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준한] ‘책임 국정감사’가 돼야 한다 기사의 사진
지난주 미국의 백악관 비밀경호국장이 사임했다. 최근 일련의 추문과 실책이 이어졌고, 마침내 지난달 19일에는 괴한이 백악관 내부까지 침입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비밀경호국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이 만천하에 다시 한번 드러났다. 같은 달 30일에는 하원 정부감독위원회가 비밀경호국의 경호 실책과 진상은폐 의혹에 대한 조사를 위해 청문회를 열었다. 비밀경호국 148년 역사에 첫 여성 수장으로 올라 18개월 동안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경호를 책임졌던 국장이 청문회에 출석, 질문에 직접 답한 뒤 사임을 권고받자 그 다음날 사표를 던졌다. 미국 의회의 청문회에서는 시의성 있게 현안이 다뤄지고 책임자가 직접 출석해 답하며 인신공격 대신 문제의 핵심이 파헤쳐진다. 책임질 사람은 물러나고 막힌 문제는 풀린다.

대한민국 국회의 국감은 그 정반대에 가깝다. 제19대 국회가 개원하면서 여야 합의로 국감제도를 고쳐 지난해부터는 정기국회 이전 30일 동안 국감을 실시하기로 했으나 여야가 싸우는 통에 오히려 예년보다 더 늦게 실시됐다. 올해부터는 상시국감 대신 분리국감을 도입하기로 했으나 상반기 국감은 흐지부지됐고 정기국회 국감은 오늘부터 20일 동안 실시된다. 문제 많은 국감제도는 매년 개혁의 대상이었지만 결국 돌고 돌아 제자리로 다시 돌아왔다. 이제 시의성도 사라진 현안들을 대상으로 벼락치기 시험 보듯 한꺼번에 국감이 진행될 것이다.

올해 국감은 말이 20일 동안이어서 7일부터 27일 사이에 실시되지만 공휴일과 주말을 빼면 고작 14일에 불과하다. 이번에는 한글날이 끼어 있어 국감이 지난해보다 하루 더 줄었는데 피감기관은 최고 기록이었던 지난해 630곳보다 672곳으로 오히려 더 늘어났다. 지난해에는 기업 총수 등 민간인 증인 258명을 불러 앉혀놓은 채 한 마디 답변도 할 기회를 주지 않곤 했는데 올해에도 민간인 224명을 증인석과 대기석으로 부를 예정이다. 올해 국감도 작년에 증인에게 호통을 치고 면박을 주던 것에서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다는 의심이 벌써 든다.

바로 오늘부터 시작되는 국감을 앞두고 제도를 뜯어고치자고 하기는 너무 늦었다. 하지만 별로 주목받지 않는 제도에 대해 주의를 환기시키고 싶다. 지금껏 겸임 상임위원회의 국감은 정기 국감 기간이 끝난 뒤 실시돼 왔다. 그러니 언론의 관심이 현저히 떨어지고 국회의원에게도 우선순위가 낮아졌다. 그런데 여기에 속한 피감기관의 면면을 보면 감히 그럴 수 없다. 겸임 상임위원회 가운데 하나인 운영위원회의 피감기관은 청와대, 인권위와 같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여성가족위원회는 국회의 자료 요청에 엉뚱하게 반응하고 국회 국번인 784로 시작되는 번호가 찍힌 전화는 받지도 않으며 정시퇴근에는 서로 앞장서는데 책임은 남에게 미룬다는 여성가족부 등도 있다.

오늘부터 실시되는 국감이 그나마 성공하려면 ‘책임 국정감사’가 필요하다. 국회의원과 보좌진은 국감이 ‘행정부를 견제하는 입법부의 본원적 기능’을 수행하도록 맡은 책임을 다해야 한다. 문제를 파헤치고 잘잘못을 따지며 담당(공무원)이나 장관을 망신주고 몰아붙이기는 차라리 쉽다. 그러나 정작 국민이 원하고 국감이 제대로 되는 길은 문제의 근원을 찾아 이를 바로잡을 대안을 제시하며 더 생산적인 정책을 마련해 방향을 알려주는 것이다.

담당 공무원부터 장관은 행정부를 대표해 국감에 성실히 임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국회의 적법한 자료제출 요구라면 떳떳하게 제시간에 제출하여 효율적인 국감이 되도록 기본부터 갖춰야 한다. 잘못이 있다면 스스로 솔직하게 인정하고 앞으로 개선할 것을 약속하고 실천하면 된다. 그리고 책임이 있다면 백악관 비밀경호국장과 같이 프로페셔널하게 자리에서 물러나야 할 것이다. 이것이 장기 저성장 경제위기 속에서 국가의 예산을 바로 쓰고, 국민의 세금에서 월급을 받는 공복의 자세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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