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철 칼럼] ‘쪽지 예산’ 올해는 보고싶지 않다 기사의 사진
매년 12월 중앙 언론사들이 보도 여부를 놓고 심각하게 고민하는 사안이 있다. 새해 예산안의 국회 처리 과정에서 드러나는 ‘쪽지 예산’이 그것이다. 예산결산위원회에 막판 로비를 벌여 편법으로 자기 지역구의 특정 사업 예산을 챙긴 국회의원 명단을 앞에 두고 편집 책임자는 고심하지 않을 수 없다. 해당 의원들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기사를 작성하지만 보도될 경우 그 지역 유권자들은 자기들이 뽑은 의원이 유능하다고 박수를 보내기 때문이다. 의원들은 의정보고서나 보도자료를 통해 자신의 이름이 포함된 기사 내용을 적극 홍보한다. 전국적으로는 욕을 먹지만 지역구에서는 최고의 선거운동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보도 취지와는 정반대로 오히려 그런 의원들을 도와주는 꼴이 되니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쪽지 예산이란 힘 있는 국회의원이 비공개 회의장에서 예산을 최종 심의하는 예결위 간사나 계수조정소위원회 위원에게 민원 사항이 적힌 메모지를 넣어 따내는 예산을 일컫는다. 요즘은 종이 대신 휴대전화 메시지나 카톡 같은 모바일 메신저를 이용한다 해서 ‘문자 예산’이라고도 불린다. 쪽지 예산은 네이버 지식사전에 등재될 만큼 국회 예산 심의의 오래된 병폐다. 정권 실세가 다수를 차지하지만 당 대표나 중진들이 경쟁적으로 나서기 때문에 여야가 따로 없다. 쪽지 예산은 5000억원이 넘는다.

문제는 쪽지 민원을 통해 예산이 편법으로 늘어나기 때문에 깔끔하게 짜여야 할 새해 예산안이 누더기가 된다는 점이다. 힘의 논리에 따라 끼워넣기 예산을 짜다 보면 엉뚱하게도 필수 국책사업이나 복지, 공공부문 예산이 깎이게 된다. 그 대신 우선순위에서 한참 밀렸던 자질구레한 SOC(사회간접자본) 예산이 늘어난다. 이렇게 볼 때 국회의원이 자기 이익을 챙기고자 예결위 회의장에 쪽지를 넣는 행위는 세금 도둑질과 다르지 않다. 쪽지 민원을 소화하는 과정에서 추악한 뒷거래가 이뤄지기도 한다. 지난해에는 최경환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쪽지 예산이 드러나 본회의장에서 낯 뜨거운 논란이 벌어졌다.

예결위 여야 간사인 새누리당 이학재 의원과 새정치민주연합 이춘석 의원은 6일부터 시작되는 예산안 심의를 앞두고 “쪽지 예산은 절대 없다”고 다짐하고 있다. 하지만 공허하게만 들리는 것을 어쩌랴. 이 정도 각오와 다짐은 해마다 했었다. 특별한 근절책을 마련하지 않은 상황에서 정권 실세나 선배 의원들의 요구를 과연 뿌리칠 수 있을까.

매년 반복되는 쪽지 예산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우선 당 차원의 결의가 필요하다. 대표가 주재하는 의원총회에서 쪽지를 넣지 않겠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해야 한다. 여야가 경쟁적으로 정치혁신을 부르짖고 있는 요즘 쪽지 예산 근절을 혁신의 첫 실천 과제로 선정하고 모든 의원들로부터 서명을 받았으면 좋겠다. 또 예결위가 각 상임위원회를 통과한 예산에 손댈 경우 해당 상임위의 동의를 받도록 규정한 국회법 제84조 5항을 반드시 지키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국회의장단의 철저한 감시감독이 필요한 부분이다.

쪽지 예산의 근본적 차단을 위해서는 계수조정 과정을 전면 공개해야 한다. 예결위가 난색을 표하지만 국가안보 분야를 제외하면 공개 못할 이유가 없다. 국회의 모든 회의는 공개하는 게 원칙 아닌가. 통상 여야 간사가 막판 밀실회동에서 쪽지 민원을 처리하는데 이런 잘못된 관행을 놔두고는 예산 뒷거래를 막기 어렵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유권자 의식개혁이다. 자기가 뽑은 선량에게 세금 도둑질 시키는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 우리 모두가 깨달았으면 좋겠다. 국회의원은 대부분 지역에서 선출되지만 나랏일 하는 전체 국민의 대표다. 결코 지방의원이 아니다. 언론이 쪽지 예산 챙긴 의원들을 보도할 때 해당 지역구에서 그들을 칭찬할 것이 아니라 나라 곳간 훔친 도둑이라고 손가락질하는 세상이 와야 한다.

성기철 논설위원 kcs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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