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완충지대가 필요하다 1] 함께 땀 흘리고, 한 끼 밥만으로도… '응어리진 독기' 날려버리다 기사의 사진
경기도 이천의 새울학교 학생들이 지난달 23일 인조잔디가 깔린 학교 근처 체육시설에서 축구시합을 하고 있다. 학교폭력 가해학생 전담 기관인 새울학교에는 폭력성이 강해 통제가 어려운 학생들이 주로 모인다. 녹색 잔디밭에서 땀 흘리며 뛰는 2시간 동안 아이들 얼굴에선 환한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이천=서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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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을 상습적으로 휘두르거나 방에 틀어박혀 게임만 하고 심지어 자살을 시도하는 아이들…. 밖으로 드러나는 행동은 가지각색이지만 위기학생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하나같이 '독소(毒素)'를 가득 품고 있다. 온전치 못한 가정, 문제아 낙인을 찍고 외면하는 학교, 사회에서 냉대 받으며 쌓여온 응어리다. 독소가 외부로 표출되면 폭력 등 범죄로, 내면으로 향하면 자해나 자살로 이어진다. 해독은 뒤틀려버린 아이를 바로잡는 첫 단계이자 가장 민감한 작업이다.

“여보세요? 엄마예요?”

경철(가명·16)이는 올해 초 교사에게 주먹을 휘둘러 경기도 이천의 새울학교에 들어왔다. 숙식형 대안학교인 새울학교는 학교폭력 가해자 전담 기관이다. 그는 다른 아이들을 때리지 말라는 교사에게 “무슨 상관이냐”며 달려들었다. 경철이의 폭력이나 금품 갈취에 시달린 아이는 한둘이 아니었다. 잦은 결석으로 고1 나이지만 아직 중학생이다.

새울학교 교사들은 처음 경철이를 본 날을 잊지 못한다. 눈에 독기가 가득했다. 건드리면 폭발할 듯했고, 실제 그랬다. 기물을 부수고 난동을 부리기 일쑤였다. 공격적인 아이들을 숱하게 겪어본 이곳 교사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왜 이렇게 비뚤어졌을까. 경철이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 부모 이혼으로 외가에 맡겨졌고 직후에 부모와 연락이 끊겼다. 외삼촌은 훈육을 빌미로 폭력을 휘둘렀다. 조금만 실수해도 몽둥이질을 당했다. 엄마가 그리웠던 경철이는 동전을 모아 공중전화 부스를 들락거렸다.

두꺼운 전화번호부에 수록돼 있는 엄마 이름들을 찾아 일일이 전화를 걸었다. 연필로 전화번호를 하나하나 지워가며 전화했다. 통화대기음이 끝나고 엄마 목소리를 기대하길 수백차례. 전화번호가 전부 지워지고 더 이상 전화할 곳이 없어진 날, 하루 종일 방에서 울었다. 중학생이 되면서 덩치가 커지자 좌절감은 분노로 변했다. 분노는 다른 아이들에게로 향했다.



“독기부터 빼자”

경철이에게 내려진 처방은 운동이었다. 원하는 운동을 마음껏 하며 땀을 빼도록 했다. 상담교사가 일대일로 따라다니기로 했다. 경철이는 녹초가 될 때까지 공을 차거나 탁구, 배드민턴을 했다.

그렇게 한 달 정도 지나자 매일 자신을 따라다는 교사를 의지하게 됐다. 그를 담당한 최기영 교사는 “같이 헐떡거리며 웃어준 것뿐”이라고 말했다. 처음 만난 진정한 ‘멘토’였다. 경철이는 체육교사 출신인 최 교사에게 영향을 받아 체육교사라는 꿈도 품게 됐다.

복학해 공부를 시작했지만 또다시 일이 터졌다. 엄마가 온몸에 문신을 하고 임신한 상태로 나타났다. 이혼 후 문신하는 일을 했고, 임신한 아이의 아버지는 누군지 모른다고 했다. 경철이는 다시 주먹을 휘둘렀다. 태어날 동생에 대한 미묘한 감정, 엄마에 대한 분노, 출산 후에 엄마가 떠날 것 같은 두려움이 그를 괴롭혔다.

