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남성현] 땅굴 신드롬 기사의 사진
북한 땅굴 신드롬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지난달 31일 한때 포털 실시간 검색어에서 ‘청와대 밑에 북이 판 남침 땅굴’이 1위에 랭크되기도 했고, 언론을 통해 땅굴 신드롬이 계속 번져나가고 있다.

땅굴의 존재 유무에 앞서 한반도의 전쟁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 1990년대와 2010년 연평도 포격전 이전까지만 해도 우리 언론은 ‘전쟁’에 대해 그렇게 많은 담론을 꺼내지 않았다. 그런데 연평도 국지전 이후에는 양상이 완전히 바뀌었다. 언론에는 전쟁 이야기가 자주 등장하고 이런 담론은 그 어느 때보다 전쟁 가능성이 높다는 걸 말해준다.

하지만 우리에겐 여전히 전쟁이 ‘설마’에 불과하다. 전쟁이 나면 우리가 승리하겠지만 경제가 붕괴되니 우리가 선제공격을 할 리 없다. 북도 중국이나 러시아의 지원을 받지 않는 이상 전쟁에 승리할 수 없고 정권 붕괴가 필연적이니 선제공격은 곧 자살 테러 비슷한 게 될 것이다. 이런 단순한 논리로 전쟁이 없을 것이라는 ‘설마론’이 득세하는 것 같다.

전쟁 관련해 ‘설마’라는 생각은 치명적인 毒

전쟁에 관한 한 ‘설마’라는 생각은 사람을 넘어 사회와 국가도 잡을 수 있는 치명적인 독이다. ‘설마’에 의존한 자들이 패자가 되고 ‘설마’를 이용해 전쟁을 일으킨 자들이 승리한 예는 역사 속에 얼마든지 있다. 칭기즈칸의 몽고족 기병은 말에 탄 채 치즈를 먹으며 엄청난 속도로 진격했고, ‘설마’하며 미처 준비하지 못한 유럽의 성들을 쉽게 공략했다. 임진년 우리 선조들이 일본의 침략에 철저하게 유린당한 것도 따지고 보면 ‘설마’하는 생각에 당한 것이다. 이승만 시대의 국방부는 북한군이 남침할 능력이 안 된다고 주장하다 단 사흘 만에 수도를 점령당하지 않았던가.

1차 한국전쟁 이후 60여년이 지난 지금 김정은은 또다시 사흘 만에 서울을 점령하겠다고 호언장담한다. 우리가 북쪽의 위협을 ‘설마’라고 치부한다면 그건 우리가 틀에 박힌 고정관념식 전쟁을 상상하기 때문이다. 스텔스 공군기와 최신 기갑부대, 이지스함을 갖고 하는 전쟁 말이다. 이런 최신 무기를 염두에 둔다면 김정은의 말은 허풍이나 체제 결속용 선전문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가 염두에 두는 전쟁이 지극히 원시적인 방식의 전쟁, 즉 땅굴을 이용한 전쟁이라면 어떻게 될까.

국방부 대변인의 발언이 ‘설마론’으로 채색된 느낌이다. 김민석 대변인은 휴전선 부근에 땅굴이 있을 수 있지만 서울까지 내려오는 60㎞ 정도 길이의 굴 설은 북한의 입장에서 기술적으로 경제적으로 타당하지 않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엄청난 양의 지하수, 토사, 폐석의 처리, 굴착 시의 소음 등은 한·미 정찰 자산에 포착되었을 것이고 고가의 굴착장비 TMB 도입은 북한 경제력으로는 불가하다는 것이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발상의 전환을 해보자. 2000년 전 로마인들은 1000분의 1 경사각으로 40㎞ 떨어진 곳에서 물을 끌어오는 수로를 만들었다. 만에 하나 북한이 지하수 문제를 해결했다면? 북한은 이미 1973년에 지하 100∼150m 되는 곳에 평양지하철을 개통하면서 땅굴 기술을 축적했다. 광명성 3호 인공위성을 자력으로 쏘아올리고 이동식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약 20기 갖고 있다고 미국도 인정하는 나라가 북한인데, 중소형 TMB를 아예 자력으로 만들었다는 상상은 불가능할까? 미군이 월남전에 패한 뒤에야 비로소 월맹이 판 수백 ㎞의 대규모 땅굴이 실체를 드러낸 걸 교훈삼아 한·미의 초현대식 정찰 자산이라도 불완전할 수 있다는 발상에서 출발해보면 어떨까? 민간인들이 작성한 땅굴 지도에 근거해 최소한의 방어 계획을 수립해 보는 건 그야말로 어리석은 행동에 불과할까? 이런 상상이 우문(愚問)이길 바란다.

그러나 만일 북한이 전쟁을 계획한다면 그 전쟁은 분명 우리가 상상하는 전쟁이 아니라 우리가 상상하지 못하는 전쟁일 것이다. 21세기 첨단 시대에 구석기 방식의 전쟁이 일어난다면 과연 우리 군은 시민의 생명과 국가의 안전을 보호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