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김기석] 바늘로 우물 파기 기사의 사진
“‘그 사람’이 너무너무 불쌍해요.” 눈빛이 맑고 깊은 초로의 목사가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그는 광화문광장에서 매연과 소음에 시달리면서도 40일을 단식하며 기도한 방인성 목사다. 그가 말한 ‘그 사람’은 특정한 개인을 가리키는 말이었지만 나는 그것을 세상의 고통 앞에서 마음의 문을 닫고 있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로 들었다. 40일을 광장에 앉아 있는 동안 그는 고통의 자리를 떠날 수 없는 참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오르한 파묵은 자기의 소설 쓰기를 ‘바늘로 우물 파기’라는 말로 표현했다. 그는 자기 몸을 바늘 삼아 돌처럼 차가운 세상에 틈을 만들었다. 자기 몸에 있는 지방과 단백질까지 다 태우고, 뼈만 남은 그는 마침내 슬픔의 지층에 당도한 것 같다. 슬픔의 자리에서 바라보니 자기에게 갇혀 있는 ‘그 사람’이 가여워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분노마저 잃어버린 것은 아니다. 그는 자기에게 남은 시간을 ‘온유와 겸손’으로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그것은 무골호인의 길이 아니다. 불의에 대해서는 당당하게 저항하고, 작고 여리고 상처 입은 것들에 대해서는 한없는 연민을 가지고 감싸안는 것이다. 오래전 생면부지의 사람을 위해 자기 콩팥 하나를 떼어 주었던 그는 말씀이 육신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보여주는 표징으로 우리 가운데 서 있다. 40일의 단식이 준 선물은 증오하지 않으면서 끈질기게 저항할 힘이었다.

광화문광장의 방인성·김홍술 목사

방인성 목사와 함께 그 자리를 지켜온 김홍술 목사는 노숙인들의 벗으로 살던 사람이다. 시대의 아픔을 주체할 수 없어 그는 그냥 광장에 앉아 단식을 시작했고, 그 세월이 42일에 이르렀다. 광장에서의 힘겨운 시간을 지나는 동안 그의 얼굴과 표정 또한 순후해졌다. 깊은 기도에 잠기기도 하고, 무료한 시간을 견디기 위해 톨스토이의 책을 자기 휴대전화에 입력하기도 했고, 동료들의 얼굴을 스케치하기도 했다. 그는 빚진 마음으로 그 자리를 찾아와 눈물을 글썽이는 사람들과 경멸의 표정으로 조롱의 말을 던지고 가는 모든 사람들을 축복했다.

공동체란 ‘서로에게 선물이 되는 이들의 모임’이다. 이 두 사람을 통해 보이지 않는 사랑의 공동체가 탄생하고 있었다. 평안과 안락함을 구하는 것은 인지상정이지만 그들은 애써 그 자리를 버리고 광장에 나섰다. 그곳에서 들려오는 아벨의 피의 외침을 차마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허장성세 거두고 본질에 충실해야

한승헌 전 감사원장은 언젠가 자신이 인권변호사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던 까닭을 솔직하게 고백했다. 자기는 용기 있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그 엄혹했던 유신 시절, 시대의 어둠을 밝히기 위해 나섰던 젊은이들이 투옥되고 또 재판을 받는데 아무도 그들의 변호인이 되려 하지 않았다고 한다. 변호인조차 없이 법정에 서야 할 그 젊은이들을 보니 그들을 차마 버려둘 수가 없어서 자기가 나섰다는 것이다. 이야기 끝에 그는 유머리스트답게 말했다. “기독교 신앙이란 결국 ‘차마이즘’이 아니겠어요.” ‘차마’라는 말과 ‘∼주의’를 뜻하는 ‘이즘’을 결합시킨 말이다. 사람다움은 바로 이 마음이 발현되는 곳에서 구성되는 것이 아닐까.

며칠 전 문명수 목사의 부음을 접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에 봉사대를 조직해 팽목항과 진도 실내체육관에서 유가족들에게 음식을 제공하고 청소를 하던 50대 초반의 그는 과로와 스트레스로 쓰러졌고 5개월여 투병 끝에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만 것이다. 그는 ‘참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다’는 말이 의미하는 바를 몸으로 드러낸 깃발로 우리 가운데 서 있다. 이러한 희생을 남의 일처럼 생각하는 이들은 하늘에 계신 분을 적으로 삼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다양한 형태의 자기확장 욕망에 사로잡힐 때 종교는 반드시 타락한다. 본을 버리고 말을 붙잡는 이들로 인해 세상이 어지럽다. 한 대형 교회의 원로목사는 사기미수 혐의로 법정 구속되었고, 또 다른 젊은 스타 목사는 성추문에 연루되어 망신을 당하고 있다. 허장성세를 거두고 본질에 충실하지 않는 한 언제든 종교는 그리고 정치는 타매의 대상으로 전락할 수 있다.

김기석 청파감리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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