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김병삼] 내가 누군지 알아? 기사의 사진
요즘 갑(甲)들의 유행어가 있다. “내가 누군지 알아?” 어느 기사에 보니 이러한 행태에 대하여 정근식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단기간 명성을 얻거나 지위를 확보한 사람들에게 세계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현상적인 차원을 넘어 정신과 소견에 의하면 누군가 자신을 알아줬으면 하는 열등감의 발로라 했다. 그리고 이 어두운 그림자가 심해지면 마음의 병으로 다뤄야 한다고 한다. 어느 신문의 칼럼에서는 “내가 누군지 알아?”를 패가망신을 부르는 주문이라고 했다.

‘정체성’은 인간들이 가지는 가장 보편적인 욕구 중의 하나다. 정체성이 분명할 때 사람들은 안정감을 느낀다. 반대로 내가 생각하는 나와 타인이 생각하는 나 사이에 괴리가 생기면 정체성에 혼란이 온다. 신프로이트주의 이론가인 에릭 에릭슨(Erik Erikson)은 사춘기에 정체성의 위기가 온다고 주장했다. “내가 누군지 알아?”라는 말 속에는 미처 성숙하지 않아 새로 자리잡지 못한 사춘기적 혼란이 존재한다. 불안감은 내가 생각하는 나를 상대방이 인식해주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만의 표출이다.

나와 타인이 생각하는 나 사이의 괴리

안정감은 내가 생각하는 ‘나’와 타인이 생각하는 ‘나’의 간격이 좁혀지면서 찾아온다. 돈을 사용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 찾아오는 갑작스러운 부나 인격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에게 찾아오는 지위 상승은 정체성의 혼란을 가중시킨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갑질’의 횡포는 성숙하지 못한 인격에 주어진 과도한 권력과 권한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한국교회에 대한 부정적 시각도 이 범주에 속한다. 80년대의 폭발적 교회 성장은 사회, 정치, 문화, 모든 영역에서 기독교의 영향력을 행사하도록 만들었다. 어떤 면에서 교회에 속한 일원이 된다는 것이 자신의 신분을 말해주는 것처럼 말이다. 성숙하지 못한 교회가 가진 권력은 세상에서 갑질의 행태로 보이기도 했다. 세상이 교인의 인격을 교회의 인격으로 판단한 결과이다.

필자가 교회를 담임하고 나서 처음으로 시작한 일 가운데 하나가 비기독교인들에게 물었던 교회에 대한 생각이었다. 조사 결과 교인들의 마음이 상할 수도, 억울할 수도 있는 생각의 괴리가 있었다. 당시 교인들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남들이 그렇게 생각하면 그런 것입니다. 우리가 주장한다고 바뀌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들의 시선이 바뀔 수 있도록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세상은 누군가 자신이 주장하는 것을 보기보다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보기를 원한다.

‘남이 나를 뭐라 하는데?’ 인식전환 필요

오늘날 한국교회의 오류는 비기독교인들을 전도하고자 하면서 그들의 생각을 고려하지 않는 것이다. ‘슈퍼 갑질’이 꼴사나운 것은 상대방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자신이 대단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초대교회가 로마제국에서 공인된 이후 단 한 명의 황제가 ‘배교자’란 이름으로 불린다. 황제 줄리안은 이교를 다시 로마제국에서 부흥시키기 위해 기독교를 연구했다. 그리고 이교 사제들에게 편지를 썼다. “기독교를 본받으라! 그들은 같은 종교를 가지지 않음에도 사람들에게 호의(hospitality)를 베풀지 않는가?”

진정한 기독교의 정체성은 이교도들의 눈에 비친 기독교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래서 황제의 배교에도 불구하고 기독교가 전파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진정한 기독교의 영향력은 믿지 않는 사람들의 눈에 비친 교회의 모습에서 시작된다. 진정한 정치인의 영향력은 자신을 뽑아준 대중의 눈에 비친 그들의 모습에 있다. “내가 누군지 알아?”에서 “그 사람이 나를 뭐라고 하는데?”로의 인식 전환이 성숙한 인격을 만들어주는 것이 아닐까.

세상의 물건을 파는 사람들도 이제 상대방에게 강요하는 ‘푸쉬(고압적) 마케팅’에서 소비자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풀 마케팅’으로 전략을 바꾸고 있다. 인격이 안 되면 전략적으로라도 인식을 전환해야 패가망신은 면할 수 있지 않을까.

김병삼 만나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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