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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전정희] 또 서쪽에 있는 사랑

[삶의 향기-전정희] 또 서쪽에 있는 사랑 기사의 사진
1990년쯤으로 기억됩니다. 전남 흑산도 사리교회에 취재를 갔습니다. 사리라는 마을은 자산어보의 저자 정약전이 위리안치돼 생을 마감한 곳입니다. 예수 믿은 죄가 가장 컸습니다.

그는 동생 정약용과 유배 길에 올랐습니다. 이들 형제는 1801년 음력 11월 21일 나주 율정역말에서 마지막 하룻밤을 묵습니다. 약용은 이날 ‘…어찌하여 형님은 그 먼 곳으로 가시어야 하는지/…고래란 놈 이빨이 산만큼 커 배도 삼켰다가 뱉어내고/…어리석은 바보아이 헛되이 무지개를 붙잡으려 하였네/…아이는 무지개를 쫓아갈수록 더욱 떨어져 가고 보면/ 또 다른 서쪽 또 서쪽 서쪽에 있었네’라고 애달픈 심경을 적습니다. 시 ‘율정별리’이지요.

죽기를 각오하고 예수를 믿어야 했던 시대. 형제는 그 나주에서 흑산도와 강진으로 생이별합니다. 형제에게 예수 신앙은 무지개를 좇는 것과 같이 고된 일이었을 겁니다.

흑산도 절벽 아래의 무지개

그때 사리교회는 갓 결혼한 전도사 부부가 지키고 있었습니다. 사리는 오지였습니다. 교회당 뒤 산길은 삐끗하면 낭떠러지였습니다. 흑산도 어디나 단애를 오르며 복음을 전해야 했습니다.

사리교회 위쪽으로 정약전의 위리안치 거소가 있었습니다. 초라했지요.

안타까웠던 것은 사모 새댁이 새벽기도 나가는 남편을 위해 단칸방에서 부엌으로 내려서다가 뱀을 밟아 유산한 일이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이들 부부는 절벽 길 따라 복음을 전했습니다.

또 잊혀지지 않는 한 분이 있습니다. 흑산도 교회를 순회하며 말씀과 복음을 전하던 팔순쯤 되던 목사님이었습니다. 절벽 길 따라 이 마을, 저 마을로 다니셨습니다. 꼭 개화기 민족교회를 이끌던 카랑한 목사 같았습니다. 평생 그곳에서 보내셨습니다. 정약전이 저러하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돌이켜 보건데 정약전과 정약용, 흑산도의 목사, 전도사, 사모… 그들 누구 하나 ‘또 다른 서쪽 또 서쪽 서쪽에 있었네’라는 절망감에 휩싸이지 않았겠습니까. 자신들 앞에 현현 않는 예수가 원망스럽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요일 4:12)라는 말씀을 끝까지 믿었습니다.

한국교회의 리더, 사랑을 소유

정약용이 ‘서쪽 언덕 활처럼 굽은 땅에 분명히 아침 무지개를 보았노라’라고 했던 것처럼 당신의 형상만을 먼발치서 보여주시는 예수입니다. 이를 만지려는 순간 ‘사랑의 소유’가 되고, 집착이 되고, 맘몬이 될 뿐입니다.

대문학가 춘원 이광수, 대정치가 우당 이승만 등은 뛰어난 크리스천 리더였습니다. 이광수는 ‘야소교의 조선에 준 은혜’라는 글을 통해 개신교가 ‘도덕 진흥’ ‘교육 보급’ ‘여성 지위 향상’ ‘사상의 자유 고취’ 등에 기여하며 조선의 자각을 가져왔다고 했습니다. 이승만은 독립운동하다 옥에 갇힌 상황에서도 죄수들에게 성경을 읽어주고 40여명을 전도했습니다. 목사 출신 국회의원에게 제헌국회 개원 기도를 요청, 대한민국을 열게 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어느 순간 사랑의 소유를 원했습니다. 자신만의 예수, 자신만의 하나님을 원했습니다. ‘어느 때나’ 보기를 원했습니다.

지금 한국교회 리더들이 사랑의 소유를 원합니다. 헛되이 무지개를 잡으려 합니다. 사랑의 소유와 별리하십시오. 그런 사랑은 또 서쪽에 있습니다.

전정희 종교기획부 선임기자 jhj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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