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노트] (38) 트렌치코트, 노련한 재주꾼 기사의 사진
버버리 제공
가을이 존재하는 홍콩으로 이사 오니 트렌치코트(이하 코트 생략)를 입어야겠다는 생각이 크다. 쌀쌀한 공기에 두께로 보나 폼으로 보나 트렌치가 으뜸인 듯싶다. 트렌치의 최대 강점은 분위기가 난다는 점이다. 안에 무엇을 입어도 트렌치의 휘하에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이 옷을 존중하는 이유다.

160여년 전 영국의 포목상 토머스 버버리는 자신이 개발한 방수성이 뛰어난 개버딘 소재의 레인코트가 범시대적인 멋쟁이의 필수품으로 줄기찬 인기를 구가할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트렌치는 하의의 길이를 가리지 않고 튀는 옷도 너그러이 품는다. 머리가 헝클어져도 그것이 콘셉트인 양 어색해 보이지 않으며 후줄근한 트레이닝팬츠마저 봐줄 만하게 수준을 향상시킨다. 옛것을 입어도 촌스러워 보이지 않는다는 것 또한 트렌치의 자랑거리다. 트렌치는 화장기 없는 얼굴에 후다닥 바른 빨간 립스틱을 돋보이도록 하는 신묘한 힘을 갖는다.

여든살 할아버지부터 아이들까지 모두에게 나름의 격을 안겨준다. 철통같은 군인의 체통이 반영된 옷이기에 이토록 완전한 것인지 그 스타일리시한 역량을 따라갈 겉옷은 없다. 베이지색은 무난하고 카키색은 청량감이 묻어나고 감색(네이비블루)은 깊이 있고 빨간색은 산뜻하다. 어떤 색이든 세련됐기 때문에 꼭 베이지를 고수할 필요는 없다. 그럼에도 역시 마음을 가장 강하게 끌어당기는 것이 베이지색임은 어쩔 수 없다. 감각이 달릴 때 트렌치는 맵시를 내줄 맘씨 좋은 스타일리스트다.

김은정(패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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