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숲길 다시 가보니-임항] 왕피천, 생태관광 명소로 거듭나다 기사의 사진
왕피천 생태·경관 보전지역 금강소나무 숲. 울진=구성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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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이 고향인 시인 김명인은 ‘너와집 한 채’에서 행정구역상 경상북도에 속하는 울진을 ‘강원남도’라고 지칭했다. 울진을 돌아다녀 보면 산수도, 사람도 경상도라기보다는 강원도 분위기가 느껴진다. 실제 1963년 경상북도로 편입되기 전 울진은 강원도에 속했다. 지금 강원도는 교통이 편해지면서 ‘강원도다움’을 일부 잃어가고 있지만 울진은 그것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서울에서 5시간. 그곳으로 가기 위해 지난 12일 강릉을 거쳐 죽변항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울진을 대한민국의 대표적 오지라고 한다면, 울진 안의 왕피천 유역은 ‘오지 중의 오지’라고 해야 할 것이다. 왕피천은 영양군 수비면 금장산에서 발원해 울진군 서면과 근남면을 거쳐 61㎞를 굽이굽이 흐른 뒤 동해에 합류한다. 환경부는 2005년 이들 3개면에 걸친 102.84㎢를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그 왕피천 주변 4개 마을, 즉 서면 삼근리 왕피리, 근남면 구산리 수곡리 등의 주민들이 왕피천 에코투어사업단을 결성, 탐방로 2개 구간을 조성해 2년째 운영하고 있다. 바다와 내륙의 물물교환을 두 발로 지탱한 보부상들이 다니던 길이 우리나라 생태관광의 모범사례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왕피천 제1탐방로 초입까지 가려면 서면사무소가 있는 삼근리에서 차를 타고 한참 들어가야 한다. 박달재∼동수곡을 거쳐 왕피리 삼거리까지 15㎞ 임도는 오지라는 이미지와 달리 시멘트로 잘 포장돼 있다. 왕피리 삼거리에서 탐방로를 동행할 에코투어사업단 안광정 사무국장을 만났다. 이곳은 탐방예약제에 따라 숲해설사와의 투어를 예약한 한정된 인원의 탐방객만 보전지역에 들어갈 수 있다. 현재 제1탐방로에는 하루 30명, 왕피천 하류의 제2탐방로에는 80명까지 받고, 3만원의 숙박비와 1만원의 식비 수입은 주민들에게 분배한다. 안 국장은 “탐방객에게 환경보전의 학습 기회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관광 수익이 지역주민에게 돌아가도록 한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제1탐방로 출발 지점인 동수곡 삼거리부터 1시간 동안 평탄한 능선길이 이어진다. 굴참나무, 신갈나무, 소나무, 쪽동백, 벚나무, 층층나무, 박달나무 등이 주로 분포한다. 산판길이 끝나자 다소 가파른 산길이 이어지고, 굴참나무 군락지가 나타났다. 더 올라가자 잣나무 조림지 안에 화전민의 옛 집터가 보인다. 누군가 가지런히 쌓아 놓은 돌담이 있고 아궁이, 솥단지, 밥그릇 같은 물건도 볼 수 있다. 1968년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 사건으로 화전민 대부분이 몰살당하거나 외지로 내쫓겼지만, 산 속에 남은 술병은 그들의 삶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안 국장은 “사람이 그리웠던 화전민들은 길손이 지나가면 붙들고 ‘밥 먹고 가라’고 권했고, 먹고 나면 ‘자고 가라’고 강권했을 것”이라며 웃었다.

높이 30m대 금강송 군락이 드디어 자태를 드러낸다. 그러나 탐방로 주변의 굵은 금강송마다 송진 채취 자국이 선명하다. 이들 금강송의 경우 일제 강점기보다는 광복 후에 송진 가공공장으로 보내기 위해 송진을 수탈당했다. 소나무가 키는 크지만 노거수는 거의 없다. 산판 도로를 이용해 소나무를 벌목하고, 왕피천에 이를 띄워 동해안 마을로 떠내려 보내면 운송비가 들지 않았다. 굵고 곧은 금강송은 선박 바닥재로 최적이었다. 그래서 이곳의 금강송은 수탈과 벌목의 손길을 피할 수 없었다.

출발한 지 3시간 반 정도 지나 왕피리 포장도로 및 왕피천 본류와 만났다. 왕피1리 마을회관에서 점심을 먹고 2㎞를 더 걸어가니 농수로로 이어진 길이 나타난다. 이 길은 왕피천 본류를 옆에 끼고 걷는, 조망이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마을을 S자로 휘돌아 나가는 맑고 거센 물길과 강안(江岸) 쪽 누런 벼로 가득 찬 계단식 논이 보인다. 제1탐방로의 종착지인 실둑마을이다. 내년부터 개방할 제3탐방로는 수백년간 보부상이 다니던 길이면서 바닷가 마을 젊은 남녀가 사월 초파일에 데이트를 하기 위해 불영사까지 걸었던 길이기도 하다.

왕피천 생태·경관보전지역은 단일 보전지역으로는 국내 최대 규모다. 38개 생태·경관보전지역 전체 면적의 28.4%에 해당된다. 북한산국립공원보다 약 20% 더 넓다. 8등급 이상 녹지가 전체의 95%가 넘는다. 수달, 산양, 구렁이, 삵, 매, 흰꼬리수리, 조롱이, 산작약 등 멸종위기 생물 20종과 희귀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보전지역 관리를 관청이 아닌 4개 마을 주민들이 직접 맡고 있다는 사실도 특기할 만하다. 마을 주민 가운데서 선발된 92명의 환경감시원들이 8개 초소에 휴일 없이 교대로 근무한다. 40∼60대 중장년층인 이들이 주 5일 근무해서 환경부로부터 받는 급여는 4대 보험료를 제외하고 100만원 남짓이다. 산지라서 농사일이 많지 않은 데다 급여가 많지 않지만 적은 돈도 아니기 때문에 서로 하려고 하는 분위기라고 안 국장은 귀띔했다.

이웃의 서면 소광리와 북면 두천리는 금강송 숲길을 탐방예약제로 운영해 생태관광 성공 사례를 일궈냈다. 왕피천 유역 마을 주민들도 자연을 지킴으로써 사람도 더 살맛나는 곳으로 가꿔가고 있다.

울진=임항 논설위원 hngl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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