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김용희] 오, ‘멍 때리기’ 시간 기사의 사진
취업 시즌이 돌아왔다. 기업들의 신입 공채 공고가 줄을 잇고 있다. 대학에서도 봇물 터지듯 면접과 자기소개서, 이력서 쓰기 프로그램을 돌리고 있다. 우리 학교만 하더라도 취업이 될 때까지 계속해서 자기소개서를 첨삭해주는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대학은 이제 취업의 전당이 되었다. 취업률로 신입생들에게 입시 홍보를 한다. 취업률로 대학의 순위가 매겨지고 있다. 교육부에서 취업률로 재정지원 제한대학, 퇴출대학을 가르고 있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대학마다 갖은 방법으로 취업을 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교육부는 취업률을 좀 더 합리적으로 정량화하기 위해 기준을 밝혔다. 4대 보험 되는 직장만 취업으로 인정해주겠다는 원칙. 그러나 교육부는 다시 원성을 맞게 되었다. 인문·예체능계 학생들은 4대 보험이 되는 곳에 취업이 힘들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다시 2014학년도 정부재정지원 제한대학 평가부터 인문·예체능계는 취업률 평가에서 제외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실제 학교 현장에서는 취업률을 기준으로 학과 통폐합, 구조조정이 이뤄지고 있다.

내가 속한 국문학과도 예외가 아니다. 충청권 모 대학에서 국문학과를 폐지했다. 서일대 문예창작학과도 통폐합됐다. 국문학이란 학문은 1910년대 국권상실의 시대에 국권 회복, 애국의 차원에서 가장 진지하게 탐구된 학문이다. 그러나 우리말, 우리글을 익히는 것으로 한국민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시절은 이제 지나버렸다. 글로벌 시대에 우리는 내셔널리즘을 넘어서 세계시민이라는 연대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국문학 혹은 인문학이 취업전선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모 방송국 피디를 만났더니 그분은 오히려 문학 전공자를 부러워했다. 스토리텔링의 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은 창의력을 개발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최근 몇 년 사이 문화콘텐츠학과들이 생겨났다. 국문학 전공자들이 문화콘텐츠학과로 옮겨가기도 했다.

문제는 취업률이다. 졸업시즌이 되면 나는 학교의 취업률을 맞추기 위해 학생들에게 전화를 돌린다. 개인적으로 아는 건축회사 사무실 일반 직원으로 이력서를 내보라고 권유한다. 그런데 학생들의 뜬금없다는 반응. 웬일? 건축사 사무실? 취업률을 맞춰야겠다는 일념으로 똘똘 뭉친 나는 판촉사원처럼 애걸한다. 이력서라도 한 번 내 보는 게 어떻겠니? 학생들은 전화를 끊는다. 학생들은 이제 내가 전화를 해도 받지도 않는다. 응? 이거 뭐지? 그렇다. 나는 수업시간 내내 학생들에게 사물과 세계를 새롭게 보는 법을 강의했다. 학생들의 발표시간에 발표 페이퍼에 나타난 지겨운 상투성과 진부함을 비난했다. 참신하고 창의적인 시선이 아니면 쓰레기라고 매도했다. 왜 수많은 쓰레기 위에 또 하나의 쓰레기를 더 얹느냐고 비판했다. 그랬던 내가, 그렇게 매도했던 내가 창의적인 것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는 건축회사 사무실 일반직원에 취직을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학생을 달래고 있다.

나는 창의적 사고, 창의성, 떠들어대면서도 결국은 자본의 속도와 결과적 수익으로 모든 것을 환원해버리는 자본주의를 닮아가고 있다. 나는 나를 비판한다. 창의적인 문화콘텐츠가 만들어지기 위해선 4대 보험이 보장되는 회사에 취업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멍 때리기’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모르는 자본주의의 채근을 비판한다. 수익을 위해서는 채 익지도 않은 푸른색 귤도 따서 노랗게 만들어버리고 채 자라지도 않은 소도 성장촉진제를 맞혀 자라게 하는 자본주의의 속도가 끔찍하다. 빈둥거리고 ‘멍 때리는 꼴’을 보지 못하는 자본주의가 ‘진심으로’ 걱정된다. 무엇보다 창의적인 뭔가 ‘일’을 ‘저지르기’ 위해서 잘 ‘놀아야’ 한다.

우리에게 멍 때리는 시간을 돌려다오. 빈둥거리는 시간을 돌려다오.

김용희(평택대 교수·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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