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김병삼] 온유함을 생각한다 기사의 사진
중세교회를 개혁하기 위해 분연히 일어났던 인물들이 있다. 14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개혁은 영국의 존 위클리프의 성경 번역으로 체코의 얀 후스에게로 이어져 독일의 마르틴 루터에 의해 1517년 불꽃이 타오르게 된다. 거의 동시대에 살았던 스위스의 츠빙글리는 정치개혁과 함께 교황권에 대항해 전쟁을 불사했던 사람이기도 하다. 당시 종교개혁은 교황권에 대하여 성서의 유일한 권위로 맞섰고, 교황청 입장에서는 그들을 가리켜 ‘반항하는 자들(protestant)’이라 불렀다. 사실 개신교의 ‘protestant(프로테스탄트)’라는 이름은 영광스럽기보다는 비하하는 의미가 더 많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중세시대에 교황권에 대한 개혁은 당연히 정치적 권력과도 맞물려 있다. 우리가 아는 유명한 개혁자들은 하나같이 전쟁을 겪어야 했다. 많은 이들이 종교재판으로 화형을 당하거나 죽은 후에도 무덤에서 파헤쳐져 또 한 번의 죽임을 당해야 했다.

이런 개혁과 전쟁의 와중에 루터와 거의 동시대를 살았던 인물이 있다. 필립 멜랑흐톤(1497∼1560)은 루터의 신학을 조직화했고, 루터가 죽은 후에는 후계자로까지 거론되던 인물이었다. 17살에 튀빙겐 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21살에 비텐베르크 대학의 교수가 된 그는 유럽에서 수백년 동안 교재로 상용된 헬라어 문법책을 저술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런 그의 천재성에도 불구하고 그는 개혁자들의 그늘에 많이 가려져 있다. 전쟁과 개혁의 회오리 속에서 지속적으로 ‘화해’를 시도했던 인물이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다시 시선 끄는 필립 멜랑흐톤

그는 루터의 개혁을 지지했지만 교회를 사랑했기에 끊임없이 루터와 로마 교황청 사이의 화해를 시도했다. 그런 그의 태도는 온유함이라기보다는 우유부단함으로 비쳤고 오히려 루터 지지자들로부터 배척을 당하고 후계자 물망에서도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하나님의 마음에서도 사라지지는 않았으리라. 필자는 요즘 종교개혁지를 돌고 온 후 교회에서 ‘세상을 바꾼 사람들’이라는 타이틀로 개혁에 대한 말씀을 나누고 있다. 그런데 조금은 특이한 인물 ‘온유함’으로 각인된 멜랑흐톤을 통해 개혁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개혁’과 ‘온유함’이라는 단어는 매우 상반된 말처럼 들림에도 이런 질문을 던져본다. ‘온유한 개혁’은 불가능한 일인가? 성경에 보면 “온유한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하시는데, 옳은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하시지 않는다.” 성경에는 “의를 위해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하시는데, 의를 위해 핍박하는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하시지도 않는다.”

개혁을 이야기하자면 필연적으로 ‘옳음’에 대한 이야기를 참 많이 하게 되는 것 같다. 아니, 옳지 않은 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데 어떻게 개혁을 이야기하겠는가? 우리가 사는 지금처럼 사람들이 개혁을 이야기하는 때도 없었던 듯하다. 교회도 개혁이 필요하고, 정치도 개혁이 필요하고, 이 사회도 전반적으로 구조적인 개혁이 필요하다고 소리를 낸다. 하지만 정의와 옳음을 주장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이 세상은 점점 삭막해지고 서로가 설 수 있는 땅이 없어지는 듯하다.

온유한 자는 땅을 기업으로 얻으리라!

‘산상보훈’이라 불리는 마태복음의 팔복 말씀 중 하나가 온유한 자의 복이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땅을 기업으로 얻는다는 것이 단순히 소유를 의미하는 말은 아닌 듯하다. 인간이 소유한다고 얼마나 많은 것을 가질 수 있겠는가. 개혁과 옳음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잘못을 지적해야 한다. 누군가의 허물이 드러나야 개혁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돋보이게 되는 것 또한 분명하다. 하지만 사람이 드러나면 드러날수록 하나님의 영광은 사라지고 하나님의 나라는 점점 더 멀어지는 듯하다.

옳지 않음을 지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옳지 않은 것을 보면서 사랑 때문에 괴로워하고 품으려는 것은 쉽지 않다. 흔히 말하듯 누군가를 향해 손가락질을 할 때 나를 향한 나머지 손가락이 보여야겠다. 누군가를 향한 손가락질이 많아질수록 내가 설 땅은 점점 좁아지고 있다. 온유한 자가 땅을 차지하는 것이 복이다!

김병삼 만나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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