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박정태] 제조업 위기론이 확산되는데… 기사의 사진
국내 제조업의 양대 산맥인 삼성전자와 현대·기아자동차의 3분기 실적 부진이 우려스럽다. 30일 확정실적을 공시한 삼성전자는 전년 대비 영업이익이 반 토막 이상(60%) 줄었고, 현대·기아차는 큰 폭(18%)으로 감소했다. 환율 영향 등이 있긴 하겠지만 어닝쇼크 수준이다. 이 때문에 한국 경제를 지탱해 온 제조업의 위기론이 확산되고 있다. SK하이닉스가 사상 최대 분기 실적을 거두고, LG전자가 함박웃음을 지을 정도로 깜짝 실적을 냈지만 이들 일부를 제외하고는 주요 기업 상당수의 성적표는 매우 초라하다. 한국의 주력산업들이 이제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게 아니냐는 걱정이 든다.

전기전자 석유화학 조선 철강 자동차 등은 한국 경제를 일군 주력산업이었다. 근데 세계경제에서 급부상하고 있는 중국과 엔저로 가격경쟁력을 확보한 일본 사이에 끼여 맥을 추지 못하는 형국이다. 기술력이 높아진 중국의 거센 추격으로 자동차와 반도체 분야를 제외하고는 한국 제조업이 머잖아 중국에 따라잡힐 것이라는 한탄마저 나온다. 대외 환경의 불확실성도 커지고 있다. 유럽 경제는 침체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있고 중국의 성장엔진은 식고 있다. 반면 경기 회복세에 있는 미국은 29일(현지시간) 초저금리 기조를 상당기간 이어가는 대신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선택한 양적완화 종료를 선언해 우리나라로선 향후 미국의 금리 인상에 대한 중장기적 대책 마련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한국 제조업 위기는 지표로도 확인된다. 지난주 발표된 3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통계치를 보면 5년여 만에 제조업 생산이 전 분기 대비 마이너스(0.9%) 성장을 했으니 암담하기만 하다. 성장의 버팀목 역할을 했던 수출이 전 분기보다 2.6% 감소, 금융위기 이후 최대의 하락폭을 기록한 데다 내수의 한 축인 설비투자도 부진한 탓이다. 국내 제조기업의 성장속도와 수익성이 크게 둔화돼 해외 기업과의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는 최근 연구보고서는 강력한 경고음이다.

반짝했던 최경환 경제팀의 경기 부양책도 약발이 떨어진 듯한 느낌이다. 이를 반영하듯 제조업체의 10월 체감경기가 연중 최저 수준이라는 한국은행의 어제 발표는 꽁꽁 얼어붙은 기업심리를 그대로 보여준다. 기준금리가 두 차례 인하됐음에도 기업 투자는 지지부진하고 소비 심리는 급격히 위축돼 있다. 9월 산업생산 등 실물경제도 2개월 연속 하락세다. 저성장 기조가 구조적으로 고착화되고 있는 우리 경제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없는지 현미경으로 들여다볼 시점이다. 원인 진단 후에는 체질 개선과 함께 성장잠재력 확충을 위한 구조개혁에 나설 필요가 있을 것이다.

문제는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새로운 성장동력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업들도 고민일 게다. 뾰족한 해법이 없기 때문이다. SK그룹 최고경영진(CEO)들이 ‘CEO 세미나’를 갖고 신성장동력 발굴 등 전략적 혁신을 통한 위기 돌파를 내년 경영화두로 제시한 것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사업구조의 획기적 재편을 추진하겠다는 예고여서 그 결과가 주목된다. 일부 대기업이 대대적 투자에 나선 것도 반가운 일이다. 삼성전자가 경기도 평택에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기로 한 데 이어 LG그룹이 서울 마곡산업단지에 국내 최대의 융복합 연구단지 착공에 들어간 건 시장을 선도한다는 의미에서 평가할 만하다.

제조업이 살아나야 한다. 제조업의 회복은 경기가 활력을 띠기 시작했다는 상징으로서 가치가 크다. 금융위기 이후 미국 등 선진국이 제조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제조업 부흥에 나서는 이유다. 위중한 시기에 우리 정부와 기업도 손을 맞잡아야 한다. 정부는 연구개발 등을 지원하는 지속적 투자와 함께 합리적 규제 완화 등의 정책적 뒷받침을 해야 한다. 부품·소재 등 고부가가치산업의 핵심 기술 확보를 위해서도 머리를 맞대야 한다. 기업들은 어려울 때일수록 기업가 정신을 발휘하고 미래에 대비하는 과감한 투자를 단행할 필요가 있다. 위기는 또 다른 기회다.

박정태 논설위원 jtpar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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