. 그러므로 군이 존재하는 한 민주적 합의보다는 명령이, 다양성보다는 획일성이 더 중요한 가치다. 실제로 적과 싸우는 전쟁에서 죽지 않고 살려면 명령과 복종의 질서가 최우선일 수밖에 없다. 전쟁은 서정이나 낭만을 허락하지 않는다.

사회는 점점 다양해지고 개인은 점점 주체화되어 가는데 예나 지금이나 전쟁의 본질은 여전하며, 전쟁에 대응해야 하는 군의 성격도 마찬가지일 수밖에 없다. 결국 우리 사회의 민주 발전과 군의 체계는 근본적으로 서로 충돌한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따라서 민주 사회의 성숙과 안녕을 위해서는 원론적으로 군은 해체되어야 마땅하지만 분단 70년을 맞이하는 지금, 아직도 남북이 대치하는 한반도의 현실에서 군의 해체는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 우리가 지닌 고민의 근원이다.

끔찍했던 한국전쟁 후 61년이 흘렀지만 우리는 아직도 전쟁을 끝내지 못하고 잠시 쉬고 있을 뿐이다. 이 점이 군은 여차하면 언제든지 다시 전쟁할 수 있는 채비를 갖추고 있어야 하는 구조적 이유다. 그러기에 우리는 한반도의 휴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시키기 위해 구체적 활동을 서둘러야 한다.

한반도 평화체제의 첫 걸음은 군축

그중 하나의 핵심은 군축이다. 군을 해체시킬 수는 없어도 최소화하는 것은 가능하다. 국민 중 60만명이 일상생활을 떠나 전쟁을 전제로 한 조직에서 일정 기간을 생활한다. 생명력이 왕성한 20대 초반의 청년들은 인간이기 전에 먼저 전쟁을 수행하는 군인이 되어야 한다. 이들이 받는 모든 훈련은 사람을 죽이고 파괴하기 위한 것이다. 상대방을 죽이는 것이 곧 나와 우리 가족과 사회를 살리는 것이다. 이 얼마나 무서운 현실인가. 이 에너지의 절반만이라도 사회봉사 등 긍정적인 일에 투여할 수 있다면 한민족은 진정 상생의 길을 갈 수 있을 것이다. 방법은 그 다음 문제다. 남과 북의 사람들이 정말 그럴 의지가 있느냐가 우선이다. 그리고 진정한 민족의 지도자는 이 의지를 고양시키는 인물이다.

답답하고 안쓰러운 제66회 국군의 날에 예언자 미가의 음성에 깊이 공명했다. “그가 많은 민족들 사이의 일을 심판하시며 먼 곳 강한 이방 사람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고.”(미가 4:3).

이훈삼 주민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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