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속의 샘] 스스로 못 지키면 아무도 안 지켜줘 기사의 사진
지난 23일, 워싱턴에서 열린 제46차 한·미 안보협의회(SCM)에서 양국은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하였다. 우리 측이 통제권 환수 연기를 요청했고, 미국 측이 ‘일정 정도의 요건이 충족될 때까지’라는 단서를 붙여 수락했다. 우리나라의 전작권이 이양된 것은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이다. 그로부터 38년이 지나 노태우정부 시절 환수 논의가 시작됐고, 김영삼정부 때인 1994년 12월 평시작전통제권을 돌려받기에 이르렀다.

한동안 주춤하던 전작권 환수 움직임은 노무현정부 시절 새로운 전기를 맞아 한·미 양국은 전작권 환수 시기를 2012년으로 확정하는 데 전격 합의했다. 하지만 천안함 사건 발발에 따라 환수는 2015년으로 미뤄졌고, 이번에 2022년 이후 재논의키로 합의하여 사실상 무기한 연기되었다. 두 번의 연기가 모두 우리 측의 간절한 요청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번 협의의 결과에 따라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후보 당시 여러 차례 “2015년 전작권 전환을 차질 없이 준비하겠다”고 강조하던 공약은 완전히 파기된 셈이다. 이를 두고 청와대에서는 “전작권 전환은 어떠한 경우에도 계획된 전환 시기를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공약의 철저한 이행보다 국가안위라는 현실적인 관점에서 냉철하게 바라봐야 할 사안”이라는 공식 입장을 표명했다. 섣부른 환수보다 변화된 안보 현실에 따른 철저한 준비가 우선이라는 태도다.

청와대의 결정과 입장을 두고 찬반 논쟁이 뜨겁다. 찬성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전작권을 환수하게 되면 미군이 철수하고, 따라서 막강한 우방의 보호를 더 이상 받을 수 없다는 주장이다. 화력을 보강하기 위해 떠안게 될 천문학적 규모의 경제적 부담도 만만찮다는 지적이다. 연기에 반대 의견을 표하는 사람들은 군사주권을 이야기한다. 전시의 작전통제권을 남의 나라에 맡긴 나라가 독립국가로서 자주국방을 논하기 어렵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북한이 더 이상 우리의 군사적 맞상대가 아니며, 지금의 국방비로도 충분히 자주국방 국가로 거듭날 수 있다는 것도 연기에 반대하는 이유다.

이번의 재연기에 단지 찬반 갑론을박의 소모적 논쟁만 있어서는 안 된다. 70년 가까운 오랜 세월 작전권 환수를 위해 우리가 노력한 것은 도대체 무엇이었던가를 뼈저리게 반성하는 것이 먼저다. 선진강군으로의 체질 개선을 위한 고민은 과연 있었는지 되짚어보아야 한다. 차질 없이 진행 중이었다던 그 준비에 부족한 점이 무엇이었는지를 냉엄하게 점검해야 한다. 안보환경 변화와 북한의 핵 개발에 책임을 떠넘기기엔 그동안의 세월이 너무 길다. 그 반성과 점검 위에 구체적인 계획과 실천이 뒤따라야 20년 뒤를 기약할 수 있을 뿐 그렇지 않다면 그마저도 아무런 소용없게 될 것이다.

제아무리 긴급한 상황이라 하더라도, 또 제아무리 천하무적의 혈맹이 도와준다 하더라도 자국의 안보 문제를 언제까지 남의 손에 마냥 맡겨놓을 수는 없다. 남이 주는 도움은 공짜가 아니다. 우리의 지난 역사가, 세계사가 그것을 증명한다. 도움을 받는 입장에서는 다른 방식으로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한다 하더라도 도움을 주는 자 앞에 당당할 수 없다. 국가나 개인이나 마찬가지다. 전작권을 남의 손에 맡긴 채 우리 안보를 도움 받고 있는 동안은 외교와 경제 등 전 분야에 걸쳐 우리 목소리를 제대로 내기 어렵다. 단순히 군사주권에 국한되어 논할 문제가 아니다.

뿐만 아니라 도움을 주는 쪽도 대가 없는 도움을 무한정 제공하는 경우는 없다. 대개는 보호해준다고 공언하거나 도움을 준다고 손을 내미는 경우, 그 이면에 다른 잇속이 있기 마련이다. 일본이 내세운 을사보호조약이 외교적 역량이 미비한 조선을 진심으로 보호해주기 위해 만든 조약이 아닌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다른 나라라고 별반 다를 것 없다. 남이 제공하는 도움과 보호를 우선 먹기 좋은 떡으로 생각하는 것은 금물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열강들의 역학관계에도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그 힘들이 충돌하는 중심에 우리는 중요한 힘점으로 자리하고 있다. 오랜 혈맹도 중요하고, 홀로서기가 두렵기도 할 테지만 언제까지나 한 편에 기대어 서 있을 수는 없다. 두려움은 자신과 세계를 명확하게 보는 눈을 가려 판단력을 흐리게 할 뿐이고, 기대어 서는 것은 힘의 균형을 깨고 불필요한 긴장을 상승시킬 뿐이다. 스스로를 과소평가하면 남이 업신여긴다고 맹자가 말하였던가. 스스로 지키지 않으면 아무도 지켜주지 않는다.

선진국을 바라보고 있는 지금, 우리의 안보와 국방의 초점을 북한에만 맞추어 생각하는 것은 더 이상 무의미하다. 우리의 군사력과 작전수행 능력을 못미더워할 필요도 없다. 자주국방은 이제 대북 안보가 아니라 세계경영이란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할 사안이다. 그런 의미에서 전작권은 언젠가는 반드시 되찾아와야 할 소중한 우리의 주권이다.

이규필 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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