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예술영화전용관, 설 땅 잃어 간다 기사의 사진
15일 대구 동성로 동성아트홀 내부에 영화 포스터들이 줄지어 붙어 있다. 22년의 역사를 가진 예술영화전용관은 지난 9월 지원이 끊겨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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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동성로 번화가 한쪽엔 예술영화의 세계로 가는 좁은 문이 나 있다. 건물 계단을 따라 3층으로 올라가면 시간을 거스른 듯한 작은 영화관 ‘동성아트홀’을 만날 수 있다. 15일 찾은 동성아트홀 입구에선 작은 매표소가 관객을 기다리고 있었다. 수백장에 달하는 영화 포스터로 뒤덮인 벽을 지나니 하나뿐인 상영관 앞의 대기 장소가 나타났다. 곳곳에 놓인 책과 낡은 소파, 자료들엔 1992년 시작된 영화관 역사가 고스란히 담겼다. 쇠락의 길을 걷던 동성아트홀은 2004년 9월 예술영화전용관으로 거듭나 매년 200여편의 영화를 선보이며 영화 팬의 ‘성지’ 역할을 했다. 그러나 10년 만인 지난 9월 1일 영화진흥위원회의 예술영화전용관 운영지원사업에서 제외되면서 존폐 기로에 놓였다.

이날 오후 4시 ‘소년, 소녀 그리고 바다’ 상영이 끝나자 4명이 상영관을 빠져나왔고 그 자리를 ‘모라토리움기의 다마코’를 보러 온 관객 셋이 채웠다. 대구 토박이 오병석(27)씨는 부산 전주 등으로 영화제를 쫓아다니는 영화광이다. 오씨는 “동성아트홀 덕에 좋은 영화를 가까이서 볼 수 있어 든든했다”며 “조금이라도 힘이 되고자 일부러 찾았다”고 말했다.

예술영화전용관 운영지원사업은 지방 단관 상영관을 중심으로 예술·독립영화 상영을 확대하고 관객들에게 선택권을 보장하고자 2003년 시작됐다. 운영보조금을 지원하고 온라인 홍보를 도와주는 대신 약정기간 내 정해진 기준에 따라 예술·독립영화를 의무 상영하는 조건이다.

이번 운영지원사업 심사에선 이례적으로 대구 동성아트홀 등 지방 단관영화관 5곳이 탈락했다. 대신 지난해 3개관이었던 롯데시네마 상영관이 올해 2개관 더 늘어난 5개관이 지원대상에 선정됐다. 사업비는 9억2000여만원에서 8억3000여만원으로 깎였다. 영진위는 “문화체육관광부 등 상급기관이 지역극장 수입이 지원금보다 적다고 지적해 시설, 접근성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분노한 한국독립영화협회 등 영화계 12개 단체는 지난달 25일 공동성명을 발표해 “이번 심사는 문화다양성의 한 축을 붕괴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며 재공모를 요구했다. 비판여론이 들끓자 5개관에 9767만2905원을 지원받기로 했던 롯데시네마는 이달 초 “오해를 사는 것 같아 영진위 지원금을 받지 않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논란이 거듭되는 동안 경남 유일의 예술영화관 거제아트시네마는 지난달 28일 결국 폐관했다. 2011년 3월 문을 열고 3년6개월 동안 2100여편을 소개한 곳이었다. 매년 4월 1년 치 예산 5000여만원을 지원받던 이 영화관은 올해 영진위 결정이 9월로 미뤄지면서 그동안 진 빚을 감당하지 못했다. 동성아트홀 사정도 마찬가지다. ‘도울 방법이 없느냐’는 관객들 문의전화도 매일 쇄도한다. 남태우 동성아트홀 프로그래머는 “극장 운영비의 절반 이상을 지원금으로 충당해 왔다”고 말했다.

대구=글·사진 전수민 기자 suminis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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