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필시장 무한확장] ‘1장당 6만원’… 당신의 인생을 써드립니다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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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소개서 1장 6만원, 직무수행계획서 2장 9만원, 석사 학업계획서 2장 9만원, 법정 탄원서 장당 5만원, 기본 분량 초과 시 장당 2만원 추가….

글에 목마른 사람들이 늘어나자 ‘필력’을 파는 작가들도 전문화되고 있다. 부가통신사업자 등으로 사업자번호를 받아 영업하는 대필 전문 업체는 인터넷 검색 한번만으로도 찾을 수 있다. 웹사이트에는 항목, 분량, 가격 등 메뉴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 취업 사이트 등에선 카카오톡 아이디가 고객을 맞고, 휴대전화번호나 메일 주소 등을 남긴 작가도 있다. ‘재능마켓’을 플랫폼 삼아 대필 서비스를 판매하기도 한다. ‘손글씨’도 돈이 된다. 각종 친목 커뮤니티나 카페에서는 작가들이 필체 샘플까지 올려두고 영업하고 있다.



재능을 팔아요, 얼굴 없는 ‘작가’들

대필 경력 4년차인 J씨는 17일 “탄원서, 자기소개서, 자서전, 편지 등 모든 대필이 기본적으론 ‘이야기’를 바탕으로 풀어나가는 글”이라며 “대부분 작가들이 분야를 막론하고 의뢰를 받지만 사업계획서나 자기소개서처럼 특정 분야의 전문성을 내세우는 사람도 있다”고 소개했다. 영업이 번창하면 ‘알바’까지 고용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작가 대부분은 문예창작과나 어문계열, 신문방송학 등을 전공했거나 논술교사, 객원기자 등 글쓰기 경력을 지녔다. J씨는 국문과를 졸업하고 수년간 신춘문예에 도전하다 자서전 대필로 일을 시작했다. 경력 6년의 Y씨도 시나리오 작업 등을 통해 글쓰기 영역을 확장하다 일을 시작했다. Y씨는 “정치인의 짧은 자서전 대필로 시작해 알음알음 자기소개서를 부탁하는 사람들을 공짜로 돕다가 본격적으로 대필에 뛰어들었다”고 말했다.

인사 업무에 종사했던 B씨는 회사를 쉬는 동안 ‘용돈벌이’로 대필을 시작했다. 글쓰기 관련 경력은 없지만 전문성이 무기다. B씨는 “학생 때부터 자기소개서와 면접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던 경험과 외국계 기업 등에서 사회생활을 하며 익힌 업무 덕분에 대필이 수월하다”고 말했다.



글이 절박한 사람들

가을은 각종 기업 공채와 대입 수시모집 등이 맞물린 대필 시장의 ‘대목’이다. 입학사정관제가 도입되자 2010년 무렵부터 활발해진 대입 자기소개서 대필은 취업용보다 비싼 값에 거래된다. 요즘 대세는 전문 컨설팅 업체다. 올해 고3인 둘째 딸을 둔 차모(56·여)씨는 “강남의 한 업체가 표절을 가려내는 프로그램에도 걸리지 않게 써준다는 소문을 듣고 학부모들과 상담을 받았다”며 “일부 부모들은 그 자리에서 계약했다”고 말했다. 작가 J씨는 “학벌만능주의 사회에서 대입 자기소개서를 의뢰하는 학부모들이 가장 절박한 사람들”이라며 “대필 비용 외의 웃돈을 얹어주면서까지 최선을 다해 달라고 당부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취업준비생들도 단골손님이다. 지난달 취업 포털 인크루트와 공채의 신이 함께 구직자 44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77.3%가 ‘대필 의뢰를 생각해봤다’고 답했다. 4.1%는 실제 대필을 받았는데, ‘서류전형에서 계속 떨어져서(55.6%·이하 중복산정)’, ‘서류전형에서 떨어질까 불안해서(33.3%)’ 대필을 받았다고 했다.

실제 서류전형은 취업준비생들에겐 ‘악몽’이다. 취업 포털 잡코리아가 지난 14일 구직자 1174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구직자들은 올 하반기 평균 15차례 지원해 2.1차례밖에 서류전형을 통과하지 못했다.

최근 교통법규 위반 등에 대한 경찰 단속이 심해지면서 법정 제출용 서류도 ‘짭짤한’ 벌이가 됐다. Y씨는 “최근에는 법률기관 제출용 ‘반성문’이 자주 들어오는데 ‘덕분에 면허정지 100일이 50일로, 80만원 벌금이 40만원으로 감경됐다’며 감사를 전하는 분이 많다”며 “사람들은 모두 절박한 상황에서 대필을 찾는다”고 말했다.



