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주-이흥우] 특검에 거는 지나친 기대와 환상 기사의 사진
정치권 합의는 이끌어냈으나 사회적 합의 도출엔 실패했다. 다섯 달 넘게 끈 세월호 특별법 협상은 사생결단하다가도 너와 나의 최대공약수에 도달하면 부족함이 있더라도 이를 존중하고 수용하던 우리 사회의 아름다운 전통에 생채기를 남겼다. 끝내 단원고 학생 희생자 유족들은 3차 합의안마저 거부했다. 유족 뜻에 공감하는 여론 또한 상당하다.

협상 타결로 세월호 특별법 제정 작업은 본궤도에 올랐다. 여야 합의대로라면 특별법은 이달 안에 세상 밖으로 나온다. 그럼에도 광화문 광장엔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노란 리본이 여전히 나부낀다. 유족 뜻이 무시된 데 대한 분노와 항의의 표시리라. 최후의 보루라 여기고 기댔던 야당이 유족 요구를 관철하지 못한 것에 대한 좌절감과 배신감도 컸을 듯하다.

이로부터 얼마 후 검찰의 세월호 참사 수사결과 발표가 있었다. 인간의 탐욕으로 세월호는 침몰했고, 해양경찰과 해상교통관제센터(VTS) 등의 미숙한 대응으로 희생을 키웠다는 게 검찰이 내린 결론이다. 익히 알려진 그대로다. SNS를 통해 확산됐던 좌초설, 폭침설, 충돌설, 국정원 개입설도 사실무근으로 결론지었다. 애초 이런 설들은 누군가 세인의 주목을 받기 위해 과학적 근거 없이 내뱉은 말장난에 불과했다. 급박한 골든타임에 구조는 뒷전인 채 개인기업 잇속 챙기기에 눈먼 해경 차장의 파렴치한 ‘선사후공(先私後公)’ 작태도 드러났다. 검찰은 399명을 입건하고 154명을 구속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미국에서 추방된 ‘유병언씨 금고지기’ 김혜경씨 수사 등 검찰 수사는 현재진행형이다.

단원고 학생 유족들과 야권은 검찰 수사에 불만이 많다. 몸통은 놔두고 깃털만 건드렸다는 얘기다. 그래서 특별검사 수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특검은 1999년 9월 제도가 도입된 이래 지금까지 총 11차례 활동했다. 조폐공사 파업유도, 옷 로비, 이용호 게이트, 남북정상회담 관련 대북송금, 노무현 대통령 측근비리 의혹, 철도공사 유전개발 외압 의혹, 삼성비자금, BBK 사건, 스폰서 검사, 10·26 디도스 공격, 이명박 대통령 내곡동 사저부지 매입 의혹 사건이다. 하나같이 실세들이 개입한 권력형 비리나 의혹, 사회적으로 민감한 정치적 사건들이다.

때문에 특검 도입 때마다 야당의 창, 여당의 방패 대결이 격렬했다. 자칫하면 정권의 존립기반이 순식간에 무너지고 정당성과 도덕성에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남길 수 있어 당시 집권세력은 특검 도입에 매우 소극적이었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는 특검 수사를 받은 이전 사건들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 게이트’로 불릴 만한 권력형 비리나 정치사건이 아니다. 무려 304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끔찍한 대재앙임이 분명하나 사건의 본질은 안전사고에 가깝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5월 눈물의 담화를 발표할 때 “필요하다면 특검을 해서 모든 진상을 낱낱이 밝혀내고 엄정하게 처벌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권은 물론 대통령까지 특검 도입을 이렇게 흔쾌히 받아들인 예가 없다. 영문도 모른 채 칠흑의 바다에 잠긴 가족의 한을 풀어주고 싶은 유족의 간절한 소망을 모른 척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기나긴 여야 공방도 특검 추천 주체를 둘러싼 논쟁이었지, 특검 도입 자체에 대한 게 아니었다.

세월호 특검이 임명되면 12번째 특검이 된다. 돌이켜보면 여야와 유족들이 특검 추천 주체를 놓고 왜 그렇게 얼굴을 붉혔고, 지금도 등을 돌려야 하는지 이해되지 않는 측면이 없지 않다. 세월호 참사는 수사 주체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개연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권력형 비리나 시국사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누가 특검이 되든 지금까지 드러난 것 이상의 결과를 얻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이런 부담감 때문에 특검을 고사하는 후보자가 적지 않을 듯하다. 유족들은 자신들 뜻에 맞는 특검이 임명되면 뭔가 감춰진 엄청난 비밀을 밝혀줄 것이라 믿는 모양새다. 유족들이 특검에 지나친 환상을 갖고 있는 게 아닌지, 그게 걱정이다.

이흥우 논설위원 hw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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