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완충지대가 필요하다 2] 위센터 체육활동서 ‘치유’를 맛보다 기사의 사진
대전의 가정형 위센터 아이들이 지난 6일 ‘요조’(요리가 좋아요) 시간에 필리핀 잔치음식인 ‘판싯 팔라복’을 만들고 있다. 고교생과 중학생이 2개 팀으로 나눠 요리 대결을 벌이며 음식을 했다. 이렇게 만드는 음식은 아이들이 미리 인터넷으로 검색해 고른다. 아이들은 15일 필리핀 수학여행을 앞두고 음식문화를 체험하겠다면서 ‘요조’를 하자고 위센터 교사들을 졸랐다.
현승(가명·17)이는 중학교에 올라가자마자 또래들의 '표적'이 됐다. 어눌한 말투와 낡고 지저분한 옷,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어린아이 같은 행동…. 툭툭 치는 수준으로 시작된 폭력은 주먹질과 발길질로 변해갔다. 몇몇 아이들이 주도한 악행은 점차 다른 아이에게로 전염돼 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현승이는 아이들의 '샌드백'이 됐다. 자신을 때리던 아이들과 2학년에도 같은 반이 되자 교복을 가위와 손으로 발기발기 찢어버리고 방에 틀어박혔다. 무력한 자신에 대한 분노를 그렇게 표현했다. 학교를 나온 뒤 폭력은 중단됐지만 대인기피증이 남았다. 고3 수험생이 돼야 할 나이에 아직 중학교도 졸업하지 못했다.

막내의 비극

현승이는 지난해 대전에 있는 가정형 위(Wee)센터에 들어갔다. 위기학생의 상담·치료·학업을 병행하는 곳이다. 가정집 같은 공간에서 상담교사들과 숙식한다. 이곳에서 현승이는 지능검사를 받았는데 아이큐가 70 미만이었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 임상심리사는 유아시절 적절한 자극 없이 방치된 결과라고 진단했다. 보통 아이들은 학습적인 자극과 정서적 자극을 받으며 지능이 고루 발달하는데 현승이는 그럴 기회가 없었다.

건설 기술자였던 현승이 아버지는 이혼 뒤 알코올 중독자가 됐다. 형과 누나들이 있었지만 다들 아버지를 피해 중·고교만 졸업한 뒤 독립했다. 아버지와 단둘이 기초생활수급비로 살았는데 형이 취직해 소득이 드러나자 이마저도 끊겼다. 최진훈 상담교사는 “옷 한 벌 제대로 된 게 없었다. 이곳에 처음 온 날도 찢어진 옷을 걸치고 있었다”고 했다.

현승이 처지를 고려하면 낮은 지능이 오히려 다행스럽게 여겨지기도 한다. 학교폭력 피해로 내면에 독소(毒素)를 쌓아온 아이는 세 가지 방식으로 표출한다. 무기력해지거나 자신보다 약한 아이들을 희생물 삼아 가해자로 변신하기도 한다. 최악은 자해나 자살이다. 현승이는 무기력과 자해 성향을 동시에 가졌다. 최 교사는 “극한 상황에서 극단적 선택을 하지 않은 건 지능이 떨어지기 때문으로 보이는데 이를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라고 했다.



캐치볼 동아리

교사들은 현승이가 야구광이며 공을 잘 던진다는 걸 알아냈다. 최 교사가 매일 공을 받아줬다. 공이 ‘펑펑’ 하고 글러브에 꽂히는 소리에 이웃들이 항의했지만 사연을 듣고는 이내 잦아들었다. 땀에 흠뻑 젖은 아이는 마음껏 소리치며 웃을 수 있었다. 두 달 뒤 또래들과 캐치볼도 시작했다. 캐치볼 동아리가 만들어졌다. 위센터 학생 4명이 가입했다.

이들은 현승이에게 “어떻게 하면 공을 잘 던지느냐”고 물었다. 현승이는 몇 번이고 또래들에게 방법을 설명해줬다. 현승이가 들어온 지 얼마 안돼 놀이공원에 소풍간 적이 있었다. 최 교사가 손을 잡아주지 않으면 한 걸음도 옮기지 않을 정도로 아이들과 섞이지 못했었다. 그런 아이에게 캐치볼 동아리는 작지 않은 변화다.

교사들은 현승이의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고민에 빠져 있다. 고교로 진학할지, 기술을 배우며 검정고시를 보게 할지. 자신감이 올랐지만 정글 같은 일반 고교에서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렇다고 특수학교로 보내면 또다시 자괴감에 빠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지능이 경계선에 있는 아이를 위한 학교는 찾기 어려웠다. 현승이는 아직도 갈림길에 서 있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6개월 동거

다수의 학교폭력 피해학생들은 낮은 자존감 때문에 또래와 정상적인 관계를 맺기 어려워한다. 학교를 옮겨도 집단 따돌림을 겪는 사례가 빈번하다. 전문가들은 가해자와 피해자를 무조건 격리하는 게 답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대전 가정형 위센터에서 올해 초 가해자와 피해자가 6개월간 함께 지낸 일이 있었다. 격리가 일반적인 상황에서 위험한 시도였다.

진수(가명·17)와 은성(가명·17)이는 원래 친구였다. 진수는 중학교 때 폭력서클에 가입했다. 은성이는 그 서클의 표적이 되면서 온갖 괴롭힘을 당했다. 둘은 악연이 됐다. 은성이는 위센터로 피신했고, 진수는 강제전학 뒤 방황하다 위센터에 왔다. 은성이는 말없이 짐을 쌌다. 교사들은 둘의 관계를 은성이 부모에게 들었다. 담당 교사가 “책임지겠다”며 부모와 은성이를 설득했고 ‘위험한 동거’가 시작됐다.

은성이는 진수의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위센터는 다세대 주택을 개조한 시설이다. 가정집이나 마찬가지여서 항상 얼굴을 봐야 한다. 당당한 가해자와 눌려 사는 피해자. 둘을 갈라놔야 한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에 은성이가 권투를 배우겠다고 나섰다. 은성이의 변화에 교사들은 좀 더 지켜보기로 했다.



격리만이 답은 아니다

은성이는 진지하게 체육관에 다녔다. 교사들은 1개월 뒤 은성이가 식당에서 진수를 마주보며 당당하게 대하는 걸 봤다. 그리고 진수를 은성이와 함께 체육관에 보내기로 했다. 심심했던 진수가 동의했고 두 사람은 체육관을 오갔다. 얼마 뒤 교사들은 은성이가 진수에게 스파링을 요구했다는 놀라운 얘기를 들었다. 결과는 무승부. 은성이는 진수와 대등하게 맞붙었다. 교사들은 은성이가 위스쿨 수료 후 전학 간 학교에서 반장이 됐다는 소식에 기뻐했다.

담당 교사는 “어른들 눈이 많아 은성이는 안정적인 여건에서 상처를 극복하고 도전할 수 있었다”며 “일선 학교에서도 여건만 마련해주면 (가해자와 피해자가) 관계를 회복하는 일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고 말했다.

대전=글·사진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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