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항 칼럼] 원전은 사람 차별을 먹고 산다 기사의 사진
“원자력발전소에서 나오는 빨간 불을 끄는 기술은 아직 없습니다. 그리고 고준위 폐기물을 제대로 처리하는 방법은 여전히 세계 어디에도 없습니다. 앞으로도 못합니다. 결국은 수명이 아주 긴 방사능이 남게 됩니다.” 일본의 반핵 시민과학자 다카기 진자부로는 이처럼 원전 폐기물의 방사능을 꺼버릴 수 없다는 점을 들어 원전을 ‘화장실 없는 맨션’이라고 불렀다. 사용후 핵연료를 일컫는 고준위 폐기물 처분장을 운영하는 국가는 아직까지 없다. 핀란드와 스웨덴만이 처분시설 부지를 선정한 상태다.

사용후핵연료공론화위원회는 이 과제를 풀기 위해 지난해 10월 말 출범했다. 국내에 가동 중인 원전 23기에서 매년 750t씩 나오는 사용후 핵연료는 원전 부지 내 대형 수조처럼 생긴 임시 저장시설에 보관돼 있다. 2016년부터 원자력발전소마다 차례대로 임시 저장시설이 포화상태가 된다. 이 폐기물은 결국 지하 암반 500m쯤에 영구 처분해야 한다. 위원회는 영구 처분장 부지를 언제 어디에 짓고, 지역주민에게 어떻게 보상하느냐는 방안을 담은 권고안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게 연말까지 제출할 계획이다. 그렇지만 활동 시한을 2개월 남긴 지금까지 공론화위원회는 헛바퀴를 돌고 있다.

홍두승 위원장은 당초 이달 말까지 ‘위원회 초안’을 만들어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수십차례의 정기회의, 간담회 등이 열렸지만 아직 초안이 나올 기미가 없다. 정부가 생각하기에 유력한 처분장 부지 후보는 부산 기장, 울산 울주 등 임시저장시설이 있는 5개 지역이지만 위원회는 최근에야 이들 지역을 방문했다. 홍 위원장 일행은 지난 16일 울진군의회를 방문했으나 이세진 의장으로부터 “사용후 핵연료 공론화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원전은 사람을 차별하는 에너지다. 세대 간 차별은 물론이고 지역 차별을 피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나라의 전력 생산은 충남(24.9%), 경북(14.9%), 전남(14.4%), 경남과 인천(각 13.2%)이 거의 대부분을 맡는다. 반면 서울(0.3%)과 경기(1.8%)는 전체 전력의 10.9%와 21.4%를 소비한다. 원자력발전소는 경남북과 전남에 집중돼 있고, 화력발전소는 충남에 주로 몰려 있다. 원전밀집 지역에서는 “우리가 폐기물 처분장이냐”는 반발심리가 강하다. 중앙정부가 원전정책을 지방정부와 협의한 적이 없다는 불만도 크다. 이런 상태에서 금전적 보상이라는 당근과 함께 부지선정 주민투표를 밀어붙일 경우 위험을 돈 주고 떠넘긴다는 도덕적 논란도 피할 수 없다. 수도권은 1등 국민, 화력발전소가 많은 충청도는 2등 국민, 영호남은 3등 국민이라는 서열이 부지불식간 고착될 우려도 크다.

원전 대국인 프랑스의 경우 19개의 원자력발전소, 58기의 발전용 원자로가 5대강과 대서양 해변을 따라 골고루 분포돼 있다. 파리 근교의 센강변에도 원전이 들어서 있다. 우리도 수도권 한강변에 원전이나 고준위 폐기물 저장시설이 입지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최근 강원도 삼척시의 주민투표 결과는 더 이상 특정 지역에 원전을 집중하기 어려워졌다는 점을 시사한다. 박근혜정부가 원전비중 확대라는 기존 정책을 고수하려 한다면 원전시설의 지역 분산이라는 변수도 감안해야 마땅하다. 최근 고압송전선이나 변전소 건설을 두고 경남 밀양과 경북 청도, 여주·이천 등 수도권에서 불거진 주민 반발을 보더라도 이제 전력 생산과 소비도 지역분산형으로 전환해 갈 때다.

스웨덴 포스마크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의 경우 1972년 발전소 건설에 착수할 때부터 원전홍보관 문을 열고 가까운 지역주민부터 일대일 대면토론과 교육을 실시했다. 30여년간 1만1000여 차례나 주민과 대화하고 나서야 영구 처분장 건설 합의가 이뤄졌다. 주민투표도 금전적 지원도 없었다. 공론화위원회는 활동기간을 늘려 지역주민과 국민에게 쟁점에 대한 꾸준한 설명과 토론을 거쳐 부지 선정의 공감대 형성이라는 ‘공론화’를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

임항 논설위원 hngl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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