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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전정희] 행복한 예수사전

[삶의 향기-전정희] 행복한 예수사전 기사의 사진
영화 ‘행복한 사전’을 봤습니다. 대형 출판사 사전편집부 사람들 얘기입니다. 활자 중독 걸린 이들의 남루한 삶의 얘기는 아닙니다. ‘한글날’을 앞두었으니 한 번쯤 꺼내 보시기 바랍니다.

영화의 시간적 배경은 1995∼2009년입니다. 14년 동안 국어사전 한 권을 낸 ‘비효율적 부서’가 사전편집부입니다. ‘말의 의미를 알고 싶다는 건 누군가의 생각이나 감정을 정확히 알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타인과 이어지고 싶다는 소망 아닐까요?’ 그들의 고백입니다.

“가슴이 뛰어 읽을 수가 없어”

사표가 될 만한 노(老)언어학자와 어수룩해 보이나 집중력 강한 젊은 편집자, 그리고 깨알 같은 활자를 다루어 언어의 보습을 만드는 소명 받은 편집자들이 세월을 견디며 언어의 바다를 건넙니다. 사전 이름이 대도해(大渡海)입니다. 감독은 젊은 편집자의 어눌한 연애를 설레게 그립니다. 젊은 편집자는 옛 문체로 꼭꼭 눌러쓴 러브 레터를 자신의 하숙집 손녀에게 전하죠. 요리사인 하숙집 손녀가 편지를 받고 천천히 말합니다. “(가슴이 뛰어) 읽을 수가 없어. ∼지금 내 앞에서 말해줘.”

그들은 결혼하고 시간은 또 천천히 흐릅니다. 노학자가 죽고, 중년의 유능한 편집자는 퇴직합니다. 젊은 편집자는 주임이 됐고, 그 밑으로 세련된 여성 편집자가 하품 나는 편집부 풍경에 놀랍니다. 사전은 그렇게 세월을 깔고 ‘종이 보석’이 되어 출간됩니다. 일본 영화지만 높은 별점을 줘야겠습니다. 올 초 일본아카데미 시상식 8관왕 작품입니다.

경박단소의 디지털미디어시대. 입말과 글말도 경박단소입니다.

이 즈음 신문에 ‘우리말을 이대로 두어도 괜찮겠습니까?’라는 광고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서울대 지질학과 62학번 일동’ 명의였습니다. ‘우리말을 토씨에 불과한 듯이 사용해도 되는 것인지 심히 걱정된다’며 한 예를 실었습니다. ‘포스군 아이디어 마켓플래이스로 벤처기업 육성, 레드 썬에서 마인드 디자인하세요….’

권력의 이중언어를 깨뜨리다

훈민정음 원문은 중국어입니다. 양반층은 한국어 조사만 넣어 이렇게 말했죠. ‘국어지음이 이호듕귁하야 여문짜로 불상류 통할새….’ 요즘 식으로 바꾸면 이렇습니다. ‘스피치 사운드 오브 디스 칸츄리가 차이나와 디퍼런트하여 커뮤티케이션할 라이팅이 없어서….’

이는 곧 한국사회가 또 다시 공식어와 생활어가 다른 이중언어 사회가 되어가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는 48년 정부수립과 함께 한국어를 공식어로 채택, 역사 이래 처음 단일언어 사회를 이뤘습니다. 조선시대 중국어, 일제 강점기 일어, 해방 직후는 영어가 각기 공식어였던 이중언어 사회였습니다. 이는 곧 공식 언어 사용자가 지배층이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말하고요.

한국은 단일언어 사회 선언 후 눈부신 발전을 했습니다.

한데 우리가 ‘제국의 언어’에서 탈출할 수 있었던 도구가 성경입니다. 선교사들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생활 한국어’를 문자(활자)로 정착시키면서 공식 언어 밑거름이 된 거죠. 민중은 성경을 읽기 위해 문해력을 길렀습니다. 그렇게 되자 교육과 모든 공식 업무가 모국어로 가능해졌습니다. 이중언어에 따른 권력과 경제 독점에 제동이 걸린 겁니다.

‘너의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골 4:6) 말은 소금입니다. 우리말을 갈고 닦아야 예수 복음을 ‘마땅히 대답’할 수 있습니다.

전정희 종교기획부 선임기자 jhj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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