그러나 이번엔 스스로를 다잡으려 한다. 제 발로 최 교사를 찾아가 조언에 귀 기울였다. “엄마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는 충고를 받아들였다. 경철이는 최근 용돈을 모아 엄마에게 따뜻한 점퍼를 선물했다. 경철이 엄마도 매주 최 교사로부터 상담을 받고 있다.



붕괴실험

독소를 빼는 작업은 인내심이 필요하다. 비행을 저질러 상담·치유기관에 위탁된 아이들은 새로운 상담교사와 일종의 ‘게임’을 벌인다. 상담교사는 ‘그동안 만났던 어른들과 좀 다르다’는 인식을 주려고 살갑게 다가간다. 그러면 아이들은 ‘붕괴실험’을 한다. 일부러 못되게 굴면서 상담교사들을 무너뜨리려 한다. 상스럽게 말하거나 담배를 피우고 침을 뱉으며 자극하는 식이다. 정에 굶주리고 어른들에게 배신당해왔기에 ‘당신(상담교사)도 다르지 않다’는 걸 입증하려는 것이다. 상담교사도 이를 알고 있다. 상담교사가 무너져 아이들을 내치면 상담은커녕 통제조차 불가능해진다.

호인(가명·16)이의 방식은 독특했다. 잠금장치를 푸는 데 일가견이 있어서 어디든 들어가 숨어버렸다. 번호로 된 잠금장치는 귀신같이 비밀번호를 알아냈다. 다른 사람이 누르는 걸 지나가다가 한번 보면 즉시 머리에 입력된다고 했다.

호인이는 절도와 폭력으로 새울학교에 왔다. 자백한 절도 범죄만 승용차 7대, 오토바이 30대, 슈퍼마켓 침입 절도 등 60여회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우연히 자물쇠를 연 것이 계기였다. 친구들이 신기해하고 호인이는 우쭐해졌다. 이혼한 일용직 아버지와 형이 있었지만 호인이를 돌봐주지 못했다. 정에 굶주렸기 때문에 이렇게라도 관심 받는 게 좋아서 잠금장치 여는 법을 열심히 익혔다. 동네 불량 청소년들은 호인이를 그냥 두지 않았다. 범죄에 이용했다.



“정성스러운 한 끼로도 변하는 게 아이들”

새울학교는 호인이를 세상과 격리시키는 공간이지만 보호막이기도 하다. 밖에서는 새벽까지 몰려다니며 절도 표적을 물색했었다. 주변 아이들이 ‘쓸모 있는’ 호인을 그냥 두지 않았다.

호인이는 세 끼 거르지 않고 먹고, 일찍 자고 일어나는 생활에 익숙해지자 점차 변하기 시작했다. 상담교사와의 숨바꼭질도 끝났다. 호인이는 “(이 학교생활은) 밥이 가장 좋았고 잠자는 게 다음, 운동 많이 하는 게 세 번째였다”며 “믿고 지지해주는 선생님도 많다”고 했다. 호인이는 이 학교에서 불과 3개월간 키가 10㎝ 자라고 몸무게는 13㎏이나 불었다. 잘 먹지 못해 왜소했던 그를 안타깝게 생각했던 원적(原籍) 학교 여교사는 부쩍 큰 호인이를 보더니 눈물을 쏟았다.

호인이는 유치원 교사를 꿈꾼다. 엄마에게 마음껏 어리광부리고 유치원 교사로부터 귀여움을 받았던 행복했던 기억이 영향을 줬을 것으로 상담교사들은 보고 있다. 호인이의 상담교사는 “누구나 예상할 수 있듯 그냥 두면 절도범으로 클 아이다. 지금은 마음을 잡은 듯하지만 아이들은 작은 계기로도 쉽게 무너진다”며 “무너지려 할 때 누군가 옆에서 잡아줘야 하는데 여기를 나가면 범죄 유혹만 있고 잡아줄 어른은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이천=이도경 기자 yid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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