스토리텔링 시대의 부적응자

대필 의뢰인들은 크게 두 부류다. 목표도 계획도 없이 ‘글 덕 좀 보겠다’는 사람들과 콘텐츠가 풍부하고 열정도 있지만 ‘글’을 쓰지 못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이다. 늘어나는 것은 고군분투 쪽이다. B씨는 “대부분의 의뢰인들이 사전에 조사해둔 자료나 자신이 써둔 글을 참고삼아 보내는 등 많은 고민과 시도 끝에 어렵게 문을 두드린다”고 설명했다. Y씨도 “오히려 경력이 풍부하고 나름의 투자를 많이 했지만 글쓰기에 한계를 느낀 ‘노력파’ 의뢰인이 더 많다”며 “인문학적 소양을 요구하는 기업들은 스토리텔링형 인재를 원하는데 여기에 적응하지 못하는 의뢰인들이 많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글쓰기 교육의 부재와 심화되는 글쓰기 평가 사이의 부조화 탓에 대필이 성행한다고 분석했다. 서울대 국어교육과 민병곤 교수는 “지금 학생들은 수능 중심 입시제도 때문에 일기나 독후감을 쓰던 초등학교 이후로는 글쓰기 공부를 하지 않는다”며 “대입이 닥쳐서야 ‘논술’과 ‘자기소개서’라는 글의 장벽을 마주하곤 절망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화여대 국어국문학과 류철균 교수는 “논픽션 스토리텔링 교육을 비롯해 지속적으로 글 쓰는 법을 가르치는 미국과 달리 우리는 체계적인 글쓰기 교육이 전혀 이뤄지지 않는다”며 “이렇다 보니 쓰기 실력의 극단적 편차가 생긴다”고 진단했다. 미래학자 니콜라스 카는 급속도로 이뤄진 스마트 혁명이 글쓰기와 읽기·사고 능력을 저하시켰다고 분석한 바 있다. 류 교수는 “글쓰기 훈련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우리나라에선 스마트 혁명에 따른 능력 편차가 더욱 극단적으로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절박함도 죄가 될까요

취업이나 대입 과정에서 벌어지는 대필 행위에는 피해자가 생긴다. 개인의 능력을 평가하는 시험에 전문가가 개입하기 때문이다. 법적으로 죄를 물을 근거는 불충분하다. 우선 자기소개서 대필은 입시·채용 업무를 방해했다는 점에서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가 성립할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이력 등의 콘텐츠를 전문 작가에게 제공해 글쓰기 ‘기술’만 샀을 경우 판단이 애매해진다. 재경 지법의 한 판사는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더라도 작성된 글이 내용상 허위가 아닐 경우 윤문(潤文)이나 첨삭의 기준이 모호해진다”며 “실제로 처벌이 힘들 수도 있다”고 말했다.

공공기관에 제출하는 법률문서 대리권은 원칙적으로 변호사·법무사에게만 있기 때문에 법원에 제출하는 반성문, 탄원서 등을 일반인이 대가를 받고 써주면 변호사법 위반에 해당할 여지도 있다. 다만 ‘대필’을 가려낼 실질적인 장치가 없다. 대학교육협의회는 지원 서류를 비교해 동일 단어 및 문장의 반복 빈도, 배열 등을 검증하는 유사도 검색 시스템으로 자기소개서를 검증한다. 그러나 정확도가 높지 않아 때로는 학생이 직접 작성한 자기소개서가 대필 자기소개서로 의심받는 경우도 생긴다.

기업들도 속수무책이긴 마찬가지다. 한 대기업 인사 담당자는 “필사적으로 자기소개서를 검증하는 것은 비용 측면에서 불필요하기 때문에 대필을 잡아낼 방법은 없는 셈”이라며 “자신의 콘텐츠로 승부하지 않은 지원자들은 면접에서 걸러낼 수 있다”고 말했다.

공정성을 위협하는 대필문화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민 교수는 “쉽지 않은 정책적 결정이 요구되겠지만 교육과정 개선에서부터 교원 양성까지 글쓰기 교육에 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류 교수는 “글쓰기는 다른 역량과 달리 단시간에 개선하기 힘든 분야”라며 “교육과정 자체에서 글쓰기 교육이 강화되면 대필 성행이라는 과도기적 상황이 개선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전수민 기자 suminis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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