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종 칼럼] 시대착오적 사고의 틀에 갇힌 야당 기사의 사진
새정치민주연합은 지금 30∼40년 전, 그러니까 유신이나 5공 시대의 야당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민주화라는 이름으로 또는 진보라는 이름으로 반정부 극한투쟁을 하는 것만이 살 길이라는 시대착오적 프레임에 갇혀 있는 것이다. 사람 사는 곳에 대립과 갈등이 없을 수 없다. 정권을 다투는 정치판에서야 더 말할 것도 없다. 정치가 사회 각 분야에서 충돌하는 이해관계를 조정·통합하는 것을 그 사명으로 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정부·여당을 견제하고 그 정책에 반대하며 대안을 제시하기 위한 존재가 야당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정부·여당과 대립 갈등하는 것 자체를 탓할 일은 아니다.

다만 무엇을 놓고 대립 갈등하는지가 문제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정부·여당의 ‘반민주 행태’를 그 주소재로 투쟁하는 모습이다. 물론 청와대 등에서 유신의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제 유신이나 5공 때처럼 야당이 민주화라는 이름으로 반정부 투쟁에 사생결단식 올인해야 할 시대는 지나지 않았나 싶다. 안타까운 것은 많은 사람들이 야당이 벌이는 투쟁을 민주화를 위한 것도, 진보적인 것도 아니며 오직 반정부 투쟁을 위한 투쟁일 뿐이라고 여긴다는 점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이러한 행태로 갈수록 더 많은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속된 말로 ‘개판’을 쳐도 지역감정 등에 따라 선거 때면 자신들을 찍어줄 집토끼가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또 국회의원이 된 운동권 출신 강경파가 당을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렇게 해서 그 위치에 올랐기에 반정부 투쟁만이 사는 길로 믿는 것이다. 원로와 중진들은 그들의 눈치나 보는 실정이고. 이와 함께 국민에게 비전을 제시할 아이디어의 빈곤 때문이다. 정치란 모름지기 국민에게 꿈을 주어야 하는데 그럴 능력이 없기에 장외로 나가 정부·여당에 대해 악만 써대는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에는 지난 6월 지방선거가 난파의 위기였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세월호 참사 바람에 반정부 바람이 불어 위기를 가까스로 넘겼다. 임시 보류됐던 위기가 7·30 국회의원 재보선까지 피해가진 못했다. 15개 선거구 중 11개 선거구에서 패한 것도 충격이지만 야당의 아성인 전남 순천에서 새누리당의 이정현 후보가 당선된 건 선거사적 사건이었다.

순천 선거는 새정치민주연합이 노선 문제뿐 아니라 존폐 여부를 재검토해야 할 ‘사태’였다. 이정현 후보가 당선된 가장 중요한 요인은 그가 이곳에 예산 폭탄을 퍼붓고, 의대를 유치하겠다고 공약했으며, 그가 박근혜 대통령의 측근으로서 그 공약이 실현 가능하다고 유권자들이 판단했기 때문이다. 유권자들에겐 새정치민주연합이 믿는 이념이나 민주화는 물론 지역감정까지도 구시대의 유물이고, 나에게 어떤 혜택이 돌아올 것인가를 따져 투표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영악해졌다.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가 그 직을 사임하면서, 세월호가 배의 복원력을 유지해주는 평형수를 빼버린 것에 비유하여, 토해낸 개탄처럼 당이 침몰하거나 말거나 당 대표가 되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게 제1야당의 지금 모습이다. 이처럼 ‘순천 사태’를 겪고도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는 새정치민주연합은 희망이 없다. 국민에게 꿈을 주지 못한 채 정부·여당을 욕하는 것만으론 만년 야당을 하거나 사라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자체적으로 환골탈태할 가망성도 낮다. 당 안에선 운동권 출신 강경파들이 주도하고 있고, 당 밖의 강경투쟁 세력에 리모트컨트롤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 신당 창당 얘기도 나오지만 안철수 신당이 사산한 데서 보듯이 새정치민주연합이 존속되는 한 리더의 부재 등 인적 자원이나 지지세력 확보 등의 면에서 말처럼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은 큰 죄를 짓고 있는 것이다. 정권교체를 바라는 세력이나 진정한 의미의 진보세력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할 뿐 아니라 새로운 정치 세력의 출현까지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죽어야 낫는 병은 아닌지 모르겠다.

백화종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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