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진애] 무궁무진한 도시텃밭 이야기 기사의 사진
우리 집 옥상에서 텃밭을 가꾼 지 20여년 된다. 큰 화분들과 작은 쪽밭들 합해서 두 평 남짓이라 텃밭이라 이름 붙이기도 민망하다. 하지만 풍성하다. 우리 가족 넷이 먹을 고추, 부추, 피망, 호박, 토마토, 깻잎, 쪽파 정도는 너끈하게 나온다. 도시텃밭, 도시농업이 새삼 주목받지만 사실 오래전부터 다들 해 오던 것이다. 지금도 달동네나 다가구 주택들이 들어찬 동네에 가면 텃밭천지다. 대문 앞, 대문 위, 골목에 함지박, 물동이, 화분, 스티로폼 박스 등 온갖 작은 공간을 두고 온갖 작물들이 자란다. 마치 농사 유전자가 있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런 농사 유전자를 새삼 발견한 것처럼 요즘 도시텃밭이 유행하니 너무 수선을 떠는 것 같기도 하지만 정말 박수를 칠 만한 아주 좋은 현상이다. 지자체마다 버려진 땅을 빌려서 다시 주민들에게 분양하고, 지자체마다 도시텃밭용 박스를 나눠주기도 하고 재배 방법을 가르쳐주기도 한다. 초등학교에서도 텃밭 가꾸기를 장려한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왜 아파트 단지에는 텃밭이 별로 없을까? 요즘 아파트 발코니에서 키우는 허브 이야기들은 자주 나오는데 왜 땅 넓은 아파트 단지에는 텃밭이 없는가 말이다. 더구나 요새는 다들 지하주차장을 만드는데 잘 가꾼 잔디밭, 수려한 조경수, 분수와 물길이 있다면 텃밭도 충분히 가능할 텐데 이상하지 않은가? 발상을 바꿔 볼 때다.

텃밭 가꾸기에는 여러 가지 이점이 있다. ‘당장 먹거리가 생긴다, 신기하다, 자연에 감사하게 된다, 생명을 존중하게 된다’는 이점은 물론이거니와 사람들의 습관을 달라지게 만든다. 우선 부지런해진다. 잘 웃게 된다. 이웃들에게 자랑할 이야깃거리도 생긴다. 당연히 부부 사이도 좋아지고 아이들과도 좋아지며 이야기가 풍성해진다. ‘경작지 축소, 오염에 따른 대안적 도시농업’이라는 거창한 주제가 아니더라도 작은 소재로 행복한 삶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주제 중 하나가 텃밭인 것이다. 나의 개인적 경험이기도 하다.

텃밭을 주제로 한 근사한 도시가 나타나는 꿈, 텃밭을 주제로 한 아파트 단지가 등장하는 꿈, 텃밭으로 완전히 덮인 생명의 건물을 만드는 꿈을 꾸곤 한다. 작아 보이지만 정말 큰, 야무진 꿈이다. 꿈으로서만 남아서는 안 되는, 실천해야 할 꿈이다.

김진애(도시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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