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철 칼럼] 이후락과 박성철은 아니더라도 기사의 사진
1972년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 김영주 북한 노동당 조직지도부장이 발표한 7·4남북공동성명은 남북 당국이 분단 이후 통일과 관련해 합의·서명한 최초의 문건이다. 이 성명은 역사적인 의미가 있기에 그 후 각종 남북대화와 교류협력 사업의 전범으로 자리매김했다. 국민들로 하여금 처음으로 통일의 희망가를 부를 수 있게 한 7·4성명은 그러나 공식 회담이 아닌 비밀접촉의 산물이다.

북한의 재침 가능성을 걱정하던 박정희 대통령의 지침에 따라 이 부장은 71년 11월 남북 적십자사 실무자 간 비밀접촉 통로를 열었다. 이듬해 3월까지 판문점에서 진행된 실무접촉 성과를 토대로 이 부장이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을 만나고, 북한 박성철 제2부수상은 서울을 찾아 박 대통령을 만남으로써 성명이 빛을 보게 됐다. 모든 접촉은 성명 발표 때까지 극비에 부쳐졌으나 그 과정에 대해 정부를 비판하는 국민은 거의 없었다.

새삼스럽게도 42년 전 과거사를 꺼낸 것은 남북 간 비밀접촉의 유용성을 생각해보기 위해서다. 박근혜 대통령은 남북 문제를 풀어나가는 데 공식적인 회담을 고집한다. 비밀접촉이나 비선라인 활용에 부정적이란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취임 후 공개적으로 그런 생각을 밝히기도 했다. 그 점에선 이명박 대통령과 빼닮았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이 비밀접촉을 통해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데 따른 부작용과 비판 여론을 의식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남북 간 대화나 협상의 정당성과 투명성을 확보해 다수 국민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데 공식 회담이 최선임엔 틀림없다. 유언비어를 양산하기 십상인 비밀접촉은 지속적인 대화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문제는 성과다. 공식 회담을 통해 좋은 결과를 도출할 수만 있다면 굳이 밀실대화를 가질 필요도, 이유도 없다. 하지만 비밀접촉이 때론 성과물을 내는 데 훨씬 효과적일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공식 회담에서 과연 7·4성명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내 생각은 단연코 ‘노(NO)’다.

지금까지 남북 간의 상당수 주요 작품은 비밀접촉을 통해 생산됐다. 김대중-김정일 정상회담은 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과 송호경 북한 아태평화위 부위원장의 비선라인이 성사시켰다. 김 주석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무산된 김영삼-김일성 회담 합의에는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의 물밑 중재가 큰 역할을 했다. 노태우 대통령은 서동권 안기부장을 극비리에 평양으로 보내 막 시작된 남북 고위급 회담의 순항을 물밑에서 지원토록 했다. 전두환 대통령도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장세동 안기부장을 비밀리에 방북시켜 김 주석을 만나도록 했다. 정상회담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실패했지만 남북 적십자사 공식 회담에서 난항을 겪던 이산가족 고향방문과 예술단 교환 타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명박정부에 이어 박근혜정부에서도 남북 경색이 지속되는 것은 대북 원칙론을 지나치게 강조하기 때문이란 지적은 일리가 있다. 다분히 이중적이며 예측 불가능성을 지닌 북한을 다루면서 우리 정부가 줏대 없이 온탕과 냉탕을 오가는 것은 물론 바람직하지 않다. 그렇다고 대북 협상에서 유연성까지 외면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런 점에서 박 대통령이 남북관계의 족쇄 역할을 해온 5·24조치 해제에 전향적인 입장을 표명한 것은 환영할 만하다. 전쟁 중에도 대화가 필요하다는 발언 또한 가슴에 와 닿는다.

박 대통령의 뜻이 성과를 내려면 하루빨리 남북 당국자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 공식적인 고위급 접촉 성사 가능성을 염두에 둔 발언이겠지만 이와 병행해 남북 실세들 간 비밀접촉을 모색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중장기적으로 보면 비선라인 확보도 권장할 일이다. 이런 접촉을 통해 상대방의 속내를 정밀하게 파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전도가 불투명한 김정은 정권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남북관계에서 비밀접촉을 하지 않는 게 대단한 자랑거리는 아니다.

성기철 논설위원 kcs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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